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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일기장>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잿빛 승복입고 걸머멘 걸망에 뭐가 들었을까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궁금합니다.
 <스님의 일기장>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잿빛 승복입고 걸머멘 걸망에 뭐가 들었을까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궁금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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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가 쓴 것이라도 '일기장'은 내용을 궁금하게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써져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고, 꼭꼭 감춰 놓은 비밀, 들키지 않은 첫사랑, 고백하지 못한 마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어떤 비밀스런 고민이 감춰져있을 것만 같은 게 일기장이기 때문입니다.

일기장이라는 세 글자만으로도 이렇듯 궁금하기 짝이 없는데, '스님'이 쓴 일기장이라고 하면 그 내용이 더더욱 궁금해집니다. 잿빛 승복 위로 걸머멘 걸망에 뭐가 들었을까 하는 궁금증보다 훨씬 더 궁금합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들어있을 수도 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어떤 사연, 출가를 결심하게 된 우여곡절 같은 사연도 들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쓴 일기장을 봤습니다. 일기장이 아니라면 읽을 수 없을 법한 내용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호기심 많고 자제력 부족한 시절, 아직은 악동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중학교 시절에 철모르고 저질렀던 잘못이 일기장에 기록돼 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자전거가 무척 가지고 싶어서 낡은 자전거 한 대를 훔쳐서 마음 졸이며 타고 다닌 적이 있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 스무 살 무렵에 최신형 자전거를 새로 구입해서 집 앞에 세워 두었는데 밤새 도둑을 맞고 말았다. 내가 남의 것을 훔친 것처럼 또 누군가가 나의 것을 훔쳐갔던 것이다. -<스님의 일기장> 129쪽-

30년 수행 스님이 쓴 <스님의 일기장>

<스님의 일기장> (지은이 현진 / 그린이 필몽 / 펴낸곳 담앤북스 / 2015년 5월 8일 / 값 1만 4000원)
 <스님의 일기장> (지은이 현진 / 그린이 필몽 / 펴낸곳 담앤북스 / 2015년 5월 8일 / 값 1만 4000원)
ⓒ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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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일기장>(지은이 현진, 펴낸곳 담앤북스)은 30년 전에 출가해 20여 년째 글을 쓰고 계시는 현진 스님이 일기를 쓰듯이 써낸 글들입니다.

대개 일기들이 그러하듯 아주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비밀스런 이야기까지, 어디서 들은 것처럼 익숙한 내용에서부터 경험한 당사자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까지를 폭 넓게 아우르고 있습니다.

스님은 중학교 때의 일을 통해 '인과의 율동', 내가 나쁜 짓을 하면 '장소의 차이일 뿐 언젠가는 나의 잘못을 세상이 그렇게 되갚아 주는 게 이치'라는 걸 절실하게 실감하셨나 봅니다.

스님께서는 '복수를 준비하는 그 시간에 용서를 한다면 간단히 해결되는 일도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한 깨우침으로 말씀하십니다.

140여 꼭지의 일기 중에는 행복해지는 비법을 담은 이야기가 목탁 소리처럼 실려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지혜가 폐부를 파고드는 솔바람처럼 일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산사,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108배를 올리는 수행승의 모습도 그려지고, 독경소리를 닮은 삶의 지혜도 그려집니다. 어느새 마음은 일기 속 주인공을 더듬어나가는 나그네 모습입니다.

쉰 살,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때'

언제부터인가 등산이 대세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등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50대를 전후한 중년들이 적지 않습니다.  혈기왕성한 청춘들보다 50대 전후의 중년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쉰 살이라는 나이에 있음을 알겠습니다.

인도에서는 쉰 살의 나이를 '바나플러스'라고 표현한다고 들었다. 이 말은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때'라는 뜻이다. 경쟁과 타성에 젖은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인생의 근원적인 물음과 마주할 시기라는 의미다. -<스님의 일기장> 205쪽-

쉰 살의 나이를 인도에서는 ‘바나플러스’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때’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쉰 살의 나이를 인도에서는 ‘바나플러스’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때’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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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쓴 일기는 짧지만 깊고 긴 울림을 가져옵니다. 일기에 곁들여 있는 먹그림이 그 울림을 더해 줍니다. 일기장에 갈피로 넣던 나뭇잎처럼 군데군데 삽입돼 있는 먹그림, 흑청 2색으로 그린 먹그림은 붓으로 그려낸 또 하나의 일기입니다.

표주박에 띄운 나뭇잎이 찰랑 거리는 물결을 잡아주듯, 담백하게 그려진 먹그림은 벌컥벌컥 일어나는 마음을 일렁일렁 잠재웁니다. 스님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하고 물어오는 질문에 '좀 밑지는 기분으로 인생을 살면 됩니다'라는 대답으로 일기를 마감합니다.

<스님의 일기장>에서 읽을 수 있는 건 지나간 못다한 고백, 꼭꼭 감춰 놓은 비밀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등댓불 같은 지혜, 행복으로 가는 이정표, 느낌표처럼 다가오는 또 하나의 깨달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스님의 일기장> (지은이 현진 / 그린이 필몽 / 펴낸곳 담앤북스 / 2015년 5월 8일 / 값 1만 4000원)



스님의 일기장

현진 지음, 담앤북스(2015)


태그:#스님의 일기장, #현진, #필몽,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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