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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이 지난해 7월 3일 서울 강서구 강서경찰서를 나서는 동안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이날 그의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이 지난해 7월 3일 서울 강서구 강서경찰서를 나서는 동안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이날 그의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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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고, 또 다른 친구는 오열했다. 엇갈린 두 사람을 가리켜 법원은 "우정이 그릇되게 발현됐다"고 일갈했다.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이 항소심에서도 또다시 살인교사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3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김용빈)는 그가 친구 팽아무개씨를 시켜 재력가 송아무개씨를 죽게 했다는 공소사실을 다시 한 번 인정하며 김 시의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다만 팽씨는 친구의 거듭된 압박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잘못을 뉘우친 데다 자백한 만큼 형량을 징역 25년에서 20년으로 줄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박정수 부장판사)과 마찬가지로 김 시의원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물증과 관련자 진술 모두 그의 살인교사혐의를 뒷받침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죽은 자의 기록 : 매일기록부와 차용증

첫 번째 유력한 증거는 숨진 송씨가 남긴 '매일기록부'와 차용증이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법원은 두 자료가 김 시의원의 범행 동기를 보여준다고 봤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송씨는 상업지구 용도변경을 위해 김 시의원에게 2010년 10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네 번에 걸쳐 돈을 줬다. 김 시의원은 2011년 12월 마지막으로 2억 원을 받을 때 송씨의 요구대로 그간 받은 금액, 총 5억 2000만 원의 차용증을 썼다. 검찰은 김 시의원이 차용증 작성 뒤 자신의 비리가 폭로될까 봐 두려워 송씨를 죽이기로 마음 먹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김 시의원 쪽은 송씨 계좌에 인출내역이 없다며 차용증 등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맞섰다.

30일 항소심 재판부는 송씨가 2006년 7월 2일부터 사망 당일까지 매일 재산 관련 기록을 남겼고, 웨딩 사업을 하면서 일주일에 평균 7000만~8000만 원씩 현금 소득을 올리고 사무실 금고에 현금을 보유해왔다며 매일기록부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차용증 역시 필적 감정과 '살인교사 지시를 받을 때 차용증 얘기를 들었다'고 한 팽씨의 진술 등을 볼 때 믿을 만한 증거라고 했다.

증인석 오른편에 서서 법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던 김형식 시의원은 몸이 꺼질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변호인들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재판장 김용빈 부장판사는 "다음, 팽아무개의 진술 신빙성 여부를 보겠다"고 입을 뗐다.

팽씨는 지금껏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2012년 4월 초 경기도 부천시의 한 식당에서 "송 회장에게 돈을 받고 일 처리를 해주기로 했는데 해주지 못해 계속 협박당하고 있다"는 김 시의원의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김 시의원이 이후 줄곧 "송 회장을 없애지 않으면 내 정치생명과 모든 게 끝난다, 그 사람을 죽이고 내가 그 사람에게 써준 차용증을 찾아와야 한다"고도 했다. 또 팽씨는 송씨를 죽인 직후 김 시의원에게 범행을 보고했고, 도피 후 수차례 자살 권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3일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수천억 원대 자산을 지닌 재력가를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고 있는 팽아무개씨가 서울 강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지난 7월 3일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수천억 원대 자산을 지닌 재력가를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고 있는 팽아무개씨가 서울 강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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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두 사람의 통화내역, 김 시의원이 팽씨에게 2012년 4월부터 범행 한 달 전인 2014년 2월까지 모두 7025만여 원을 보낸 점 등을 볼 때 팽씨의 말을 믿기로 했다. 팽씨가 살인 지시를 받았다고 말한 시점이 몇 차례 달라지긴 했지만 전체 신빙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고개만 숙인 채 판결을 듣고 있던 팽씨는 언젠가부터 김 시의원을 외면하는 듯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재판부는 '팽아무개가 살인교사대로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김 시의원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용빈 부장판사는 "팽아무개는 일관되게 김형식 피고인을 자랑스러운 친구로 여기고, 피고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지녔다"며 "우정이 그릇되게 발현됐다. 팽아무개의 (범행) 동기를 수긍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시의원의 변호인단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한 1심 당시 언론의 과잉보도로 배심원들이 자신에게 선입견을 품고 있었다는 논리도 펼쳐왔다. 하지만 30일 재판부는 변호인단이 당시 배심원 2명을 별다른 이유 없이 기피 신청한 것이 받아들여지는 등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김용빈 부장판사는 곧이어 "김형식 피고인의 사실오인, 법리 오해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고 말했다. 김 시의원은 증인석에 몸을 기댄 채 울고 있었다.

끝까지 억울함 호소한 김형식

10시 47분 김 부장판사는 양형 부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난 16일 결심공판 때 검찰은 김 시의원을 사형에 처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문명국가에서 사형은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뗐다. 그럼에도 김 시의원이 줄곧 범행을 부인하는 등 반성하지 않는 데다 피해자의 유족들이 엄벌을 원하는 점 등을 고려해볼 때 1심대로 무기징역이 적절하다고 했다.

"아휴... 재판장님…."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던 김형식 시의원은 재판부를 향해 소리쳤다. 김 부장판사는 "끝까지 들으세요"라며 그의 말을 끊은 뒤 "원심판결 중 팽아무개 판결 부분을 파기하고 그를 징역 20년에 처한다. 김형식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고 선고했다.

김 시의원은 다시 "재판장님, 제가 정말 (살인교사) 안 했습니다"라고 외쳤다. 울면서 법정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그의 양팔을 교도관들이 붙잡았다. "제가 작년에 팽아무개한테 물건(살인도구)를 준 적도 없고요. 저는 안 했습니다"라고 김 시의원은 계속 소리쳤지만 교도관들은 그의 팔다리를 모두 들어 퇴장시켰다. 출입문이 닫힌 뒤에도 김 시의원의 통곡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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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김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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