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강 : 29일 낮 12시 05분]
지난 23일 오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7호 대법정. 심규홍 부장판사는 "피고인을 벌금 500만 원에 처한다"고 나직이 일렀다. 조희연 교육감은 허탈한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주저앉았다. 방청석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일부 방청객은 "말이 되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조 교육감은 기자들 앞에서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법원을 빠져나왔다.
조 교육감은 이후 고뇌의 시간을 보냈고, 28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실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마주 앉았다. "선고 당시 유죄가 나와 당황스러웠고, 멍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에게 '곽노현 트라우마'를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는 "교수로서 인생을 평탄하게 살아왔는데, 백척간두에 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자신을 뽑아준 서울시민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앞선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진보적 교육정책을 의연하게 펼쳐나가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를 옭아맨 허위사실 공표죄 판례나 배심원 만장일치 유죄 의견을 감안하면, 조 교육감의 향후 재판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항소심에서 무죄를 입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의혹 해명 요구는 후보 검증의 일환이었다"조 교육감이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둔 그해 5월 25~27일 기자회견 등의 방법으로 고승덕 당시 후보에게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것은 공직선거법 250조 2항(허위사실 공표)에 해당될까. 재판부와 배심원은 '그렇다'고 판단했다.
고 전 후보를 둘러싼 의혹은 5월 25일 기자회견 이틀 전인 23일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의 트위터 글에서 처음 나왔다. 검찰은 조 교육감 쪽이 기자회견 5분 전에 최경영 기자와 처음 통화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조 교육감 쪽이 사실 관계 확인에 소홀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조 교육감은 "그렇게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고승덕 당시 후보에게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으니 사퇴하라'고 했다면, (의혹을 제기할) 충분한 근거가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최경영 기자의 트위터 글 이후 사이버 여론공간에서는 관련 의혹이 들불처럼 퍼졌다. 최 기자를 신뢰할 만했고, 의혹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조사해 본 바로는 개연성이 있었기 때문에 의혹 해명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후보 검증의 일환이었다."
허위사실 공표죄 판례에 따르면, 가정법을 통한 의혹 제기에도 허위사실 공표죄를 물을 수 있다. 기자가 이를 지적하자, 그는 "(허위 사실을 공표하기 위한) 극단적인 경우와 의견 표명 과정에서 (주된 내용을) 부각시키기 위해 가정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저는 경미한 사례"라고 해명했다.
- 고승덕 전 후보에게 의혹을 제기하면서 "제보에 따르면", "다수의 증언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검찰은 의혹 제기 근거가 최 기자의 트위터 글뿐이라고 지적했다."제가 당시 (선거캠프에서 준비한) 기자회견문 등의 자구(문자와 어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세세한 표현도 알지 못했다. 저는 의혹을 제기할 만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제가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질 용의가 있다. 제보라는 표현에 민감한데, 여러 정보와 확인한 사항들을 종합해서 제보라고 표현한 것이다. 검찰은 낙선 목적으로 (악의적인 의혹 제기를) 했다고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의혹 해명 요구였다."
"제시된 소명자료 등에 의하여 그러한 의혹이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이 의혹에 대한 확인 지시를 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그가 의혹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미필적 고의에 따른 유죄였다. 조 교육감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3월에야 검찰은 고승덕 전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확인했다. 일상적인 과정이 아니라, 대검찰청이 저를 범죄자로 간주한 뒤 국제자금추적팀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지난해 5월에는 고 전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허위사실 공표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배심원들이 왜 유죄로 생각했을까 반성적으로 고민"- 지난 27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비전문, 법률을 잘 모르시는 배심원들께서 굉장히 미시 법률적 판단을 했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배심원 평결을 비판하는 것으로 들린다."사실은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 기사가 나온 뒤, 제가 수행팀에게 그런 표현이 있었는지 두 번이나 물었을 정도였다. '조희연 교육감이 그런 말을 하다니...' 하고 비판하시는 분이 있다면, 죄송하다. 배심원들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판결에서 최종 권한은 재판부에 있다. 1심 결과가 부당하다면, 그것은 재판부에게 물어야 할 사안이다."
-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 유죄 의견을 냈다. 상식적인 법 감정을 가진 국민이 유죄를 내렸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우리 쪽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고, 배심원들이 유죄 의견을 냈기 때문에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저나 변호인들은) 왜 배심원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했을까, (배심원은) 어느 부분에서 유죄로 생각했을까 하는 점에서 반성적으로 고민하려고 한다."
- 배심원의 의견을 모으는 평의·평결 과정이 당시 재판부가 예상했던 2시간을 훌쩍 웃돌았다. "재판부는 배심원 사이에 여러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 (재판부가) 가능하면,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권하는 모양이다. 무죄 의견을 가진 배심원이 양보해서 만장일치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제 진심과 진실을 배심원에게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죄 의견이 나오지 않았는지 반성하고 있다."
배심원의 평결은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배심원의 만장일치 의견이 항소심에서 존중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항소를 결정한 조 교육감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그는 "배심원 평결이 결정적인 규정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면서 "항소심에서는 법리 해석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많이 보강해서 무죄를 입증하려 한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 쪽은 허위사실 공표죄에 대한 헌법 소원이나 위헌법률신청을 할 예정이다.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우리나라 선거 여건상 허위사실 공표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조 교육감의 생각은 어떨까.
"현재 음성적이고 악의적인 흑색선전뿐만 아니라, 제 사건처럼 정상적인 후보 검증 공방 역시 허위사실 공표죄에 해당된다. 법의 적용 범위가 너무 넓고 모호하다. 과잉 적용될 우려가 있다. 벌금형은 최하 500만 원이라, 경미한 사안이라도 유죄가 나오면 당선 무효가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미 헌법소원이 제기된 바 있고, 국회에는 이 조항에 대한 수정 법안이 제출돼 있다."조 교육감은 "시간 끌기 아니냐"라는 비판을 두고 "받아들일 수 없다, 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취하는 모든 활동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로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위사실 공표죄 재판 결과는 사건마다 다르다. 허위사실 공표죄로 직을 잃은 선출직 공무원이 다수 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안중근 의사 유묵 소유 의혹을 제기한 안도현 시인이나 박지만씨의 5촌 조카 피살 사건 연루설을 보도한 주진우 <시사IN> 기자는 무죄를 받았다. 조 교육감은 "무죄 사례가 모든 허위사실 유포죄 관련 재판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면서 "무죄 사례에 제 사례를 추가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죄송스러운 마음이 앞선다"재판장은 선고를 내리면서 "고승덕 전 후보와 원만히 해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고 전 후보는 재판 과정에서 "(조 교육감은) 사실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제게 고통을 주고 있다, 법대로 엄정하게 판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한 조 교육감의 답이다.
"의아스럽고 유감스럽다. 후보 검증을 위해 충분히 묻고 답할 수 있는 내용이다. (지방선거 직후) 화해 기자회견을 할 때 충분히 사과했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고 전 후보가 마음을 열어준다면 적극적으로 (화해) 노력을 하겠다." 고 전 후보는 판결 이후 "사필귀정이다", "딸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고 전 후보는 재판 과정에서 캔디 고의 글이 조 교육감 쪽에서 준비한 것이라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했다. 조 교육감은 "안타깝고 섭섭한 이야기"라면서 "당시 둘째 아들이 쓴 편지를 며칠 가량 발표하지 않고 미뤘는데, 제가 불편해서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선거캠프의 강권에 따라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 재판 이후 보수진영에서는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제가 보수단체에 의해 고발당하고 부당하게 기소됐을 때, 어떤 분들은 직선제 폐지를 위한 첫 단계가 아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17개 시도에서 13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됐다고 해서 직선제 폐지를 시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민주화 흐름 속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직선제가 탄생한 것이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보완하는 게 현명한 일이다."
- 이번 재판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학부모와 학생들이다. 진보적 정책을 내걸고 교육감에 당선됐는데, 향후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제 문제로 서울교육가족 구성원들이 낙담하고 혼란을 느낄까 죄송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제가 추진했던 교육 개혁이 안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 혁신학교, 혁신교육지구, 고교 자유학년제 등의 다양한 교육실험은 조희연표 정책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이후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약간의 진통은 있겠지만, 안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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