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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지하철 강남구청역 입구에서 운동원들이 시민들의 반대서명을 받고 있다.
서울 지하철 강남구청역 입구에서 운동원들이 시민들의 반대서명을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남구청(구청장 신연희)이 2조 원대 공공기여금을 다른 지자체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에 소속 공무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구청은 공무원들에게 할당량을 부여해 반대 서명을 받으라며 거리로 내보내는가 하면, 모범답안까지 제시하면서 서울시에 제출할 반대 의견서를 쓰라고 종용했다.

심지어 구청은 일부 주민들이 주최한 반대 집회에 공무원 300여 명을 '질서 및 안전요원'이라는 명목으로 참석시켰다. 강남구청이 중립성이 요구되는 공무원들에게 본연의 직무와 관계없는 일을 부당하게 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말 강남구 내 한국전력 부지를 낙찰받아 115층짜리 사옥을 짓게 된 현대자동차 그룹은 용도변경이라는 '특혜'를 받는 대가로 서울시에 2조 원에 달하는 공공기여금을 내야 한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아래 국토법) 시행령 제24조(지구단위계획의 수립)에 따르면,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공기여금은 지구단위계획 구역을 관할하는 시·군·구 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서울시는 이달 초 강남구 한전 부지와 송파구 잠실운동장을 묶어 국제교류지구로 확대 지정하는 '종합무역센터주변지구 지구단위계획 결정'(아래 지구단위계획 결정)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전 부지 관련 공공기여금은 지구단위개발구역인 강남구와 송파구에서 쓸 수 있다. 그러나 강남구는 공공기여금이 강남구가 아닌 송파구 잠실운동장에 쓰이게 될 것이라며 이를 반대해왔다.

부서별로 지하철역에서 서명받아... 1인당 200, 300명씩 할당

강남구청 직원 A씨는 28일 "신연희 구청장이 총무과에 지시해 구청 직원들에게 (지구단위 계획 결정) 반대 서명운동을 받으라고 강제로 지시했다"면서 "구청과 지역주민센터 직원들에 1인당 200, 300명씩 할당량을 줘 주말에도 대형교회에 가서 서명을 받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반대 서명운동에 구청, 주민센터 공무원뿐만 아니라 통장, 직능단체 직원들까지 광범위하게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강남구청) 부서별 근무 편성현황' 문건에 따르면, 강남구청은 부서를 가리지 않고 소속 공무원들을 관내 지하철역 출구에 집중 배치해 주민들의 서명이나 의견서를 받도록 했다. 예를 들어, 3호선 압구정역은 감사담당관, 3호선 신사역은 기획예산과, 3호선과 분당선 도곡역은 부동산정보과, 3호선 대치역은 교통정책과, 3호선 일원역은 도로관리과, 7호선 논현역은 보육지원과, 7호선과 9호선 강남구청역은 보건소 직원들이 담당하도록 편성, 지시한 것이다.

A씨는 "반대 서명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부서에 불이익을 줄까 봐 친인척들한테까지 서명을 받아야만 했다"며 "각 부서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코엑스, 현대자동차, 삼성 등 강남구에 있는 대기업에 찾아가 서명받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까지 서명운동에 개입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구청 공무원들의 친인척이나 대기업 직원들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서명하고 있다는 것. 그는 "이 같이 실적을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온 서명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오마이뉴스> 기자가 지난 23일 강남 일대 지하철역에서 목격한 서명운동 운동원들은 주민들에게 "아무 문제 없으니"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서명까지 함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관련기사 : 무려 2조 원이나 생기는데... '강남구만 혜택' 논란).

A씨는 "주무부서 과장이 구청 전 부서 서무주임들을 불러 반대서명 대책회의를 연 자리에서 '말귀들을 그렇게 못 알아먹냐. 공무원증 안 차면 공무원인 줄 누가 아느냐. 알아서 눈치껏 해라. 시민인 척 하고 서명운동하라. 한글만 쓸 줄 알면 누구에게든 다 받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강남구청측이 작성한 서명운동 '부서별 근무 편성현황'. 각 호선 지하철역사와 출구수, 담당 부서가 명시되어 있다.
강남구청측이 작성한 서명운동 '부서별 근무 편성현황'. 각 호선 지하철역사와 출구수, 담당 부서가 명시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모범답안까지 제시하며 반대 의견서 작성 종용

강남구청은 또 공무원들에게 예시문을 주면서 서울시에 제출할 반대 의견서를 쓰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일종의 모범 답안을 써준 것.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의견서 예시문은 총 12개로, 대부분 개발계획을 확대해 공공기여금을 잠실운동장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논리를 간단 서술형으로 만든 것이다.

예시문은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구역 확장에 단호히 반대한다", "한전부지 개발이익은 강남구의 부족한 기반시설 인프라 확충에 투자되어야 한다", "종합운동장 부지는 종합운동장만의 계획이 필요하다"는 등 서울시의 계획에 반대하는 내용 일색이다.

A씨는 "간부들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작성하라"며 의견서 제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런 모범답안까지 배포하는데, 어떻게 자유로운 의견을 써낼 수 있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A씨는 또 "4월 말까지 승진 고과 점수를 매기고 5월에 발표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부당한 지시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다"며 "이런 일을 하려고 공무원이 된 게 아닌데, 너무 힘들다. 구청 직원들 사이에서도 '전제 사회도 아닌데, 구청장의 지시라는 이유로 공무원들을 불법 행위에 동원하는 게 말이 되냐, 해도 너무한다'는 등의 불만이 높다"고 말했다.

 소속 공무원들이 서울시에 보내는 의견서를 쓸때 '참고'하도록 강남구청이 만든 예시문.
소속 공무원들이 서울시에 보내는 의견서를 쓸때 '참고'하도록 강남구청이 만든 예시문. ⓒ 오마이뉴스

강남구청 "서명운동 아니라 의견서 작성 권유한 것... 예시문은 주민용"

이에 대해 강남구청 관계자는 "부서별로 직원들을 조직해 지하철역사로 내보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의견서 작성을 권유하기 위한 것이지, 반대서명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부인했다. 한쪽을 편드는 공무원의 서명운동은 안 되지만 자유로운 의견서 작성 권유는 문제없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의견서 예시문도 "지하철 역사에서 의견서를 받다보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주민들이 많아 간단한 참고용 예시문을 만들었던 것"이라며 "직원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서무 주임들에게 공무원증을 차지 말라고 한 해당 과장은 "공무원증을 차고 의견서를 써달라고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테니 차지 말고 하라는 것이지, 그렇게 심하게 얘기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강남구민들이 지난 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현대차그룹이 매입한 한국전력 부지 개발과 관련 지구단위계획구역 확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강남구민들이 지난 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현대차그룹이 매입한 한국전력 부지 개발과 관련 지구단위계획구역 확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주민 궐기대회도 구청 개입 의혹... 공무원 300명 배치

지난 22일 오후 삼성동 한전 본사 앞에서 열린 범구민 궐기대회도 주민단체인 강남구 범구민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했지만 강남구청이 개입한 의혹이 짙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범구민 궐기대회 안전요원 운영' 문건에 따르면, 강남구청은 범구민대회를 4구역으로 나눠 공무원들을 배치했다. 1구역은 세곡동, 수서동, 일원1,2동, 일원본동, 개포4동으로, 2구역은 직능단체와 도곡1동, 3구역은 역삼 1, 2동, 대치 1, 2, 4동과 삼성 1, 2동으로, 4구역은 청담동, 압구정동, 논현 1, 2동, 신사동으로 정해서 공무원들을 배치했다.

범구민대회에는 이 같이 민원 필수요원을 제외한 300명의 구청 공무원들이 질서 및 안전요원으로 동원됐다. 강남구청 공무원이 모두 800여 명인 것을 감안할 때 37.5%의 공무원이 '안전요원'이란 명목으로 궐기대회에 나간 것이다.

총무과는 이 범구민대회 직전 각 부서에 ▲부서별 근무인원(안전요원) 명단 제출 ▲남자 직원 우선 차출 ▲명단 작성 후 부서장 서명 날인 후에 총무과 인사팀에 인편으로 제출 등을 지시했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한전 본사 건물 앞에서 열린 범구민 궐기대회 '안전요원 운용' 계획서와 '집회장 안전요원 배치도'.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한전 본사 건물 앞에서 열린 범구민 궐기대회 '안전요원 운용' 계획서와 '집회장 안전요원 배치도'. ⓒ 오마이뉴스

강남구청 "질서계도요원으로 동원... 폴리스라인 밖에만 있었다"

강남구청 측은 궐기대회에 공무원을 동원한 것에 대해서도 "매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회에는 참여인원의 1/10에 해당하는 구청 직원들을 질서계도요원으로 동원해왔다"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또 "공무원들은 폴리스라인 밖에만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강남구 인근 서초구의 한 관계자는 "구청이 주관하는 행사라면 모를까,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하는 행사에 공무원들이 안전요원으로 투입되는 경우는 없다"며 "모임의 성격과 관련한 부서의 공무원 몇 명이 나가서 현황을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몇백 명이 투입되어서 안전요원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 공무원들이 질서유지 업무를 할 권한이 없지 않냐"고 말했다.

강남구민인 B씨는 "강남구만 잘살기 위해 (지구단위 계획 결정을)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서울시민 그리고 국민들이 함께 잘사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구청장은 구민들의 지역 이기주의를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명에 참여했던 C씨는 "무슨 내용인줄도 모르고 서명했다. 서명을 한 뒤에 내막을 알고 나니 어이가 없다"면서 "강남구청장이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강남구청 #공공기여금#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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