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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인도네시아의 발리(Bali)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발리 문화의 고향이라는 우붓(Ubud)을 찾아가는 여정이 가장 인기가 있다. 발리 문화의 전통은 우붓을 말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열대의 섬 발리의 풍광 중에서도 우붓의 풍광은 묘한 신비감을 가진 것으로 이름이 높다. 신들의 섬 발리 안에서도 특히 우붓을 가면 유난히 많은 힌두교의 신들을 만나게 된다.

우붓 왕궁 가는 길에는 수많은 외국의 여행자들이 있다.
▲ 우붓 왕궁 가는 길 우붓 왕궁 가는 길에는 수많은 외국의 여행자들이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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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밀림 속의 숙소에서 수영을 하고 휴식을 취하다가 우붓 시내로 나왔다. 우리가 탄 차는 우붓 외곽의 수많은 미술관과 사원들을 스쳐 지나갔다. 차창 밖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인도를 점령한 활기찬 우붓 시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에어컨이 나오던 시원한 차에서 내리니 우붓 시내의 후끈한 열기가 얼굴에 와서 닿았다. 아내가 불편해 한다. 아내는 이렇게 더운 날씨에 막 돌아다니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우붓의 날씨는 예상보다 더 덥고 습했다.

우붓 왕궁 주변에는 자유스러운 복장의 여행자들이 많이 보인다.
▲ 왕궁 주변의 여행자들 우붓 왕궁 주변에는 자유스러운 복장의 여행자들이 많이 보인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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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우붓의 상징적인 건축물을 찾아 나섰다. 이 건물은 우붓 북쪽의 한 중앙에 자리한 우붓 왕궁, 뿌리사렌 아궁(PuriSsren Agung)이다. 관광의 중심지답게 왕궁 주변에는 많은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관광객들도 많아 혼잡스러울 정도다.

우붓 왕궁의 남쪽 길 건너편에는 우붓 시장도 있어서 우붓 왕궁을 둘러보고 시장을 방문하기에도 편하다. 우붓 왕궁과 우붓 시장을 끼고 있는 우붓 왕궁 사거리는 우붓 시내에서도 가장 많은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펼쳐지는 곳이다. 우붓의 상징답게 우붓 왕궁으로부터 우붓 시내의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우붓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 우붓 왕궁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우붓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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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도 발리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외국의 영향으로 고유의 모습을 잃어가지만 우붓 왕궁은 아직 우붓 전통의 건축물과 예술을 느낄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우붓 왕궁은 19세기 후반에 우붓 지역 왕국의 전성기를 지켜보았고, 그 이후에도 1940년대 중반까지 우붓 지역을 다스렸던 왕조가 이 왕궁에서 살았다. 그 이후 현재까지도 우붓 왕의 후손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발리풍의 전통가옥 양식으로 지어진 세련된 멋진 건축물이 왕국의 품격을 보여준다. 역사 오랜 우붓이지만 의외로 우붓의 전통 건축물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이 우붓왕궁은 꼭 둘러볼 만한 곳이다.

우붓 왕궁으로 들어가려는 외국 여행자들이 정말로 많다.
▲ 우붓 왕궁 정문 우붓 왕궁으로 들어가려는 외국 여행자들이 정말로 많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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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 왕궁의 안쪽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도록 출입금지 되어있는 곳이 많지만 낮에는 왕궁 입구쪽 일부가 무료로 개방된다. 왕궁의 정문을 통해 왕궁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무료 입장이기 때문에 우붓에 여행 온 여행자들은 모두들 이 왕궁에 들어온다고 생각될 정도로 왕궁 안에는 사람들이 많다.

발리의 한 지역을 다스렸던 우붓 왕국의 왕궁이라 궁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왕궁의 건축물도 우붓에 오기 전에 숱하게 보았던 힌두교 사원의 건축물들과 비슷하게 생겨서 일국의 왕궁이라는 느낌은 별로 생기지 않는다.

소박한 왕궁이지만 발리, 특히 우붓의 건축물에서 느낄 수 있는 섬세한 석재 장식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붉은 갈색의 벽돌과 회색 빛 석재가 건축물 안에서 수차례 어울리면서 건축물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역사가 있는 건물이기에 발리의 다른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는 고풍스러움도 있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 화려한 중문 앞에서 사진을 남긴다.
▲ 우붓 왕궁 중문 많은 여행자들이 이 화려한 중문 앞에서 사진을 남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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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의 가운데 마당 안에 들어서자 왕궁의 더 깊은 정원 안으로 들어서는 중문(中門)이 화려함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이 중문은 여행자들을 내려다보며 왕궁 마당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다. 이 중문이 여행자들의 눈길을 오래 동안 잡아끄는 것은 중문 중앙의 목재 여닫이문이 온통 화려한 금박으로 번쩍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이 이 정도로 번쩍거리는 것을 보니 왕궁의 보전을 위한 경제적인 지원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왕궁 마당의 화려한 중문 앞은 온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사진을 남기는 포토존이다. 워낙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을 찍으려면 꽤 많이 기다려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중문 앞에 서지 않을 때 재빨리 치고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나는 내 얼굴이 담긴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 편이지만 우붓의 역사를 상징하는 이 건축물 앞에서 한 장의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 곳 우붓에도 역시 왁자지껄한 중국 여행자들이 많다. 주변에 중국 여행자들이 가장 많으니 중국 여행자 중에서도 친절하게 보이는 한 아저씨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자신도 다른 사진을 찍어야 할 일이 있어서인지 옆에 있는 자기 아내에게 우리 사진을 찍어주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중국인 아내가 남편의 요청을 단번에 거절해 버린 것이다. 아마도 날씨도 더운데 왜 짜증나게 나한테 그런 일을 시키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 중국 아저씨는 아내의 반응에 대꾸도 못하고 결국 스스로 우리 사진을 찍어주었다. 남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중국 아주머니의 마음 씀씀이와 함께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중국 아저씨의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나는 저 아저씨가 평소 아내에게 잘못한 일이 많을 거라며 나의 아내와 함께 웃었다.

저녁의 무용공연에 사용되는 악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 왕궁 입구의 누각 저녁의 무용공연에 사용되는 악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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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입구의 누각에는 우리나라의 편종 같이 생긴 발리의 전통 금속악기들이 줄줄이 누워 있다. 이 악기들은 우붓의 왕궁 안에서 성대히 열렸던 종교행사에 이용되었던 악기들이다. 지금도 이 왕궁에서는 저녁마다 왕궁 안마당에서 전통 무용공연이 펼쳐지는데 이 누각이 공연의 준비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왕궁의 안쪽에 들어가 보려고 해도 전각과 전각을 이어주는 출입문 곳곳에 입장 불가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관광객들이 출입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정원과 안채에는 지금도 왕의 후손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안채에는 실제로 왕족이 살기 때문에 방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다. 나는 중문 왼쪽 옆에 난 작은 쪽문을 통해 궁전 안채 앞에 있는 정원을 살짝 엿보았다. 밖에서 보이는 곳은 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해서 사진만 찍다가 한번 문지방을 넘어가 보았다.

야자수와 조경수, 잔디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 우붓 왕궁 정원 야자수와 조경수, 잔디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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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원은 왕궁의 외전과 내전 사이에 있는 정원이다. 우붓 왕실의 결혼식 같은 행사에도 사용된다는 정원답게 정원 내부는 야자수와 각종 조경수, 그리고 잔디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일 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우붓 왕궁의 큰 행사기간에는 이 정원 안에 외국 관광객은 들어올 수 없고 오직 현지인들만 출입이 가능하다.

나는 비밀의 정원에 들어온 듯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정원을 둘러보았다. 정원 안에는 관광객들이 없다. 정원 안은 어수선하거나 관광지 같지 않고 아늑한 왕궁 안에 들어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쪽문을 통해 출입금지 구역을 내다보는 관광객들이 많다.
▲ 우붓 왕궁 쪽문을 통해 출입금지 구역을 내다보는 관광객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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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발리가 네덜란드와 일본의 침략을 받기 전에왕과 신하들이 모여 회의를 하거나 왕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당시 왕과 신하들은 힌두교 신앙에 따라 최고 높은 계급에 속해 있었다. 발리에는 인도 힌두교의 영향으로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발리 친구 아롬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도 발리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카스트 제도에 따른 계급의식이 짙게 남아 있다. 카스트 제도의 정점에 있던 왕이 살았던 공간이니만큼 지금도 카스트 계급의 가장 상층에 있는 왕의 후손이 이 공간에 살고 있어도 발리인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화려한 사롱을 온 몸에 두르고 있다.
▲ 우붓 왕궁 수호신 화려한 사롱을 온 몸에 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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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로 들어서는 석문의 입구를 양쪽에서 지키고 있는 수호신 조각상은 마치 도깨비 같은 모습이 우리나라의 기와지붕을 장식하는 귀면와(鬼面瓦)와 많이 닮아 있다. 발리 힌두교의 기원도 인도이고 우리나라 불교의 기원도 인도이니 나쁜 귀신을 쫓는 이 수호신들의 표정이 닮은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이 도깨비들은 화려한 비단으로 채색된 사롱을 몸의 아래에 두르고 있다. 왕궁이니만큼 사롱의 화려함은 발리의 힌두교 사원에서 보았던 수호신의 사롱들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화려하다.

왕이 살지 않는 왕궁이라 썰렁하기만 하다.
▲ 우붓 왕궁 안채 왕이 살지 않는 왕궁이라 썰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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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중문 밖으로 나왔다. 우붓 왕궁은 우붓의 역사적 명소로도 운치가 있으나 왕들의 유물을 담은 유물전시관이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아마도 왕의 후손들이 아직도 이 왕궁 안에 살고 있고 선조들이 남긴 유산을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여러 왕조가 성쇠를 거듭하던 발리 땅에는 많은 왕조만큼이나 많은 왕궁들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우붓 왕궁은 왕이 살았던 왕궁을 중심으로 우붓 고유의 문화를 아름답게 꽃 피웠던 곳이다. 그런데 현재 왕궁은 왕이 살지 않아서 근위병도 없이 썰렁하다. 왕궁 주변에 사는 개들마저 왕궁 안을 자유롭게 어슬렁거리고 있다. 왕이 살지 않는 왕궁 안에는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만 가득할 뿐이다.

나는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를 빠져나와 다시 우붓의 더위 속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우붓의 더위가 힘들어서인지 조금 조용해졌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450 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인도네시아 여행, #발리, #우붓, #우붓왕궁, #뿌리사렌 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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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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