ㄱ. 찬바람이찬바람을 일으키는 기계를 '선풍기(扇風機)'라고 합니다. 더운 바람을 일으키는 기계를 '온풍기(溫風器)'라고 해요. 우리 집 큰아이가 '온풍기'를 보더니 "저것 선풍기야?"하고 묻기에 "응? 아니야. 선풍기 아니야"하고 말하니, "그러면 뭐야?"하고 묻고, 나는 "더운바람이 나오는 아이야"하고 말해 줍니다. 아이는 문득 "'더운바람이'겠네?" 하고 말합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선풍기란 '찬바람이'입니다. 온풍기란 '더운바람이'입니다. 그렇지요. 찬바람이 나오고 더운바람이 나오니까, 이러한 모습대로 이름을 붙이면 돼요. 아이들도 알고 어른들도 모두 아는 가장 쉽고 예쁜 말을 쓰면 됩니다.
ㄴ. 봄까지꽃, 봄까치꽃, 개불알풀꽃조그마한 봄꽃을 놓고 세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봄까지꽃'은 시골에서 조용히 쓰는 이름이라 할 만하고, '봄까치꽃'은 어느 수녀님이 쓴 시 때문에 퍼진 이름이라 할 만하며, '개불알풀꽃'은 이제 익히 알려진 대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을 한국 학자가 고스란히 옮긴 이름이라 할 만합니다.
봄꽃 하나를 놓고 어느 이름으로 가리키면서 마주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이 있어서, 이 사랑으로 봄꽃을 마주하면 넉넉합니다. 그러면, 하나씩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을 그대로 쓰려는 사람은 참으로 이 봄꽃을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돌보려는 마음인가요? 아니면 '개불알'이라는 이름이 이녁 마음에 들기 때문인가요? '봄까치'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려는 사람은 참으로 이 봄꽃하고 '까치'라는 새하고 어울린다고 하는 생각 때문인가요, 아니면 어느 수녀님이 쓴 시가 마음에 들기 때문인가요?
'봄까지'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봄꽃을 그저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딱히 다른 데에 얽매일 일이 없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봄까지꽃'은 겨울이 저물면서 봄이 될 때에 처음 피고, 봄이 저물 무렵까지 피기 때문입니다. 봄이 끝나면 봄까지꽃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이름 그대로 "봄까지 피는 꽃"이 '봄까지꽃'입니다. 나는 세 가지 이름 가운데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봄꽃을 마주합니다. 봄 내내 이 작은 꽃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아끼려는 마음입니다.
ㄷ. 볍씨민들레씨가 동그스름하게 맺힙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민들레 씨앗이다!"하고 외치면서 꽃대를 톡 꺾은 뒤 후후 불어서 씨앗을 날립니다. 아이들과 여러 가지 열매를 먹으면서, 으레 씨를 뱉습니다. 감을 먹을 적에는 감씨를 뱉고, 수박을 먹을 적에는 수박씨를 맺습니다. 포도를 먹을 적에는 포도씨를 뱉습니다. 오이씨나 참외씨는 그냥 먹습니다.
우리는 쌀밥을 먹는데, 쌀밥은 쌀알로 짓고, 쌀알은 벼알에서 겨를 벗긴 속살입니다. 벼알은 봄에 논에 심어서 새로운 벼알을 거두도록 하는 씨앗이기도 합니다. 이리하여, 벼알은 따로 '볍씨'라고도 합니다. 예부터 얼마 앞서까지 시골사람은 볍씨를 씨오쟁이에 갈무리해서 잘 건사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볍씨를 손수 갈무리해서 되심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거의 다 농협에 가서 돈을 주고 사다가 씁니다. 농협에서는 '볍씨'라는 낱말을 안 쓰고 '벼 종자(種子)'라는 낱말을 씁니다. 그나마 '米種子'라고는 안 하지만, 농협 일꾼은 '씨·씨앗'이라는 낱말을 도무지 안 씁니다. 이리하여, 요새는 여느 시골마을 시골사람도 '볍씨'라는 낱말을 안 쓰고, 농협 일꾼 말투대로 '벼 종자'라고만 말합니다. 어느새 '씨감자·씨고구마'라는 말마디는 '감자 종자·고구마 종자'로 바뀝니다.
ㄹ. 무슨 밥 먹을까밥상을 차리는 어버이를 바라보는 아이가 "아버지, 오늘은 무슨 밥?"하고 묻습니다. "오늘은 무슨 밥을 먹을까?"하고 얘기하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풀밥'을 할 수 있고 '고기밥'을 할 수 있으며 '미역국밥'이라든지 '감자국밥'을 할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먹는 대로 밥이름을 붙입니다. 밥을 하니까 밥하기이고, 밥이름을 붙이며, 밥먹기를 누리고, 밥삶을 헤아립니다. 바깥에 나가거나 다른 집에 가면, 으레 '요리'와 '식사'라는 말을 듣는데, 아이들이 '요리·식사'라는 말마디를 들으면 으레 이러한 말을 쓰면서 "오늘은 무슨 요리?"나 "오늘은 무슨 식사?" 하고 묻겠지요.
ㅁ. 까만조개껍데기가 새까만 조개를 한 꾸러미 얻습니다. 수세미로 껍데기를 박박 문지릅니다. 뻘물이 거의 빠졌다 싶어 커다란 냄비에 넣어 펄펄 끓입니다. 껍데기가 새까만 조개를 끓이니 국물이 파르스름합니다. 어쩜 이런 국물 빛깔이 나올까 늘 놀라면서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밥상에 국물과 조개를 올리니 아이들이 묻습니다. "까만 조개야?" "응, 까만 조개야. '홍합'이라고도 해." 아이들은 '홍합'이라는 말은 못 알아듣습니다. 낱낱으로 뜯어 '홍·합'이라 말하니 비로소 알아듣지만, 아이들 눈으로 볼 적에 껍데기가 까만 빛깔이니 '까만조개(또는 깜조개)'라는 이름을 써야 제대로 알아보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조개를 두고 '조개'라 하기보다 '蛤'이라는 한자를 자꾸 쓰려 합니다. 커다란 조개라면 '큰조개'라 하면 될 텐데 굳이 '대합'이라 하고, 하얀 조개라면 '흰조개'라 하면 될 텐데 애써 '백합'이라 해요. 꽃과 같이 고운 무늬라 하면 '꽃조개'라 할 때에 쉬 알아들을 텐데 왜 '화합'이라 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ㅂ. 물뿅뿅이여덟 살 큰아이가 읍내 가게에서 '물게임기'를 보았습니다. 물게임기를 사 달라면서 나를 부릅니다. '물게임기'가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그거 있잖아요. 물 뿅뿅 쏘는 거." 이렇게 말해도 도무지 모르겠어서, 아이가 이끄는 데로 가서 쳐다봅니다. 아, 그렇구나. 이것이로구나. 아이 말대로 '물게임기'는 물을 뿅뿅 쏘아서 조그마한 고리를 꽂는 놀잇감입니다. 네모난 물틀에 작은 고리가 헤엄치듯이 동동 떠다니는데, 단추를 눌러서 바람을 뿅뿅 넣으면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면서 고리가 춤을 추는데 작은 막대기에 꽂힐랑 말랑 흔들립니다. 이 놀잇감을 놓고 '물게임기'라 하는군요. 그러니까, 물을 뿅뿅 쏘아서 고리를 넣는 놀잇감이니 '물뿅뿅이'라든지 '물고리넣기'라고도 할 만합니다.
ㅅ. 튿다, 튿어지다나는 어릴 적부터 '튿다'와 '튿어지다'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내 둘레 어른이나 아이 모두 이러한 말을 썼어요. 그런데, 학교에만 가면 표준말로 '뜯다·뜯어지다'만 나옵니다. 우리가 입으로 말을 할 적에는 괜찮지만, 받아쓰기를 하거나 글을 쓸 적에 '튿다·튿어지다'라 적으면 언제나 '틀렸다'고 가르쳤습니다. 한국말사전을 보아도 '튿다'라는 낱말을 올림말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튿다'는 고장말입니다. 그러니까, 서울말이나 표준말은 아닐는지 모르나, 고장에 따라서 쓰는 낱말입니다.
서울에서 다루는 표준 맞춤법에서는 '튿어지다 (x) 뜯어지다 (o)'로 가를 수 있을 테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제 삶자리에서 쓰는 말을 살피면, 섣불리 'x o'로 가를 수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말을 주고받는 사람이지, 어떤 틀에 스스로 가두어 표준이 되어야 하지 않으니까요. 아무래도 공문서라든지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표준말만 써야 한다고 하면서, '뜯다·뜯어지다'만 옳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표준말은 틀에 박힌 굳은 말일 수 없습니다. 한국말은 센말과 여린말로 나누어 함께 쓰는 말결이 아름다운 말입니다. '튿다/뜯다'를 얼마든지 함께 쓸 수 있고, '튿어지다/뜯어지다'도 얼마든지 나란히 쓸 수 있습니다. 두 말을 골고루 쓸 때에 한국말이 한결 보드랍고 부드러우면서 넉넉하게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