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2일 오후(현지시각) 네팔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남체를 중심으로 진도 7.4의 지진이 또 발생했다. 이번 지진이 난 것으로 알려진 곳은 남체라고도 하고 순 카니라고도 한다. 순은 네팔말로 금이고 카니는 먹는다라는 뜻인데, '순 카니'는 과거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로 가고자 한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트레킹을 시작했던 지역이다.

이곳은 마을 이름처럼 매우 쉽게 금을 채취할 수 있는 지역으로, 땅조차 금색이다. 지진 발생 후 20분 만에 전화로 연결된 카트만두에 사는 처제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두려움에 떨었다. 지진의 공포를 이야기하는 처제의 목소리가 안타까웠다.

지진이 난 후 5분이 지났을 때 네팔 친구의 페이스북을 통해 규모 7.4의 강진이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됐고 곧 카트만두에 살고 있는 처제에게 전화를 시도했다. 며칠동안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된 듯했다.

처제는 자신에게 위기가 닥친 순간에도 우리 부부를 걱정했다. 그러면서 카트만두에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공포가 닥쳤음에도, 언니와 형부를 걱정하는 처제 때문이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억지로 눈물을 참고, 처제에게 넓은 광장을 향해 가라고 말했다. 처제는 일터 벽에 걸려 있던 선반이 떨어지고 흔들리는 공포로 밖으로 뛰쳐나왔는데도 계속 땅이 흔들린다고 했다. 지난번에 왔던, 진도 7.9의 지진보다 더 그 충격이 심하다면서 엉엉 울었다.

사진 왼쪽은 처남과 치트완 국립공원에 조류탐사를 함께 떠났을 때 사진이다. 한복입은 처제의 모습이 밝다.
▲ 처제와 처남의 안부 사진 왼쪽은 처남과 치트완 국립공원에 조류탐사를 함께 떠났을 때 사진이다. 한복입은 처제의 모습이 밝다.
ⓒ 김형효

관련사진보기


얼마 후쯤 다른 지인들과 소통을 해보려 했다. 전화는 거의 불통이다. 아마도 지진 소식을 들은, 세계 각국에 있는 네팔인들이 동시에 전화를 걸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3시간 후 처남과 통화가 되었다. 처남과 지인들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지진은 우리를 땅 위로 끌어올리는 듯했다. 하지만 부모님 마을의 집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사람은 안전해서 다행이다."(처남 라젠드라 구릉)

"나는 그냥 희망한다, 아무 일 없는 일상을... 나는 지금 안전하다 이번 지진은 진도 7.4로 두 번째 큰 지진이었다."(네팔 화가 비케이 날 바하두르)

비케이는 로맨틱해 보이는 천막을 자신의 집이라고 소개하는 여유를 보였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아내와 어린 딸아이 그리고 비케이 모든 네팔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한다.

지난번 지진과 달리 이번에는 스스로 페북에 안부를 전하는 비케이 그의 새로운 집이라고 소개된 천막이다.
▲ 화가 날 바하두르 비케이의 안부 지난번 지진과 달리 이번에는 스스로 페북에 안부를 전하는 비케이 그의 새로운 집이라고 소개된 천막이다.
ⓒ 김형효

관련사진보기


다음은 꺼멀 쁘라싸다 고이랄라 초대 주한네팔대사도 SNS에 글을 올렸다.

"내 딸이 집에서 밤을 보내고자 하는데 그녀의 딸은 잠을 자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베개를 가지고 집에서 나왔다. 딸은 집 앞 자신의 차에서 자려고 했었던 것이다. 손녀 딸 때문에 나는 거의 자정을 지나 깨어 3팩의 보드카를 못 마시고 숙면을 취하려고 했다.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을 못 이뤄 밖으로 나온 꺼멀 쁘라싸다 고이랄라 선생은 근처에서 보드카를 사려 했지만, 살 곳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마침내 보드카를 살 수 있는 곳을 찾았지만, 원하는 양만큼 살 수 없었다고. 하지만 보드카를 살 수 있는 곳은 너무 멀어 살 수 있는 양만 사서 천천히 마시며 집으로 걸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누구도 지진을 무서워 하지만, 생활을 즐기고 사는 경우에 인생은 아름답다"고 독백을 했다.

그의 글에 유버 라즈 성그로우라씨는 "당신의 말은 아주 좋은 제안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꺼멀 형님처럼 보드카를 살 수도 없습니다"라며 "그들은 심지어 음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좋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초대 주한네팔대사를 지낸 꺼멀 쁘라싸다 고이랄라의 안부를 묻고 있으면 언제나 즈겁다. 이 처참한 순간에도 여유가 느껴지는 그의 독백은 지난한 삶의 파고를 넘어선 사람의 것이리라.
▲ 초대 주한네팔대사 꺼멀 쁘라싸다 고이랄라의 안부 초대 주한네팔대사를 지낸 꺼멀 쁘라싸다 고이랄라의 안부를 묻고 있으면 언제나 즈겁다. 이 처참한 순간에도 여유가 느껴지는 그의 독백은 지난한 삶의 파고를 넘어선 사람의 것이리라.
ⓒ 김형효

관련사진보기


이에 꺼멀 쁘라싸다 고이랄라 선생은 이렇게 반응했다.

"예, 당신이 삶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삶의 모든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노력은 삶의 끝없는 진전이다. 생명이 있는 한 모든 즐거움을 함께 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는 약간의 충격을 감내하고 있어요. 그런 것을 우리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새벽 3시 12분 지금도 여진이 느껴지고 있어요."

두 사람에 대화가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알 수는 있을 듯하다.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무사하기를, 하지만 나는 이 어른들의 대화와 무관한, 공포에 휩싸인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꺼멀 선생의 손녀도 그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볼 때면 내가 무슨 죄라도 진 듯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각종 SNS에서는 모두가 무슨 일이야?(깨버에꼬?) 왜 이러는 거야?(깨거르니?)라는 네팔 사람들의 안타까운 표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Back To The Normal Life!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진도 7.4의 강진이 발생한 후 카트만두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아이들은 그 공포를 더욱 심하게 느꼈다고 한다. 지난 강진보다 카트만두에서 더욱 심한 흔들림이 있었다고 한다.
▲ 흔들리는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 진도 7.4의 강진이 발생한 후 카트만두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아이들은 그 공포를 더욱 심하게 느꼈다고 한다. 지난 강진보다 카트만두에서 더욱 심한 흔들림이 있었다고 한다.
ⓒ 랄라 구릉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또 다시 지진이 난 네팔, #규모 7.4강진 발생, #순 카니, #남체 바자르, #네팔 사람들에 안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