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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내가 도시가스공사의 전화를 받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오는 가스공사로부터 온 전화를 나 다신 아이가 받고 그 내용을 정리해 내게 전하는 문자였다. 그 가스공사는 "어머니에게 6일날 오전에 공사를 하러 간다고 전해주시고 공사대금은 5월 안에 넣어달라고 전해주세요"라고 했단다.

유명한 수암골 산자락 아래 있는 조그만 서당처럼 막다른 골목에 있는 예술꽃자리에 도시가스가 들어오면서 골목길을 파헤치고 집집마다 배관공사를 마쳤다. 그리고 한 집 한 집 보일러 설치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사의 진행을 위해서 나는 나 혼자서는 상대하지 못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세상을 동행하는 고마운 인간의 향기로 상대하고 있다.

가까이는 일찍 세 살부터 전화를 받아 전달해주고 다섯 살부터 시장의 상인들의 말을 통역해줘 일찌감치 '애어른'이 된 딸에서부터, 내게 묵향을 배우는 문하생 그리고 동료들 그리고 이웃사람들까지 모두 내 통역자 역할을 자처한다.

마치 외국의 어느 마을의 청각장애인 한 명과 더불어 가기 위해 그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수화를 배웠다는 일화처럼 수화는 아니더라도 모두 구화를 하면서 나와 상생한다. 끼리 끼리여야 평안하다는 말이 때로는 맞을 수도 있지만, 아닐 때도 많다. 왜냐하면 세상은 장애와 비장애가 함께 손바닥과 손등처럼 상생하니까 말이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구화를 하더라도 여전히 인터넷 메일이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잘하지 못하는 비장애인들은 전화를 사용하고 나는 그 전화로 오는 내용은 통역을 받아야 한다.

보일러를 설치하는 날은 마침 '묵향의 꽃자리'라는 내 문하생 동아리들이 모여서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일주일 내내 바쁘게 살다가 고즈넉한 묵향의 소담한 향기를 나누는 자리다.

그런데 그 자리에 도시가스 보일러를 설치하느라 기술자가 몇 명 오고 도시가스 인입관이 잘못돼 도시가스 관련 업자도 왔다. 다시 보일러 조정기를 설치하는 사람이 오고... 그 모든 사람들이 전달하는 말은 내겐 '외국어'나 다름 없었다.

그럴 때 내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문하생 중에서 알아서 한 명은 보일러실에, 한 명은 전화통을 붙잡고 도시가스관 설치가 잘못됐다고 한다. 묵향의 꽃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나는 일하러 갔지만 그들은 오후 3시 공사가 마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줬다.

 행복이란 건 이런 것 아닐까.
행복이란 건 이런 것 아닐까. ⓒ 이영미

내가 자원봉사로 지도하는 주민센터에서도 가끔은 배우러 오는 주민들이 나의 귀가 되거나 동사무소 직원이 내 귀가 된다. 이전에는 눈치가 많이 보여 될 수 있으면 부탁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냥 모두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평안하게 웃으며 하고 있다. 눈치란 내가 눈치를 보이면 다른 사람이 눈치채는 것이고, 내가 눈치 없이 진솔하게 하면 다른 사람도 진솔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경험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나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시간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어 장애-비장애 관련 없이 보통의 서민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고맙다.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그래서 나도 그들처럼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면 나의 시간과 마음을 나눈다. 이렇게 나누다 보니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마음으로 나누는 선물은 아무리 불을 붙이고 또 붙여도 꺼지지 않는 촛불 같은 전염성이 있는 것 같다.

새로 생긴 자리가 아직 잡히지 않은 어떤 장애기관은 초대장에 우리는 모두 선물이라는 내용을 해달라고 해서 보냈는데, 그 귀절을 완성하기 위해서 백번 쯤 쓰고 나니 선물처럼 느껴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들리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만질 수 없는 세상의 모든 빛들과 마음의 향기에 집중할 수 있는 선물을 받았다.

8일이 어버이날이라 큰 행사를 치르는데 주최 측이 현수막 등을 할 돈이 부족하다고 해 나느 점심시간을 활용해 여러 가지 행사 안내문을 10여 장 썼다. 그리고 어느 사회적기업국수공장에서도 새 국수를 생산하는데 홍보디자인이 비싸다고 해 캘리디자인을 예쁘게 해서 보내줬다. 내가 나눌 수 있는 선물은 돈과 나이와 상관없는 것 같다.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생전의 그 모습대로 "어이구 우리 막내! 잘하고 있네!" 하실 것 같다. 나는 항상 막내답게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씀을 내게 한 적이 없었던 친정엄마가 좋아하는 일이, 바로 당신이 그랬듯이 사람들과 사이좋게 무엇이든지 잘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이었으니까.

어버이날 선물로 카네이션 대신 '동행'하는 현재의 삶의 모습을 드린다.

"엄마!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잘 동행할게요! 사랑해요!"


#서예가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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