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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푸름이도 사진을 쉽게 배워서 즐겁게 찍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마음으로 '사진 찍는 눈빛'이라는 글을 씁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사진이요,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라는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이 글을 씁니다. - 기자말

봄을 부르는 빛

'봄을 부르는 빛'이란 무엇일까요. 봄빛은 어디에 어떻게 묻어날까요. 봄비를 바라보면서 봄내음을 맡고, 봄내음을 맡으면서 봄기운을 느끼며, 봄기운을 느끼면서 봄빛을 바라봅니다. 이 땅을 따스하게 덮는 빗방울은 추위를 잠재웁니다. 이 땅을 포근하게 어루만지는 빗물은 새싹을 북돋웁니다.

새봄에 새롭게 깨어나는 풀잎과 나뭇잎처럼 내 마음에 푸른 이야기를 심을 수 있으면, 내가 바라보는 모든 곳에 봄빛이 번집니다. 새봄이어도 봄내음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면, 삼월이건 사월이건 오월이건 봄빛을 흩뿌리는 이야기를 느낄 수 없습니다.

봄철에 찍기에 봄빛이 드러나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가을에 찍으니 봄빛을 찾아볼 수 없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바로 이곳'에 '오늘' '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 오늘 내가 있어도 '왜 무엇을 하러' 바로 이곳에 오늘 내가 있는가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못 찍습니다.

'왜?' 하고 묻습니다. '무엇을?' 하고 묻습니다. 스스로 수수께끼를 내고, 스스로 실마리를 풉니다. 봄이니까 봄을 찍으려 한다는 수수께끼와 실마리를 스스로 얽다가 맺습니다. 봄이기에 봄을 노래하면서 이 기쁨을 사진으로 드러내려 한다는 웃음과 꿈을 차근차근 엮습니다.

봄을 부르는 빛은 내 가슴에서 싹틉니다. 봄은 늘 내 가슴에 있습니다.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모든 빛은 언제나 내 가슴에서 내가 부르기를 기다립니다.

빗소리와 빗내음을 사진으로
 빗소리와 빗내음을 사진으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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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빛깔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이야기하면서 나타내지 못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모든 이야기를 나타낼 수 있고, 미국사람은 미국말(영어)로 모든 이야기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저마다 제 말로 모든 이야기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빛'과 '빛깔'을 생각합니다. 두 낱말은 한 끝이 다르지만, 사뭇 다른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둘을 제대로 가를 줄 아는 사람이 드물기도 합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이지만, 막상 학교에서 이 두 낱말을 슬기롭게 갈라서 가르치지는 못하기 때문이요,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어버이가 이 두 낱말을 알맞게 나누어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빛'은 해가 뜨면서 생깁니다. '빛깔'도 해가 뜨면서 생긴다고 할 만합니다. 다만, '빛'은 햇빛이 있고, 전깃불로 밝히는 불빛이 있습니다. '빛깔'은 빛이 드리우면서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빛이 드리울 적에 지구별에 있는 모든 것은 저마다 다른 결을 드러내지요. 다시 말해서, 빛이 있기에 빛깔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빛깔만 있고서는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습니다.

'빛'이 곧게 퍼지면 '빛살'입니다. 빛살은 '빛줄기'라고도 합니다. 이를 한자말에서는 '광선'이라 하는데, '빛깔'을 한자말로 '색채'라고도 하고, '색깔'처럼 쓰기도 합니다. 영어에서 'light'가 '빛·빛살'이 될 테고, 'color'가 '빛깔'이 되겠지요.

이를 올바로 헤아리면서 바라본다면, 사진을 어떤 빛과 빛깔로 갈무리해서 우리 이야기를 담아서 함께 나누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느끼면서 알 수 있습니다.

밥상에 올라오는 빛깔
 밥상에 올라오는 빛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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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사진을 찍을 적에는 흔한 모습을 담으면 됩니다. 적잖은 분들은 사진을 찍을 적에 '흔하지 않은 모습'을 찍으려고 애쓰는데, 막상 '흔하지 않은 모습'을 찍어 본들, 이러한 사진은 '흔하지 않은 모습'이 아니라 '흔한 모습'이 되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흔하지 않다고 여기는 모습'만 사진으로 찍으려고 하다 보니까, 한국에서 나오는 수많은 사진은 '흔한 모습'이 됩니다.

그러니까, 굳이 '흔하지 않다고 여기는 모습'을 찾아서 사진을 찍으면 언제나 '흔한 모습'만 찍는 셈이요, 여기저기에 흔히 떠도는 모습만 자꾸 사진으로 찍어서 '내 마음을 담은 이야기'는 사진에 안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사진으로 찍을 모습은 언제나 '흔한 모습'입니다. 늘 보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노릇입니다. 늘 마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일이요, 남이 아닌 내가 늘 보고 마주하면서 겪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 됩니다.

나한테 흔한 삶이라고 해서 남한테도 흔하지 않습니다. 나한테 흔하고 익숙한 모습은 오로지 나한테만 흔하고 익숙한 모습입니다. 이리하여, 내 삶에서 나한테 '흔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 이 '흔한 모습'은 언제나 '흔하지 않은 모습'을 들려주는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내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흔한 모습'에 얹은 사진은, 언제 어디에서나 '흔하지 않은 모습'일 뿐 아니라, 남들한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하나 있는 즐겁거나 기쁜 삶노래가 됩니다.

이제 흔하지 않은 흰민들레이지만, 우리 집 마당과 뒤꼍에는 흔한 흰민들레를 사진 한 장으로.
 이제 흔하지 않은 흰민들레이지만, 우리 집 마당과 뒤꼍에는 흔한 흰민들레를 사진 한 장으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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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는 자리

꽃은 늘 우리 둘레에 있습니다. 꽃이 없다면 이 지구별에 아무런 삶이 없습니다. 꽃이 없다면 풀과 나무도 스스로 살지 못하지만, 사람도 풀벌레도 새도 들짐승도 모두 살 수 없습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열매와 씨앗을 맺지 못합니다. 꽃이 피고 나서 천천히 시들어야 비로소 열매와 씨앗을 맺습니다. 사람이 먹는 모든 밥은 씨앗이요, 열매인데, 꽃이 져서 이루는 숨결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꽃을 먹는 셈입니다. 열매나 씨앗으로 모습을 바꾼 숨결을 몸으로 받아들여서 새로운 삶을 짓는다고 할 만합니다.

언제나 꽃을 몸으로 받아들여서 목숨을 건사하니까, 우리 몸은 모두 꽃으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너도 꽃이요, 나도 꽃입니다. 다 함께 꽃입니다. 이리하여, 언제 어디에서나 꽃을 바라보고, 꽃을 느끼며, 꽃을 생각합니다. 꽃내음을 맡으면서 빙그레 웃고, 꽃빛을 마주하면서 싱그러이 노래하며, 꽃숨을 쉬면서 사랑을 새롭게 일굽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어 이웃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담을 적에, 우리는 으레 웃음꽃이나 눈물꽃을 엮습니다. 웃는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고, 우는 얼굴에는 눈물꽃이 자랍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나 발자취를 사진으로 담을 적에, 우리는 으레 삶꽃을 엮습니다. 삶으로 이루는 꽃을 사진으로 담는 셈인데, 삶꽃을 찍는 사진이니 '사진꽃'이기도 합니다.

꽃을 피우는 자리는 바로 여기입니다. 내가 선 이곳에서 꽃이 핍니다. 내 마음에서 꽃이 피고, 내 말 한 마디가 모두 꽃으로 거듭나며, 내 눈길에 따라 한결 함초롬하게 꽃빛이 흐드러집니다. 마음을 기울여 사랑으로 찍는 사진은 언제나 꽃답습니다.

우리는 모두 꽃이라는 마음을 사진으로
 우리는 모두 꽃이라는 마음을 사진으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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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 읽기

마음을 담아서 그림을 그립니다. 온 하루를 즐겁게 누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그림을 그립니다. 연필이나 붓을 들어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앞서, 내 마음에 먼저 '즐겁게 누리고 싶은 온 하루' 이야기가 흐를 때에, 이 '마음속 그림'을 바탕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립니다.

마음을 담아서 사진을 찍습니다. 온 하루를 기쁘게 누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사진을 찍습니다. 내 마음에 먼저 '즐겁게 누리고 싶은 온 하루' 이야기가 흐르도록 하면서, 이 '마음속 그림'을 하나씩 펼쳐서 사진을 찍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생각하고 살피고 헤아리고 돌아보면서 비로소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생각하지 않거나 살피지 않거나 헤아리지 않거나 돌아보지 않으면, 눈앞에 온갖 모습이 펼쳐진다고 하더라도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을 읽으면서 내 사진을 찍습니다. 네 마음을 읽으면서 너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내 마음을 읽기에 내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네 마음을 읽으니 네 삶을 사진으로 가만히 찍습니다.

그림을 즐기는 마음을 사진으로
 그림을 즐기는 마음을 사진으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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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사진 찍는 눈빛'이라는 글은 글쓴이가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면서 사진이웃하고 나누고 싶은 '사진노래'로 씁니다.



태그:#사진비평, #사진읽기, #사진찍기, #사진이야기, #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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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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