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밉다고 멀리할 수만은 없는 나라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하멜의 탈출 경로를 따라 여수에서 나가사키로 향하는 범선 코리아나호에 몸을 실었다. 4월 22일부터 4월 30일까지 8박 9일간 나가사키에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연재한다. - 기자말
하얀 천과 바람을 이용해 파도를 가르며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것. 많은 이들의 꿈이 아닐까? 연안이 아닌 큰 바다를 지나, 다른 나라 물정을 돌아보며 골치 아픈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멋진 모험을 즐기는 꿈을 모두 한 번쯤 그려보았을 것이다.
커다란 여객선을 타고 일본과 유럽여행을 다녀봤던 나는, 범선을 타고 외국을 나가면 멋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얀 천이 달린 돛을 달고, 바람을 가르며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실현 가능한 수단은 여수의 소호 요트장에 있는 국내 범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코리아나호가 '2015 나가사키 범선 축제(4월 25~29일)'에 참가한다는 것이다. 코리아나호를 타고 여수에서 나가사키까지 가는 데는 22시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정채호 선장은 4월 22일에 여수를 떠날 계획을 세웠다.
350년 전 하멜이 여수를 떠나 나가사키에 도착한 경로를 탐사한다는 것이 더욱 흥미로웠다.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은 1653년 7월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타고 대만에서 나가사키를 향해 출발했으나 심한 풍랑을 만나 생존자 36명이 제주도에 상륙했다. 그리고 13년간 험난한 조선 생활을 경험했다.
심한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36명 중 22명만 살아남았다. 한양과 전라도 강진 병영에서 여수에 있는 전라좌수영에 수용된 이들은, 희망이 없는 자신들의 운명을 비관하다 나가사키로 탈출했다.
멋진 꿈꾸며 범선을 탔지만 심한 풍랑에 놀라
출국 수속을 마치고 오전 10시에 출항하기로 되어 있었던 코리아나호의 계획은 처음부터 차질이 생겼다. 배의 점검과 수리를 마치고 곧바로 출국하려 했지만, 출국 직전 계속 비가 내려 도색과 방수작업을 제대로 마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승선한 선원과 일행은 마지막 방수작업과 청소를 함께하며 선원이 해야 할 일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4월 22일 오전 11시, 드디어 출항이다. 기관장을 제외한 모든 승선인들을 갑판에 집합시킨 정채호 선장은 "범선을 타고 여행한다는 것은 여러분 인생에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여객선을 타고 여행하는 것과 다르니 기존의 생각을 버리세요"라고 말했다. 노란 잠바에 하얀 선원 모자를 눌러쓰고 짙은 선글라스를 낀 부선장 최영석(82)씨가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60년 정도를 바다에서 보냈어요. 학교는 공부를 하는 곳이고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자산이 됩니다. 자연이 교재이고 나 외에는 모두가 선생입니다."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명예 퇴직했다는 이효웅씨는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려고 범선여행에 참가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이 밖에도 퇴직 후 귀농준비 중인 분, 약사로 근무하다가 3대가 함께 여행에 나섰다는 분, 대학교수까지 다양한 이들이 동승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요무형문화재 29호인 이은관씨의 제자이자, 경기도 파주에서 한얼국악원을 운영하는 안성근씨 일행이었다. 코리아나호를 타고 작년에도 나가사키에서 국악공연을 했단다. 안씨는 "작년에 이어 한국의 멋을 일본에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맑게 갠 하늘아래 아름다운 금오열도 사이를 지나는 배에서는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른 '아마도 사랑(Perhaps Love)'의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며 모든 이들을 꿈속으로 안내했다. 한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아마도 사랑은 갈등과 아픔으로 가득 찬 바다와 같은지도 몰라요어쩌면 사랑은 추운 날의 불과 같고 비 내릴 때의 천둥과 같아요만일 내가 영원히 살아서 나의 모든 꿈이 이루어진다면내 사랑의 추억은 당신일 거예요"그렇다! 사람들은 꿈을 사랑하며 산다. 행복한 꿈, 부자가 되는 꿈, 직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꿈,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꿈을. 그러나 어디 모든 이들의 꿈이 다 이뤄지는가?
갈등과 아픔으로 가득 찬 바다, 고통의 시간
노래 가사는 예고편이었던가?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전관수역으로 들어서는 배가 심하게 요동친다. 국악단원인 한 여성은 배 멀미로 정신이 없고, 나도 은근히 겁이 났다.
'아! 이건 아닌데…. 아름다운 바다는 꿈이었던가?' 두꺼운 잠바를 입은 채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를 응시하며 키를 잡은 선장님께 물었다.
"선장님 이렇게 배가 흔들리는 데 괜찮은 건가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범선은 복원력이 커서 이 정도는 끄떡없으니 걱정하지마세요."새벽 3시쯤 맘을 단단히 먹고 졸고 있을 때, 뭔가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내 발을 쳤다. 앞 탁자 옆 의자에 앉으려던 약사님이 굴러 떨어져 머리를 다치고 내 발을 친 것이다.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아! 바다는 역시 갈등과 아픔으로 가득 찬 곳이구나."어둡고 무서웠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험난한 현해탄을 건너 오전 8시 30분에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하다. 요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나가사키 선셋 마리나에 정박을 하고 입항 수속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때 사단이 났다.
선장님이 선실에 걸어놨다던 여권이 담긴 봉투가 없어졌다. 모든 선실과 가방을 뒤져도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 여수를 떠나기 전에 버렸던 쓰레기 자루에 들어있지 않을까 걱정돼 여수에 전화를 걸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사무실에 두고 왔는지 확인해 봐도 여권은 보이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렵사리 나가사키까지 왔는데, 한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가? 참 난감했다.
그때다. 혹시나 하고 커튼 뒤를 뒤지던 선장님이 "여기 있고만!"하고 여권이 든 종이상자를 보여줬다. 일행은 환호성을 지르며 배를 내려 일본 출입국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역시 바다는 갈등과 아픔이 가득한 곳이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