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只 다만 지(只)는 갑골문에서 보듯 외짝 척(隻)에서 비롯한 글자로, 손(又)으로 새(?) 한 마리를 잡는 형상이다.
다만 지(只)는 갑골문에서 보듯 외짝 척(隻)에서 비롯한 글자로, 손(又)으로 새(?) 한 마리를 잡는 형상이다. ⓒ 漢典

북송 시대, 전등(田登)이라는 태수가 있었다. 이름에 '등(登)'자가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의 모든 사람에게 등(登)과 발음이 같은 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는 사람에겐 '태수 모욕죄'를 적용해 엄벌에 처했다.

그러던 중 정월 대보름이 되어 관아에서는 풍습에 따라 사흘간 전등 행사를 위해 공고문을 써 붙이려는데 '등'자를 쓸 수 없어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등(燈)을 화(火)로 바꿔 "관아에서 관례대로 사흘간 방화(放火)를 한다"고 써붙였다. 공고문을 본 외지인은 성에 정말 불을 지르는 줄 알고 놀라고, 현지 백성들도 뜻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며 태수의 전횡에 분노했다.

이 때 어떤 사람이 "관리는 방화도 할 수 있는데, 백성은 등불조차 켜지 못하게 하느냐!(只許州官放火,不許百姓點燈)" 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이 말은 중국어에서 권력자는 제멋대로 전횡을 일삼으며, 백성들에게는 조금의 자유나 권리도 주지 않는 것을 풍자하는 말로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병역 비리, 탈세,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부동산 투기 등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지르는 위정자들이 국민에겐 정당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게 억압하는 세태가 천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도 적지 않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다만 지(只, zhī, zhǐ)는 갑골문에서 보듯 외짝 척(隻)에서 비롯한 글자로, 손(又)으로 새(隹) 한 마리를 잡는 형상이다.

새 두 마리는 쌍(雙)이 되는데, 한 마리이기 때문에 '오직, 다만' 등의 의미까지도 흡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간체자를 쓰는 중국에서는 더 많은 의미가 부여되어 동물을 세는 단위로, 부사적 의미로도 모두 쓰인다.

<장자>에 한 늙은 목수와 제 환공의 대화에서 "심오한 이치는 오직 스스로 체득하고 느끼는 것이지, 결코 언어로 설명해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只可意會,不可言傳)"는 말이 유래한다. 목수가 수레바퀴를 만들 때 굴대를 많이 깎으면 헐겁고, 덜 깎으면 빡빡해지는데, 그 적당한 굴대를 만드는 법을 아들에게 말로 다 전할 수가 없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직접 수레 바퀴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늙은 목수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아들 또한 오직 스스로 경험을 통한 감으로, 다만 마음으로 그 이치를 터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이란 말이 비추는 불빛은 한정적이고 폭이 좁다. 다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只知其一, 不知其二)든지, 다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見樹木, 不見森林)는 말처럼 말이다. 문명의 진화는 어쩌면 '다만' 몇 사람이 누리던 불빛을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태수의 이름에 '등'이 있다고 '등불'조차 켜지 못하던 시대로부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멀리까지 진화해 왔을까.


#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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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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