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청소년 특별면 <너, 아니?>에 실렸습니다. <너, 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
여기는 인천공항, 저는 지금(지난 1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루프트한자 항공편, A380을 타고 이륙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공항에 도착하면서 최대치에 다다른 긴장감이 많이 가시고 마음이 조금은 편해집니다.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리 실감이 나진 않았는데, 제가 유럽에 가긴 가는 모양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옆에 어떤 아저씨가 엉덩이를 바싹 들이밀어서 조금은 당황스럽군요.
초등학생 때 가고 싶었던 유럽여행, 돈을 모으기 시작하다생각해보면, 제가 유럽여행을 처음 떠나고 싶었던 건 아마 초등학생 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렸을 때 읽은 한비야 아줌마의 책을 시작으로 각종 여행기를 섭렵했던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정말 여행에 대한 열정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죠. 글쓰기 공모전에 작품을 공모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행경비를 조금씩 모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았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가 가게 된 곳은 유럽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미국이었습니다. 지난 2014년 봄, 3개월 동안 텍사스 주 휴스턴이라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갈고닦았던 영어실력이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과 다른 세계를 조금이나마 맛보며 갖게 된 것은 색다른 가치관, 새로운 사고와 경험, 그리고 조금의 혼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미국체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이제 당장 무엇을 할지, 또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군요. 처음에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공부를 이어가려고 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남게 된 저는 고졸검정고시를 마치고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죠.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거든요.
프랑스어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 일정이 늦게 끝나 그에 맞춰 집에 같이 들어가야 되는 일이 생겼어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조금 전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프랑스어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것인 줄 알았는데 그 프랑스어 특유의 그런 느끼한 발음이 계속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인지라 1시간 정도 망설이기를 반복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람이 누군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카페에 외국인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프랑스인처럼 생긴 사람을 골라 말을 걸었죠. 멋지게 다가가서 "Bonsoir"하고 말을 건네려고 하였으나 그러지는 못했고, 그냥 수줍게 "Hello"라고 말이에요.
그리고나서 바로 물어본 것이 "Where are you from?"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프랑스"라고 답하더라고요. 그 친구 이름은 나탈리였는데 파리의 ESSEC이라는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부하다 고려대학교에 잠깐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몇 마디 주고받다 그 친구가 시험공부를 하느라 바빠서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메일 주소를 받았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제가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와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주로 정치나 경제, 교육 이런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홍대의 어떤 카페에서 한 번 더 만났습니다. 그때 정말로 놀랐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진짜 말을 잘하더라고요. 나탈리네 친구 하나도 프랑스에서 와서 같이 만났는데 진짜 제가 그 둘을 상대하느라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서너 시간씩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래서 프랑스가 프랑스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아마 그때, '나는 프랑스로 공부하러 가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이후로 프랑스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중에 대학생 나이가 되면 유학을 가려는 생각만 있었지, 프랑스로 여행을 가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어요.
프랑스 친구와의 우연한 만남, 유럽여행의 시작그런데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 계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가 아마 2014년 크리스마스일 거예요. 나탈리가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에 불어로 된 <먼 나라 이웃나라> 한국편을 선물로 주려고 만났는데, 마침 그때 나탈리네 부모님도 한국으로 여행을 오셨어요. 얼떨결에 뵙게 되었는데, 나탈리가 지나가는 말로 '혹시 파리에 오게 되면 연락해라, 아마 부모님 집에서 잘 수 있을 거야'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는 그냥 인사쯤으로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만약에 파리에 갈 수 있으면 참 좋겠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유럽여행을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물론 아직 17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잘만하면 충분히 유럽도 혼자 돌아볼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파리에 나탈리네 가족도 있잖아요.
쭉 그런 생각을 해보다가 몇 달 지난 2015년 봄, 나탈리한테 메일을 보냈습니다. '네가 말한 대로 혹시 네 부모님 집에 내가 가있어도 되겠냐'고 말이에요. 그리고 며칠 후, 자기가 부모님께 한 번 물어보겠다고 답장이 왔어요. 그렇게 몇 번 메일을 주고받은 후에 제가 6월 1일부터 12일까지 나탈리네 집에 머무르는 것으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파리 일정을 정하고 나서 유럽을 3개월 동안 둘러볼 다른 계획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나탈리한테 메시지를 보냈는데 글쎄, 자기는 5월 초에 콩고로 떠난다는 거예요. 그 아프리카 중남부에 잇는 콩고. 얼마동안 가냐고 하니 1년 반이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아니 네가 그렇게 나를 버리고 콩고로 가버리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그런데 또 가만히 보니, 그렇게 걱정할 것은 없는 듯 했어요. 나탈리는 동생이 6명이나 있었거든요. 그리고 셋째 동생이 남자인데, 저랑 같은 나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뭐 잘 됐네' 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6월 1일이 되었고, 저는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습니다. 아 지금 기장이 독일어로 뭐라 말을 하고 있군요.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인천 앞바다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군요. 한국의 모습도 이제 앞으로 3개월간은 볼 수 없겠죠.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