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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지금 상자 하나가 내 앞에 놓여 있다. 상자 안에는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다. 상자의 뚜껑을 닫는다. 이제 상자 속엔 캄캄한 어둠뿐이다. 송곳으로 상자의 옆구리를 뚫는다. 구멍이 생겼다. 이제 그 구멍을 통해 상자 안과 상자 밖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존글쓰기를 하는데 우리가 만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두 가지다. 두려움과 자기검열. 글쓰기의 초심자가 주로 겪는 것이 두려움이라면, 어느 정도 글쓰기 이력이 붙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자기검열이다. 글을 쓰려는 우리의 뒷덜미를 강력하게 잡아당긴다는 점에선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둘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두려움과 자기검열, 글쓰기를 막는 장애물

 글 쓰는 것은 두렵다. 장애물 때문에 쉬이 쓰기 어렵다.
글 쓰는 것은 두렵다. 장애물 때문에 쉬이 쓰기 어렵다. ⓒ 픽사베이

먼저 두려움부터 살펴보자. 두려움은 늘 '엄습'해온다. 상사로부터 문서를 작성하라고 지시를 받는 순간, 글을 써야지 마음먹는 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이렇게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얼음땡'에 걸린다. 글을 쓰기 전엔 폭죽처럼 솟아오르던 아이디어와 영감이 동결건조라도 된 것처럼 옴짝달싹 하지 못한다.

이러면 한 단어, 한 문장을 나아가는 것도 어렵다. 말뚝에 매인 소가 말뚝 주위를 빙빙 돌듯 공연히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만 허비한다. 마감에 임박해서야 개발새발 글을 써 투척한다. 싱싱했던 아이디어는 자취 없이 사라지고, 스스로 봐도 무슨 얘긴지 헷갈린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투척했던 글은 어김없이 폭탄이 돼 돌아온다. 왕창 깨진다. 이런 기억은 다음 글을 쓸 때 더 큰 두려움의 밑천이 된다.

다음은 자기검열이다. 얼마쯤 글을 쓰거나 얼추 다 썼을 때 찾아온다. 쓰는 건 그런대로 됐는데 누구한테 보인다 생각하니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자기검열은 실제로 있지도 않은 어떤 가상의 시선이나 예상평가를 전제하며 시작된다. 거기에 맞춰 물품 전수조사를 하듯 자신이 쓴 한 단어, 한 문장 씩 들춰본다. 들춰보면 들춰볼수록 온전히 건질 문장이 없다. 누구 앞에 보일 글이 절대 못 된다. '다 갈아엎고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건 퇴고와는 다른 차원이다. 퇴고가 글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선순환이라면 자기검열은 그나마 이룬 글의 성취도 무화시키는 악순환이다. 자기검열은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야유와 조롱은 받지 않을까 너무 앞질러 헤아리다보니 자기혐오에 이르고 마는 늪이다.

실제로 글을 쓰는 데 또 다른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시간이다. 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두려움과 자기검열이 머릿속에 둥지를 트는 데엔 너무 많은 시간 탓도 크다. 한마디로 시간이 많다보니 자꾸 딴짓을 하는 것이다.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키워드 매트릭스(81칸의 정방형 격자 안에 연관 키워드를 적어나가는 브레인스토밍 방법)나 대화글쓰기(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하고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글감을 발견하고 정리하는 방법) 같은 생각도구를 활용해 마구쓰기를 진행해본다. 아주 야박하게 시간을 주고 일정 분량의 글을 완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 참가자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무아지경에 가까운 몰입의 상태 속에서 글을 써나간다. 참가자의 80% 이상이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참가자들은 짧은 시간 안에 한 편의 글을 써냈다는 사실에 대해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런 생각도구와 마구쓰기를 활용하면 두려움과 자기검열의 덫에 걸리지 않고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생각의 전환, 두려움을 극복하는 '빛'

 두려움과 자기검열은 관념의 조작일 뿐이다.
두려움과 자기검열은 관념의 조작일 뿐이다. ⓒ 픽사베이

이런 생각도구를 활용해 글쓰기에 용이한 상황을 만드는 것도 긴요하다.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생각의 전환이다. 두려움과 자기검열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꿨으면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두려움과 자기검열은 관념의 조작일 뿐이다. 이것은 실체나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에 반드시 뒤따라오는 상수가 아니란 말이다. 다만 글쓰기의 원리와 방법에 대해 잘 모르거나 오해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일 뿐이다.

불교 경전의 뱀과 새끼줄 비유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어둔 밤길을 가다 뱀을 보고 깜짝 놀란다. 밤새 떼 뱀이 출몰하는 악몽에 시달리며 두려움에 떤다. 이튿날 아침 어젯밤의 그 길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나간다. 아뿔싸. 내가 본 것은 뱀이 아니라 새끼줄이었다. 두려움은 금세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사실을 알고 오해가 풀리면 두려움과 자기검열도 함께 사라진다.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글쓰기의 원리와 방법을 알고 익힌다면 두려움과 자기검열의 덫에 허우적거릴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이 글 앞부분 상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상자에 구멍을 뚫었다. 그 구멍으로 어둠이 스르르 빠져나온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고개를 끄덕거렸다면 물리학은 다시 쓰여야 한다.) 그 구멍으로 어둠은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반대로 빛이 그 구멍을 통해 들어갈 뿐이다. 빛은 실체가 있고 어둠은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어둠은 단지 빛이 없는 상태일 뿐이다. 빛이 비추면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두려움과 자기 검열도 마찬가지다. 글쓰기의 원리와 방법이라는 빛이 아직 비치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 글쓰기의 원리와 방법이라는 빛이 비추면 두려움과 자기 검열은 사라진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백승권 기자는 백승권의 실용글쓰기연구소(바로가기 클릭) 대표이자 동양미래대학 글쓰기 겸임교수입니다. 쓴 책으로는 <글쓰기가 처음입니다>(메디치)가 있습니다.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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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보고서 보도자료 작성 교육, 일반인을 위한 자기소개서와 자전에세이 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는 실용글쓰기 전문강사입니다. 동양미래대 겸임교수,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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