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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입양의 날'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바로 5월 11일이 '입양의 날'이랍니다. 저도 이런 날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건전한 입양문화의 정착과 국내 입양의 활성화를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2014년 5월 11일 제9회 입양의 날에는 지자체 등 추천기관을 통해 25명에게 훈포상을 수여하였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앞으로도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해 현재 만14세 미만까지 지급되는 입양아동 양육수당의 대상을 2016년도까지 만16세 미만까지 확대하는 등 입양아동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배포한 국내외 입양현황
▲ 국내외 입양현황 보건복지부에서 배포한 국내외 입양현황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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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위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아직 혈연을 중시하는 문화 탓에 국내 입양 비율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입양이 시작된 1950년대 이후 2014년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16만 명이 넘습니다. 입양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지금도 전체 입양아의 45.6%가 해외로 입양이 되고 있는 것을 볼 때 대한민국은 '아동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기에 아직은 이른 것 같습니다. 

입양,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입양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닙니다. 제 주위에도 입양을 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좋은 모범이 되어 다른 친구도 입양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도 동네에 입양을 했던 가정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1970년대나 1980년대에도 흔치는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입양을 하는 가정들이 있었습니다.

제 장모님 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들 부부는 아이가 없었고 나중에 입양을 했습니다. 부인이 젊어서 죽자, 남편은 홀로 입양했던 여자아이를 돌보고 키워주었습니다. 아이는 나중에 미국 유학까지 가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몇 년 전, 입양했던 외동딸이 결혼할 남자와 함께 인사드리러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딸은 그 자리에서 계속 눈물을 훔쳤다고 합니다.

"아빠! 고마워요. 고아원에 있던 저를 데려다 먹여주시고 키워주시고. 엄마도 안 계신데 이렇게 잘 자라서 결혼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너무나 감사해요."

너무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엄마도 살아계셨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있었을까요?

저의 집안 역시 입양가정입니다. 충남 금산군 산골마을에 살던 우리 가족은 1980년 1월 백 일 밖에 안 된 여동생을 입양했습니다. 아들만 셋이었던 우리 집안에 들어온 막내는 우리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습니다. 이후 자기 자식들은 돌보지 않고 업둥이만 챙긴다는 따가운 눈초리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는 대전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해 초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이어진 아버지의 재혼과 막냇동생의 파양. 그리고 우리 삼형제의 가출... 입양과 재혼으로 이루어진 우리 가족은 그렇게 해체되었습니다. 그런 제게 입양이라는 선택을 한 친구들은 다시금 예전의 혼란스럽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입양, 안에서 보기 그리고 밖에서 보기] 다섯 번째 이야기로 연재를 끝맺으려 합니다. 입양을 결정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입양을 할 때 어느 부분이 힘들었고, 고민은 무엇인지 나누고자 합니다. ​

지난 5월 초, 대전에서 만난 우리는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사람은 우리뿐만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서로서로 너무도 잘 어울려 놀고 있습니다. 가운데 얼굴이 보이는 아이는 우리 첫째아들입니다. 서로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싱글벙글대며 웃고 난리입니다.
▲ 친구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지난 5월 초, 대전에서 만난 우리는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사람은 우리뿐만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서로서로 너무도 잘 어울려 놀고 있습니다. 가운데 얼굴이 보이는 아이는 우리 첫째아들입니다. 서로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싱글벙글대며 웃고 난리입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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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에 이어 둘째도 입양한 A부부

참 행복한 가정입니다. 제 친구(A부부)는 첫째 입양 후 4년 후에 둘째 아들을 입양했습니다. 첫째가 커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 욕심이 생긴 거지요.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은 여느 엄마 아빠와 다름없습니다. 울면 안아주고 분유도 먹이고, 웃으면 아이 얼굴을 보며 함께 웃고.

아이가 자라면서 장난감이 바뀌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자전거 타고 노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빠와 아들입니다. 흐뭇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좋은 엄마와 아빠를 만났으니 마음껏 사랑하고 베풀며 살기를 기원했습니다.

A부부는 둘 다 베푸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위에 사람이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A부부가 입양을 결정했을 때 그리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충분히 고민하고 잘 결정했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집안도 입양 가정이기에 염려되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나중에 소심하게 물어봤습니다.

"여기서 계속 살 거야?"
"아니. 왜?"

"동네 사람들 모두 입양 사실을 알고 있는데 나중에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해서."
"괜찮아. 어차피 공개 입양이니까. 그리고 애가 어느 정도 말뜻을 이해할 나이가 되면 직접 얘기할 거야. 너는 낳아주신 분이 따로 있지만 친부모는 지금 너와 함께 있는 엄마 아빠라고."

저는 놀랐습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자그마한 시골에서 입양가정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전으로 이사를 한 것인데 A부부는 정면 돌파를 하겠답니다.

해외의 경우엔 공개입양이 일반화되어 있는데다 인종이 다른 경우가 많아 부모나 아이 모두 주위의 시선에서 많이 자유롭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혈액형을 따지고 신생아 입양을 많이 하는 것처럼 입양이란 사실을 아이에게도 주위에게도 굳이 알리지 않으려고 하는 풍토가 강합니다. 더구나 여자아이에 비해서 남자아이의 입양율이 적은 것은 나중에 부모가 죽었을 때 유산 상속에도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A부부를 향한 제 걱정은 지나친 우려에 불과했습니다. 양쪽 부모님과 일가친척 모두 반대하지 않고 적극 찬성하며 격려해주었습니다. 자식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서인지 A부부는 몇 년 후 또 한 번의 선택을 합니다. 둘째를 입양했습니다. 이번엔 저도 좀 놀랐습니다.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입양을 하다니. 친구이지만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에 따르면, 첫째를 입양한 후 둘째, 셋째를 입양하는 경우가 매년 10%~20%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답니다. 이는 첫 입양할 때 가졌던 두려움이 양육하면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설에서 자랄 아이가 우리 집에서 안정적으로 자라는 것을 보며 심정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올해 봄, 저는 A부부의 둘째 아이 돌잔치에 다녀왔습니다. 첫째 아이가 다섯 살에 둘째 아이가 이제 갓 돌을 지났습니다. 전 두 아이를 보며 참으로 '훌륭한 부모를 만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부디 엄마, 아빠를 닮아서 애정을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커가길 기도했습니다.

둘째는 등본에 '전입'으로 표기

"입양특례법 때문에 친모가 출생신고를 해서 우리 둘째는 등본에 '전입'으로 표기가 돼. 등본은 나중에 초등학교 입학서류나 금융기관 같은 데 많이 제출하는 건데 어떻게 해. 우리 아들인데……. 서류만 보면 어디서 이사 온 동거인으로 볼 거 아냐."

바뀐 입양특례법으로 이러한 현상이 생긴 겁니다. 친모가 출생신고를 하게 되어 있으니 입양이 되었어도 서류상에 '전입'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닙니다. 또 고민이 있답니다.

"어차피 공개 입양한 거라 언젠가는 아이에게 사실을 말해줘야 하는데 언제쯤, 뭐라고 얘기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아이에게 입양이란 이야기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꺼낼 건지 고민입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가 충격을 덜 받을 수 있을까 말입니다.

우리 막내 여동생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삼촌이 방 안에서 나누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기가 입양아란 것을 알게 되었죠. 그 순간 우리 막내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A부부도 아이가 받을 상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입양을 결정하면서 당연히 지나야 할 과정이었지만 고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A부부는 정기적으로 입양아 부모들 모임에 나갑니다. 입양 부모들만이 느끼는 고민과 육아 방법이 있으니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하지만 막상 공개입양이 된 상황에서, 나중에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엔 이 사실을 잘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머리만 복잡해지고 선뜻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답니다. 이 또한 아이가 받을 상처를 최소화하려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까다로운 '입양특례법'의 명암​

또 다른 친구인 B부부는 A부부의 입양과정을 지켜보고 자신도 입양을 선택한 친구입니다. 첫째 아들은 7살이고 올해 3개월 된 아들을 입양했습니다. 우리는 올해 2월에 B부부의 입양 사실을 알았습니다. 설 연휴에 만난 B부부는 둘째 아기를 데려왔습니다. 포동포동한 얼굴에 듬직한 몸매가 아빠와 많이 닮았습니다.

이들 부부는 입양은 하였지만 아직은 위탁​부모입니다. 법적으로 친부모가 아닙니다. 입양특례법은 미혼모라 할지라도 본인이 직접 출생신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입양이 되더라도 친모는 입양기관이나 중앙입양원에 정보공개를 요구할 수 있어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엔 장단점이 존재합니다. 입양이 되었다가 부득이하게 파양되는 경우, 혹은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 부모가 되어 아이의 인권을 침해할 경우가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아이를 키울 여력이 되지 않더라도 가능한 친모의 그늘 아래 살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허나 문제점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어렵게 입양을 결정한 부모들이 법원의 허락이 떨어지기까지 위탁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가도 친모가 아이를 다시 키우겠다 하면 아이를 보내줘야 합니다. 그동안 주었던 정을 억지로 떼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식으로 법원의 입양허가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이를 내줘야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입양부모들에게 일명 '스캔(SCAN)'이라 부르는 법원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여기서 자격미달이 되면 입양을 할 수 없습니다. 입양부모의 인성검사부터 시작해서 빚이 얼마인지 월 급여는 어느 수준인지, 어릴 때 어떤 환경에서 어떤 성향을 지닌 부모 밑에서 자랐는지, 학창시절은 어땠으며 지금 부부관계는 괜찮은지 등등 말입니다.

당연히 입양을 원하는 부모의 자격을 검증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개인사정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불필요하다 생각되는 질문 공세에 불쾌함을 겪은 이들이 많습니다.

"법원에서 입양부모가 되기 위한 절차라며 질문을 하는데 너무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까지 물어봐서 좀 기분은 안 좋더라고. 법원이야 당연히 책임이 있으니까 철저히 검증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너무하다 싶은 것들도 있어. 인터뷰를 비롯한 법원 허가 과정에서 입양을 포기했다는 사람들 말이 조금은 이해되더라고."

지금 B부부는 하루라도 빨리 법원의 허락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집에 데려온 지 5개월이 지났지만 법원에서는 연락이 없습니다. B부부는 현재 임신 중입니다. 뱃속에 또 아이가 생긴 겁니다. 지난 5월에 B부부를 만났을 때 많이 들떠 있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한 살 차이. 두 아이를 키워야 하지만 이들 부부는 하늘의 선물이라며 너무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35년 전 생소했던 '입양'이란 단어가 이들 부부들로 인해 다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남 일 같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훌륭한 부모들이니 만큼 아이들도 건강하게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들처럼 이웃과 소외된 계층들을 배려하며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 바라봅니다.

입양된 후 10년 만에 엄마를 잃고 재혼가정에 적응하지 못해 파양당한 우리 막내 여동생, 현재 결혼하여 임신 6개월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얘기를 나누다보면 아직 출산 전이지만 아기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갓난아이를 데려와 동네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주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인가 봅니다. 자기가 그동안 겪었던 혼란과 상처를 지울 수 없었던 만큼 지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아픔없이 맘껏 사랑을 주고 싶어 합니다. 아픔은 지울 수 없지만 더 기쁜 행복으로 과거를 극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처지가 가장 힘든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입양과 재혼 등으로 탄생된 가족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절절한 사연이 있습니다. 모두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들입니다. 인간은 주변의 인간들과의 관계를 벗어나 살아갈 수 없는 만큼 '관계의 미학'에 대한 심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해와 배려, 관심과 사랑만이 정답입니다.

아이도 훌륭한 부모를 만나 자기 삶을 살기 바랍니다. 입양을 결정한 부모도 입양 과정에서부터 지나친 어려움에 입양을 포기하는 사례가 줄 수 있는 방법도 검토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아이와 부모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실무 차원의 정책적 배려가 시행되기를 기대하며 [입양,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보기] 연재를 마치겠습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입양, #입양특례법, #둘째도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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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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