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불구속 기소 방침을 정한 뒤 조용하게 움직이던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이 다시 분주해졌다.
29일 수사팀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관계자 김아무개씨의 자택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한편 리스트에 등장하는 김기춘·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이병기 현 비서실장, 홍문종 의원과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에게 서면질의서 등을 발송했다. 이날 오후 기자들을 만난 수사팀 관계자는 자신들의 행보를 두고 "나름대로 일정과 계획을 갖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사팀 출범 48일째에야 불법 대선자금의혹 관련 수사가 들어간 상황을 두고 검찰이 출구전략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서면조사 대상자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던 전례에 비춰 봐도, 검찰이 리스트 속 6명에게 소환을 통보하는 대신 서면질의서와 자료제출요청서를 보낸 일은 이례적이다.
친박 6인방, 이례적인 서면조사... 봐주기 수순?그동안 검찰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4월 9일 사망 전 남긴 '허태열 7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김기춘 10만 달러 2006년 9월 26일 독일 이병기 이완구'라는 쪽지와 <경향신문>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그가 리스트 등장인물들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했을 가능성을 추적해왔다. 이 가운데 관련자 진술 등이 나온 홍준표 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는 검찰 조사를 받았고 지난 20일 불구속 방침이 정해지면서 사실상 수사가 마무리됐다.
문제는 나머지 6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친박계로, 정권 창출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들이다. 따라서 성 전 회장이 정말 6명에게 돈을 건넸다면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한 정치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이 '김기춘 10만 달러'는 2006년 9월, '허태열 7억'은 2007년이라고 직접 밝힌 것말고는 돈 전달 시기와 장소를 가늠할 단서가 없어 수사팀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수사팀이 29일 6명에게 서면질의서 등을 보낸 것은 검찰이 추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증거 확보 후 소환조사로 넘어가던 검찰의 기존 방식에도 맞지 않는 데다 결국 '덮어주기'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매입 의혹 때도 아들 시형씨를, 2007년 남북정상회담회의록 수사 당시에는 김무성 당 대표 등을 서면조사해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이날 2012년 새누리당 대선 캠프 관계자 김아무개씨의 자택 압수수색이 이뤄진 점 역시 수사의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김씨는 성 전 회장이 건넨 2억 원을 받아 홍문종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인물이다. 검찰은 관련 진술을 사건 초기 확보했지만 한참 뒤인 29일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씨가 증거를 숨기거나 없앴을 수 있는데도 늑장대응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불거진 이유다.
검찰 "수사 기법일 뿐... 일정대로 가고 있다"물론 검찰은 "일정대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수사팀 관계자는 "많은 분들이 수사를 우려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수사팀은 현 시점에서 보다 가치 있는 증거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또 "서면조사 등도 (수사의) 단계를 판단하는 징표가 아닌 (수사)기법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수사팀은 가능한 모든 장소를 확인해 봤지만 성 전 회장의 비밀장부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경남기업 관계자들 조사 결과 새로운 자금 흐름을 파악했다며 관련 장소를 압수수색 중이라고 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의혹 관련) 시기와 동선에 일치하는 자금을 찾기 위한 수사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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