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다. 1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병역거부'는 수감생활 시작 당시의 이유일 뿐, 수감생활 내내 계속된 '최저임금 1만 원 운동' 관련 사건들(모두 2013년 최저임금 투쟁을 하면서 일어난 일로, 경총 점거, 최저임금위원회 앞 농성 등)로 인해 구치소에서는 나를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사범'으로 분류하고 있다.
덕분에 동료 재소자들과 병역거부보다는 '최저임금'이나 '알바노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하게 나누게 되었다. 독방생활을 하고 있어 주로 운동시간을 이용해 이야기를 나눈다.
감옥에서 만난 생계형 범죄자들
감옥에서 가장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분들은 생계형 범죄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보이스피싱 '인출 책임자'로 들어오는 사람이 꽤나 많다.
보이스피싱 총책임자는 보통 중국에 있다. 인출 책임자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꺼내는 일만 하는데,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 잡혀 들어온다. 올 4월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생활고 때문에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하다 걸렸다는 기사를 봤다.
교회로부터 받는 180만 원의 월급으로 생활하기에 아이들의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고,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내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던 것이 그가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하게 된 계기라고 했다.
보이스피싱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월 200~300만 원 정도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내와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이 일을 했다고 한다(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아픔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 자리를 빌려 수감자들이 꽤나 미안해한다는 것을 대신 전하고 싶다).
악명이 높은 노조 파괴 용역회사인 '컨텍터스'로부터 3차 하청 용역 일을 하던 30대 청년과도 만난 적이 있다. 2011년 한진중공업 1차 희망버스에서 용역으로 뛰었다는데 나 역시 그 때 현장에 있었으니 틀림없이 구면이겠다. 기막힌 인연에 반가워하며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에게 왜 용역일을 했냐 물으니 이렇게 답한다.
"용역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할 게 없어. 그분들(노동자)도 불쌍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먹고 살려면 할 수 없지."전신에 문신을 해서 첫 인상이 몹시 사나웠던 동갑내기 친구(선입견과 달리 조직폭력배는 아니었다)도 가족을 먹여 살리다가 들어왔다고 했다. 청춘을 다 받쳐서 집 한 채 사고 나면 할아버지가 되는 현실, 집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20~30년 가족을 내팽개치고 일만 해야 하는 현실이 싫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처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고 했다. 자신의 친구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라고 했다.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이 친구의 소박한 꿈이다.
매우 조심스럽지만, 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황당하게 들릴지 모를 이야기겠지만, 우리 사회가 최소한 월 200~300만 원의 소득을 보장하는 사회였다면 상당수의 범죄는 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그런 세상이 온다면 다시는 범죄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팍팍한 현실, 엉뚱한 대책한국사회의 경제가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에 들어서고,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이 '청년실업이 문제'라고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책은 너무나 엉뚱하다. 물론 국가가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4대강 같은 황당한 사업은 벌이지 않고 있지만 청년들에게 실업률이 어마어마해 문제이니 중동으로 가라고 이야기하는 대통령도 엉뚱하기는 마찬가지다(여기서는 범죄를 저지르려면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나라를 가지고 사기를 쳐야 안 들어온다는 말이 횡횡한다).
월세 50만 원이 부담스러워 어떻게든 전세를 살려는 서민들을 위해 짓는 민간 공공주택의 월세가 50만 원이 넘는 세상이다. OECD 국가 중 최저의 법인세와 최고소득구간이 10억에 불과한 소득세는 놓아두고 공무원연금을 쥐고 흔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경기 부양책으로 부동산 사격은 상승 중인데, 집값이 오르면 돈없는 서민은 결혼을 포기한다.
그나마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을 올리자고 주장한 것은 다행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에서 취약한 부분이 낮은 소득에 있다는 것을 정부도 인정한 것이다. 소득이 낮으면 소비가 줄고, 결국에는 기업도 이윤에서 타격을 입을 뿐만 아니라 세수도 줄어드니 악순환이다. 그러면 정부는 사회복지가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형성된 취약한 사회안전망은 정규직 경쟁에서 떨어진 이들을 안전하게 받쳐줄 수 없다. 이러한 구조가 전환되지 않는다면, '열심히 정직하게만 살면 된다'는 이야기를 감히 내뱉을 수 없는 세상이 된다.
정의롭고 민주적인 경제 질서의 전환을 위한 지렛대가 최저임금 1만 원일 수 있다. 이 지렛대를 처음 들고 세상에 나온 이가 바로 알바연대 전 대변인 권문석이다. 2013년 6월 2일 새벽, 권문석 대변인이 떠난 지 2년, 감옥에서 그가 표지 사진으로 나온 잡지 <한겨레21>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는지 모른다. 아무도 그와 함께 올라타지 않았던 지렛대 위에 조금씩 사람들이 함께 하기 시작했다.
비록 갇혀 있는 몸이라 조금도 힘을 보탤 수 없지만, 한 사람 한 사람 함께 올라서면 내 감방 동료의 말대로 이상한 세상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한 달 120만 원? 그걸로 어떻게 살아요. 한 달 뼈 빠지게 일하고, 노예네, 노예."우리가 사는 세상이 노예제보다는 괜찮은 사회라고 말할 수 있기를 감옥 안에서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박정훈은 병역거부로 수감 중으로 고 권문석 알바연대 대변인이 기획한 책 <알바들의 유쾌한 반란>(박종철출판사. 2014년)의 저자입니다.
알바노조 http://www.alba.or.kr , 02-3144-0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