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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보수성향 도시이면서도 진보정치가 발달해 '진보정치일번지'로 불려오던 울산에서 근래들어 급격한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같은 보수화 바람은 상대적 약자인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들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오고 있고, 지역경제 침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1987년 노태우의 6.26 선언이후 일어난 노동자대투쟁은 울산에 진보정치의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고, 이후 노동인권 향상과 임금의 가파른 상승을 불러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데 일조했다. 그 영향으로 울산은 높은 소득수준을 유지하며 부자도시로 불렸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진보정치의 배경이된 대기업 노조가 보수화 되는 경향을 보이는 데 이어 지난해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진보정치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보수-진보' 양날개로 날아가던 울산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것.

조선업종 하청노동자 3천여 명 일자리 잃어... 지역 상인들도 울상

 울산지역 야 4당과 노동계, 시민사회 등으로 발족한 울산원탁회의가 지난해 12월 19일 울산 남구 신정동 통합진보당 울산시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사망선고를 했다"며 "더 이상의 민주주의 후퇴를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진보당은 해산됐고 이후 진보정치일번지 울산은 급ㄱ겨한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다
울산지역 야 4당과 노동계, 시민사회 등으로 발족한 울산원탁회의가 지난해 12월 19일 울산 남구 신정동 통합진보당 울산시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사망선고를 했다"며 "더 이상의 민주주의 후퇴를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진보당은 해산됐고 이후 진보정치일번지 울산은 급ㄱ겨한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다 ⓒ 박석철

1963년 '10만' - 1997년 '100만' - 2015년 '120만'. 울산광역시의 인구수 변화다. 울산만 특별하게 출산율이 높지 않을진데, 이같은 기하급수적인 인구증가는 타도시에서의 인구 유입을 의미한다.

1963년 특정공업지구 지정 당시 조용한 농어촌 도시였던 울산은 현재 인구가 자신보다 10배나 많은 경기도와 수출액 1~2위 도시를 두고 다툴 정도로 공업중심의 산업이 발달했다. 울산을 노동자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다.

울산이 진보정치일번지로 불리게 된 것은 지난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시발점이 됐다. 대기업 노동자들에 따르면, 1987년 이전 노동자들은 임금은 물론 노동인권의 질도 상상 이하였다. 대기업 노동자들도 아침출근 때면 회사관리자로부터 두발검사를 받는가하면, 법적으로 보장된 월차를 신청하다 관리자로부터 얻어터지기도 했다. 삼성SDI의 기숙사에서는 관리자가 "전열기기가 있는지 점검한다"면서 여직원의 개인용품을 뒤지기가 다반사였다.

1987 노동자 대투쟁은 노동인권 향상과 임금상승을 불렀다. 노동자 세력을 바탕으로 한 진보정치의 발전은 노동자가 구청장이 되고, 전체 지방의원 중 30% 가량이 노동자와 진보성향 정치인으로 채워지면서 보수정치의 독선과 대기업의 횡포에 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했다. 선순환적으로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과 처우는 지속적으로 향상됐고, 이는 곧 전체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같은 풍요속에 또 다른 빈곤이 생기기 시작했다. 회사측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를 양산하면서 급기야 노동계 내에서도 양극화가 발생해 또다른 사회문제를 잉태하기 시작한 것.

노동의 양극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대투쟁에 앞정섰던 대기업 공장내에서 빈발했다.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우리나라 비정규직 문제의 바로미터가 되면서 극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고,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종 대기업은 이미 하청노동자의 수가 정규직의 배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근래들어 이들 대기업의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올해 1월 정규직 사무직 1만 3000여 명이 희망퇴직이란 미명아래 정리해고 됐고, 특히 3000여 명의 하청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같은 인원감축은 곧바로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울산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청의 2015년 지방세 징수 목표액 중 주민세는 2014년 당초액 157억7900여만 원보다 11억5600여만 원 줄어든 146억2300여만 원이 목표다.

지역 상가도 울상이다. 지역언론들에는 매출 감소로 힘들어 하는 지역상인들의 목소리가 보도되고, 정부와 여당은 최근 이같은 울산의 경제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울산에서 현장최고원회를 열기도 했지만 별다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경제위기와 정리해고는 과거 진보정치가 활성화 됐던 시기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동안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노동계와 야권이 한데 뭉쳐 정치권의 개입과 대기업의 양보를 촉구하며 어느정도 효과를 냈던 것과는 판이한 것. 결국 진보정치 침체와 대기업노조의 보수화는 시민구성원이 일자리를 잃고 있는 현실을 속수무책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상황에 일조했다.

현대중공업과 양축을 이루는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이 겪는 어려움도 대동소이하다. 비정규직들이 잇따른 법원의 정규직 인정 판결에도 제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만일 법원의 판결대로라면 대기업정규직이 증가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대기업노조의 보수화, 전체 노동계 단결에도 찬물 끼얹어

 설 명정을 앞둔 지난 2월 5일 울산 동구 월봉시장이 과거와 달리 텅빈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역졍제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설 명정을 앞둔 지난 2월 5일 울산 동구 월봉시장이 과거와 달리 텅빈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역졍제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 박석철

한때 노동계의 총파업을 이끌었던 현대자동차노조는 보수화를 수년 째 지속되고 있다. 현대자노조는 지난해 8월, 비정규직이 반대하는 회사측과의 신규채용에 오히려 합의하면서 비정규직을 궁지로 내모는가 하면, 지난 4월 24일 총파업 때는 상급단체의 의결에도 불참하면서 전체 노동계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인권단체 등은 막강한 조직력을 갖춘 현대차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벌써 해결됐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자신들의 문제와는 달리 비정규직 문제에는 소홀한 현대차노조를 향한 지적은 수년 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3년 7월 '법원 판결대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철탑농성을 벌이는 현대차 비정규직을 응원하러 희망버스를 타고 온 당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번 희망버스로 느낀 것은 현대차의 탐욕과, 담장 안에 갇혀서 움직이지 않는 노동자의 양심"이라며 "현대차의 탐욕보다 움직이지 않는 양심에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대기업노조의 이기심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한때 민주노조의 표본으로 불리던 현대중공업노조의 보수화는 이보다 앞서 십수 년 전부터 진행돼 왔고, 급기야 하청노동자를 외면한 것이 도가 지나쳐 지난 2004년 자신들이 주도해 설립한 민주노총으로부터 제명되기까지 했다.

현재 현대중공업노조는 십수 년만에 진보성향의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현대중공업노조는 최근 '전 집행부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특별조사'를 추진하면서 민주노조의 명맥을 잇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오랜기간 진행되어온 노조 구성원의 보수화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차에, 현대중공업노조가 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하청노동자들이 하청노조에 집단가입하도록 운동을 벌이는 한편 하청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지지 않도록 보호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향후 울산의 보수화 진행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울산 진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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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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