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캠퍼스에서는 구글 제품을 강요하지 않는다."
구글 캠퍼스 서울이 8일 문을 열었다. 구글에서 창업가(스타트업)를 지원하려고 만든 공간으로, 영국 런던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이어 세계 세 번째, 아시아에서 첫 번째다.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오토웨이 빌딩에 있는 캠퍼스 서울 개소식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와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등 한미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마치 박근혜 정부가 전국 시도에 만들고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을 보는 듯 했다.
실제 박 대통령은 이날 "취임하고 얼마 안 돼 래리 페이지 구글 CEO을 만나 창조경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는데 이렇게 구글 캠퍼스 설치로 화답해 주어 매우 기쁘다"면서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구글 캠퍼스 같은 글로벌 기업 프로그램, 민간 창업보육 생태계의 장점을 잘 결합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캠퍼스 서울은 삼성, 현대차, SK, KT 등 국내 대기업에게 할당해 만든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차원이 달랐다.
구글 "서울은 창업하기 좋은 도시... 한국에만 머물러선 안돼"
우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간이나 운영비를 제공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달리, 캠퍼스 서울은 온전히 구글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임정민 캠퍼스 서울 총괄은 "그동안 한국 스타트업 지원 관련해서 한국 정부와 서로 도와가며 일했지만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거나 한국에 금전 지원하는 건 없다"고 밝혔다.
서울 캠퍼스도 3년 전 문을 연 런던 캠퍼스와 마찬가지로 구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창업가 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다. 이에 앞서 구글은 지난 2011년부터 국내 창업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글로벌 K스타트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매리 그로브 구글 창업가 지원팀 총괄은 이날 "구글 자체가 17년 전 래리 페이지를 비롯한 창업가들로 구성된 회사이고 창업가 지원팀을 구성해 전 세계 125개 국에서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서울을 선택한 건 혁신적이고 성장하는 스타트업이 많이 몰려 있고, 해외 시장 진출 가능성이 높은 데다 직원 200명을 둔 구글코리아가 있어 멘토링, 강의 등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990년대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카림 템사마니 구글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은 "한국은 정부가 창업 지원 규모를 3억6천만 달러로 높여 창업하기 좋은 시기"라면서도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인수 합병이나 기업 공개를 통한 초기 단계 투자금 회수가 어렵고 자원과 노하우 네트워크가 부족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국 시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템사마니 사장은 "삼성과 LG가 안드로이드를 활용하면서 스마트폰이 대표적 수출품이 되고 유튜브 등을 통해 문화 리더십을 발휘했듯 창조경제가 또 다른 리더십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면서 "지금 한국 개발자 수가 구글플레이에서 5위 안에 드는데 한국의 혁신을 위해 굳이 서울에 머무를 필요도 없고 실리콘밸리를 가지 않아도 이런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회원가입 하면 누구나 무료 이용... 미니 주방에 수유 공간까지
오토웨이 지하 2층 2000㎡ 공간에 마련된 캠퍼스 서울은 누구든 회원으로 가입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회원에게 발급하는 출입카드를 찍고 입구에 들어서면 역시 스타트업 커피 전문점인 '빈 브라더스'에서 운영하는 캠퍼스 카페가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이곳에서 커피나 음료를 나누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
한꺼번에 수십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이벤트홀과 강의실에선 성공한 창업가들을 불러 노하우를 듣는 행사를 수시로 열고 있다. 이밖에 스타트업 입주사 전용 공간에는 개방된 개인 사무실과 회의실, 개발자가 만든 애플리케이션들을 여러 다양한 단말기에서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디바이스 랩' 등이 마련돼 있다.
간단한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미니 주방과 어린 자녀를 데리고 일하는 엄마 아빠 창업가를 위한 수유 공간도 눈길을 끌었다. 입주사 선정에도 미혼 남녀 중심이 아니라 기혼 여성, 노년층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평일은 오후 7시, 주말과 일요일은 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다. '야근'은 사절인 셈이다.
캠퍼스 서울은 공식 개소에 앞서 지난달 14일부터 3주에 걸쳐 시범 운영했다. 그 결과 2800명 이상이 캠퍼스 서울을 다녀갔고 28개국 국적을 가진 1000명이 넘는 창업가가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한다. 구글은 올해 안에 회원 6천 명 이상을 목표로 삼고 있다.
3년 전 문을 연 런던 캠퍼스의 경우 현재 회원수가 4만 명이 넘는다. 그동안 이곳을 통해 1억 1000만 달러(약 1200억 원) 투자를 유치했고 고용 창출 효과도 1800명에 이른다.
현재 이곳에는 스마트폰 카메라 필터 앱 '레트리카'를 만든 벤티케익을 비롯해 영어 작문 도우미 서비스 '채팅켓' 등 8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84명이 입주해 있다. 이들은 1년 동안 캠퍼스 서울을 사용할 수 있다.
구글 캠퍼스는 '스타트업 DNA'...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기업 DNA'
구글 캠퍼스는 올해 안에 서울에 이어 스페인 마드리드, 브라질 상파울로, 폴란드 바르샤바 등 전 세계 6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구글 캠퍼스는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게 돕는 게 목표지만 거꾸로 외국 스타트업이 한국에 진출할 수 있게 돕기도 한다. 각국 스타트업이 런던, 텔아비브, 서울에 있는 각 캠퍼스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캠퍼스 교환' 행사가 대표적이다.
임정민 총괄은 "지난달 런던 캠퍼스에서 열린 교환 행사에도 한국 핀테크 기업이 와 현지 기업들과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을지 의논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이런 교류 행사를 통해 전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를 고루 발전시키는 게 우리 목표"라고 밝혔다.
임 총괄은 "구글이 서울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한국이 모바일과 게임,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제조업 2세대 발전도 기대할 수 있어서다"라면서 "한국에서 최고를 세계에 전달할 수 있고 해외 기업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돕는 양방향 역할을 기대한다"이라고 밝혔다.
또 한 가지 캠퍼스 서울이 기존 대기업이 운영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가장 큰 차이점 가운데 구글 자체가 스타트업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매리 그로브 총괄은 "구글도 차고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창업 기업에 어떤 도전 과제가 있는지 잘 알고 있어 지원에 나설 수 있었다"라면서 "스타트업이 성공하면 인터넷과 구글 서비스 사용도 늘어나고 사회 발전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로브 총괄은 "구글 캠퍼스에선 구글 제품 사용을 강요하지 않고 (입주사가) 구글 제품이나 서비스만 개발할 필요도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반면 전국 17개 시도 창조경제혁신센터 가운데 벤처기업에 뿌리를 둔 곳은 네이버(강원도)와 다음카카오(제주도) 두 군데 정도다. 나머지는 삼성, 현대차, 롯데 등 대기업에서 운영하고 있고 자신들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분야와 기업으로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