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1년여 앞둔 2011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한나라당의 손석희'로 통했다. 차분하고 논리적인 말솜씨는 물론 말끔한 이미지까지 '손석희 앵커'를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그는 2012년 초 결별 전까지 '미래권력' 박근혜의 최측근이었다. 그의 옆에는 늘 기자들이 따랐다.
유 원내대표는 원조 '엄친아'로도 불렸다. 당내에서 "잘 생기고 집안 좋고 실력도 있고 겸손하고 인간성도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그는 1976년 대입 예비고사에서 전국 차석을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기에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보수의 몸통' TK(대구·경북) 출신이었다. 유 원내대표의 부친은 판사 출신으로 대구 중구가 지역구였던 유수호 전 민정당 국회의원(13·14대)이다.
'한나라당의 손석희'로 불린 유승민의 과감한 '전향'유 원내대표의 정치입문은 2002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이끌었다. 이 전 총재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있던 유 원내대표를 한나라당 산하 연구기관인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발탁했다. 이후 그는 이 전 총재의 경제교사 역할을 하면서 핵심 참모가 됐다.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당시 박근혜 대표가 존폐 기로에 섰던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면서 유 원내대표는 '박근혜의 사람'이 됐다. '정적' 이 전 총재의 최측근을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삼으려는 박 대표의 삼고초려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후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전략기획을 책임지는 핵심 책사가 됐다.
총재와 대표 2명을 보좌하는 동안 그는 전형적인 '예스맨'과는 달랐다. 제왕적 총재였던 이회창 밑에서도,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던 박근혜의 비서실장이었을 때도 쓴소리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참모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윗사람의 뜻에 맞추기보다 소신을 지키며 윗사람을 자기 스타일로 다듬어가는 참모형이었다. 그런 그를 두고 "언젠가 자기 정치에 나설 사람"이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유 원내대표는 2011년 변신을 시도했다. 이제 누구의 참모가 아니라 '내 정치를 하겠다'는 선언 같았다. 그는 당 대표 경선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감세중단·무상급식·무상보육을 주장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복지 정책을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맹비난했던 그로서는 과감한 '전향'이었다. 당내 일부는 "민주노동당 대표로 출마하라"며 비아냥 거렸지만 "복지는 원래 정통 보수가 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또 "금융위기 이후 정권들이 양극화 해소에 실패해 비정규직·청년실업 문제가 너무 커져 공동체가 붕괴될까 두렵다", "수천억을 버는 재벌과 100만 원이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들, 이 양극을 두고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도, 국민통합을 이룰 수도 없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당시 경선에서 2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유승민의 과감한 전향...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신 보수 선언'2015년 2월 그는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당의 지향점을 부자·대기업이 아니라 가장 고통받는 국민들한테 두자"는 '용감한 개혁'과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는 당·청 관계 재정립을 내세워 당내 주류였던 '친박계'를 넘어섰다.
12일 유 원내대표는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의 100일을 두고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청와대에 할 말을 하는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론에 대해 허구라고 날을 세웠고 야당도 꺼리던 증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보수 진영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도 "성역이 될 수 없다"라고 했다. 특히 청와대 십상시 파문이 정국을 강타하던 당시, 당내 친박계는 숨죽여 있을 때 그는 '문고리 권력 3인방'을 향해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일갈했다.
지난달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신(新) 보수 선언'의 정점이었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노선을 재천명하면서 양극화 해소와 공동체 회복,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등 과감한 좌클릭 정책을 내놨다. 이를 통해 부자정당, 기득권 정당이라는 새누리당의 낡은 유산을 청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시장의 기능과 정부의 개입만으로는 양극화 해소에 한계가 있다며 협동조합 등 소규모 사회적 경제 주체 주도의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적 경제론'도 제시해 야당을 잔뜩 긴장시켰다. (관련기사 :
'야당의 언어'로 연설한 유승민)
유 원내대표는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법인세율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감세를 해왔을 때, 당 안에서 감세 중단을 얘기했고, 감세가 실제로 중단됐었다"라며 "이제 (법인세율을) 어느 정도 인상할 것이냐는 부분은 당내 논의를 통해 결정해 가겠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존재감 확보했지만... 첫 시련 안긴 공무원연금 개편유 원내대표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당의 차기 주자로 유승민을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보수의 적통인 TK출신에 안보는 정통 보수 노선을 주장하고 경제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를 무기로 외연 확장에 나설 경우 파괴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원조 친박'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자기만의 정치적 존재감 확보에 성공하면서 차기 지도자의 면모를 갖췄다는 평가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유 원내대표의 '신 보수 노선'이 선거를 앞두고 득표를 위해 급조한 것이 아니라, 비교적 뚜렷하게 유지해온 정치적 소신이라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실패로 취임 후 첫 시련을 맞은 게 사실이다. 그의 리더십에 생긴 상처 또한 깊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야당과 협상하면서 공무원 ·시민단체와 소통하는 한편 청와대와 조율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문구를 국회 규칙의 부칙에 명기하는 방안을 놓고 당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당내 친박계는 때를 놓치지 않고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결국 당 차원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문구 명기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면서 결정적일 때 청와대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도 노출했다.
유 원내대표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건강한 당·정·청 관계를 만들기 위해 지금 진통을 겪는 중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당내 일부의 반발 때문에 결국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가) 이뤄지지 못했던 점은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지난 6일 통과시키는 게 국민을 위해서도 옳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서도 옳았다는 확신을 갖고 추진했다"라며 청와대와 일부 친박계 의원들의 조직적 반대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내년 총선이 승부처? 더 큰 시험 앞둔 유승민취임 100일 만에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유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을 정치적 승부처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20대 총선에서 '신 보수 노선'을 더욱 구체화해 승부를 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가장 중요한 일은 총선 준비"라며 "총선 승리를 위한 당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가칭 총선정책기획단을 구성해 내년 총선에 국민이 원하는 약속을 내놓는 노력을 시작하겠다"라고 밝혔다.
그가 주도하는 총선기획단에서는 새누리당 내에서 반발이 큰 법인세 인상 등 증세, 복지 확대, 재벌 개혁 등을 당론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작업들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상 적지 않은 저항을 돌파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 원내대표의 리더십과 정치력은 더 큰 시험을 앞두고 있다.
유 원내대표의 '신 보수 선언'이 선언으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당내 개혁파의 목소리를 얼마나 키워내고, 실질적인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유 원내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