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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구제역, AI 바이러스의 창궐과 살처분은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1000만 돼지들의 99.9%가 사육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실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5월 7일 개봉해 극장에서 상영중인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전국을 뒤흔들었던 구제역 살처분 대란 이후 '진짜 돼지'를 찾아 떠나는 한 가족의 여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영화 제작·배급사인 시네마달이 '당신의 식탁이 위태롭다'란 타이틀로 기획 기사를 보내와 몇 편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 시네마달

황윤 감독이 만든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대학원생들과 같이 봤다. 그동안 내 연구실에는 채식만 하는 힌두교 네팔 유학생도 있었고, 엄격한 종교적 절차에 의해 도축된 고기만을 먹은 이슬람 학생도 있었다. 그들은 외식이 거의 불가능했다.

수의과대학 입장에서 볼 때 영화의 내용은 그리 새로운 게 아닐 수 있다. 영화는 공장식 사육의 참혹함과 더불어 전염병 창궐 및 신종 인수공통전염병의 등장 등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대량 생산과 소비가 미덕인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할 대가를 절제된 목소리로 차분하게 설명한다.

영화는 살아있던 한 생명체가 도축장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고, 어떻게 해체돼 보기 좋은 상품으로 전환되는지에 대한 부분을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도축장의 폐수 영상만으로 처리한다.

감독의 경험으로 드러나는 잡식가족에서의 문제의식 내지 딜레마는 기본적으로 '불편한 진실'로서의 과도한 '육식문화이자 생명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단지 고깃덩어리라는 상품으로 제시되고 이를 별개로 생각하고 자연스레 수용한다. 이 분열된 간극에 대한 불편함과 더불어 우리와 같이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를 소비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사회적 입장에 대한 불편함이다. 영화에서는 그 두 가지 측면의 불편한 진실을 관객에게 묻는다.

슈퍼마켓에 보기 좋게 진열된 쇠고기, 돼지고기들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사육되고 처리돼 그곳에 진열되는지를 막연하게 생각한다. 그 고깃덩어리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통만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느끼던 생명체였다는 것은 어린이 동화책에서나 확인된다. 더욱이 공장식 사육의 폭력성보다는 대량 생산에 의한 제품 가격 하락이 더 와 닿을 뿐, 대부분의 소비자는 공장식 사육이든 유기순환 축산 방식이든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당신은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가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이런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면서 정작 불편한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받아들여야 할 진실을 불편하게 느끼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불편하게 느끼는 우리 자신에 대한 불편함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사회의 다수가 믿고 공유하는 사실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사실은 진실과 같을 수도 있지만,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먹기 좋은 형태로 전시돼 있는 살코기 제품은 우리에게 위생처리된 안전식품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진실은 신자유주의 자본논리에 의한 기업의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투여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에 담겨 있다.

황윤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보여준 사실과 진실 사이의 틈새는 그 진실을 불편해하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불편함을 상기시킨다. 이중적 태도로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남겨두고자 하는 인간들에 대한 불편함을 묻는 감독의 문제의식은 우리들에게 향해 있다. 과연 우리는 사실과 진실의 틈새를 들여다보면서 진실에 직면할 자세가 돼 있는 걸까.

공장식 사육은 동물에 대한 폭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에 대한 폭력이기도 하다. 새로운 질병의 발생뿐만 아니라 창궐 요소도 되기 때문이다. 지구는 지금 인구 증가로 인한 종간 접촉 증대, 세계화로 인한 교역과 이동 증가, 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집단 면역성 저하, 의료 민영화로 인한 의료관리 소외 계층의 증가, 기후 온난화 및 인간 위주의 과학 기술로 인한 생태계 균형 파괴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소비문화로 인한 집단 동물사육과 대량소비로 새로운 질병의 등장은 이미 예견됐고, 이미 등장하고 있다.

이미 사회 재난으로까지 확대됐다. 이제 한국 사람들에게 구제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는 더 이상 새로운 질병이 아니다. 30여 년전 인류계 내로 들어와 3000만 명을 죽인 AIDS나 영국과 EU의 축산을 황폐화 시켰던 광우병, 혹은 2012년 9월에 처음 보고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등 우리의 미래 세대가 겪어야 할 새로운 질병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과학문명과 신자유주의 시대에 있어서 우리를 위해 죽어야 하는 생명체의 고통과 그 관계성에 대한 인식은 철저히 생산성 논리와 기업 체제로 대체된다. 또한 싸고 보기 좋은 고기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인 한, 대량 매몰을 불러오는 기업의 공장식 밀집사육을 대체할 건강한 소규모의 생태축산이나 순환유기축산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중요한 건 '선택'이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황윤 감독은 자신의 아들과 돼지새끼를 나란히 놓고서 '생명의 가치'를 떠올린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한 장면. 황윤 감독은 자신의 아들과 돼지새끼를 나란히 놓고서 '생명의 가치'를 떠올린다. ⓒ 시네마달

소비가 되든 , 소비를 하든 서로 연결돼 있다. 서로 고통을 느끼는 존재임을 인정할 때 지금과 같은 자본을 위한 폭력적 사육 환경은 감소할 것이다. 질병의 발생 상황이나 방역 방식, 나아가 우리의 삶의 방식도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

생산자는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에 소비자 차원에서 건강하고 생태적인 식품에 대한 인식 전환과 생태적 사육환경에 대한 요구를 한다면 공장식 축산과 같은 기업 논리에 의한 동물 학대는 개선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소비자가 과도한 육식문화와 생산성 위주의 무분별한 생명 학대 개선을 요구하는 문화를 만들고, 대규모 생산이 어려운 유기순환축산에 의한 생산 단가의 상승 부분을 유럽과 같이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불편한 진실을 접하면서 진실을 불편해할 것이 아니라, 진실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불편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생산자의 문제는 소비자 요구에 의한 것이다. 또한 우리 모두는 국가에 건강한 먹거리 확보를 요구할 수 있다. 육식 가족의 딜레마는 우리의 선택으로 극복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우희종 기자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입니다.



#잡식가족의 딜레마#공장식 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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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동물권, 복잡계 과학 및 포스트휴먼에 관심.남북 평화와 미래세대를 위한 바람직한 사회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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