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행복한 인문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보다 나은 인간적 사회 공동체를 지향하며, 청소년들이 좀더 쉽고 흥미 있게 인문적 소양을 키우고 인문 정신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 현장 체험적 글입니다. 또한 교사와 학부모들과도 공유하여 청소년 인문학과 인성 지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적용의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 기자말
사람은 자본이나 기계가 아니다인문적 사유는 독서를 포함해 우리 삶 속에 함께 하고 있는 여러 인문적 대상을 접하며 일어나는 교감이나 생각들을 통해 그 힘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문 정신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옵니다. 이러한 사유의 과정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높이는 숭고한 일입니다.
'학을 떼고 나선' 인문적 사유는 인문학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과 달리 그 영향이 결코 사람의 정서와 정신적 영역에 한정되지 않음을 알게 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인문적 사유는 우리들의 현실적 삶, 그리고 그 삶의 터전인 사회 공동체의 성격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작가 공지영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참석했던 평택역 앞의 거리 미사……신부님이 말씀하셨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사람은 자본이나 기계, 원료 같은 경영의 한 요소가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공지영, <의자놀이>(Humanist, 2012) 중에서우리는 여기서 신부님의 '말씀'에 주목해 보도록 합시다.
"사람은 자본이나 기계, 원료 같은 경영의 한 요소가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짧은 두 문장은 거센 바람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귀한 불씨처럼, 우리 삶의 현실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인문 정신이 아직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버텨 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영의 한 요소' 로 인식하고 대하는 사고(물론 겉으로 그렇다고 드러내지는 않습니다)와 경영도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일이므로 '사람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사고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요?
근본적 사유의 바탕이 다르므로 현실적 상황의 전개 양상이나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인문 정신이 깃든 인문적 사유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위 인용 내용의 배경에는 지난 2009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고통과 절망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만 우리 시대의 큰 비극적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런 중대한 일들은 인문 정신과 인문적 사유가 개인의 정서와 내면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적 삶과 사회 공동체의 성격을 얼마나 크게 좌우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하여사람에 대한 사랑이 그 뿌리인 인문적 사유 안에는 우리 몸 안의 혈액이나 심장처럼 매우 중요하게 작동하는 몇 가지 사고의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훼손되지 않은 인간 본래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는 '성찰(省察)'과 '비판(批判)', 그리고 '보다 나은 인간적 삶에 대한 지향(志向)', 바로 이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역사를 인문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역사의식'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1차적 의미의 역사는 지나간 사실에 대한 기록이고 이해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역사의식은 역사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통해 보다 나은 인간 역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인문 정신인 것입니다.
'영혼'의 탁월함과 그것을 획득하고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BC469∼BC399)는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고, 또 "인생은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결코 '그냥' 살아서는 안 되고, 늘 자신의 삶과 세계를 돌아보고 그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잘못된 것은 바르게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람 사는 일의 기본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진정정이 사라져 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기와 부패, 거짓과 기만이 인간다움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진지한 '성찰'을 통해 인간다움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정치인들은 매사에 나라와 국민을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과 가문의 이기적 출세와 영화를 위해 권력을 앞세우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재벌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나라의 경제를 말하면서, 사실은 자기 일가의 경제를 더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또 학교와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말하면서, 사실은 우리 아이들을 지금 어디로 내몰고 있는 건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어른들에게서, 그리고 정작 깊은 성찰의 모습을 보여야 할 당사자들에게서 진정한 성찰을 기대하기는 무척 어려워 보입니다. 이미 그럴 수 있는 기능이 많이 망가져버린 듯합니다. 그래서 더욱 사람의 가치가 존중되는 좋은 사회, 사람 사는 사회를 지향하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현재의 희망이고 미래의 주역인 우리 청소년들에게 인문적 사유의 힘과 인문 정신이 필요한 절박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