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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세상에 대해 맑은 눈으로 마주 서기

인문적 사유의 중요한 힘 중 하나는 '성찰'입니다. 성찰이란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해 맑은 눈으로 마주 서는 일'을 말합니다. 삶의 길을 가다가 한 번씩 멈추어 서서 내가 가고 있는 길을, 그리고 그 길을 품고 있는 세상을 맑은 눈으로 둘러보고 살펴보는 일입니다. 성찰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자각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수업 틈틈이 수업 진도와는 무관한 특별한 활동과 발표를 하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그런 시간에 더욱 열정적이시고 꿋꿋하셨습니다. 그분의 특별한 수업 활동들 중 하나가 '묘비명 쓰기'였지요.

어느 날 선생님은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깨끗한 종이를 한 장씩 꺼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너희는 모두 죽었다. 그리고 너희 무덤 앞에는 묘비가 하나씩 서 있다. 지금부터 자기 무덤 앞에 새겨 넣을 묘비명을 적어봐라."

얼마 살지 않아 아직 살 날이 더 창창하게 남아 있는 청춘들한테 죽음, 무덤이 다 무슨 소린지, 게다가 묘비명을 쓰라니…. 모두들 황당해 했고, 늘 선생님 수업 방식에 불만이 많던 아이들은 또 이상한 걸 시킨다며 노골적으로 씩씩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젊디젊은 나이에 묘비명을 쓰려고 고민을 하다 보니 아, 이건 죽음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삶과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하기에 더욱 중요한 의미가 담긴 삶의 문제임을 한 장의 깨끗한 백지 위에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묘비명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의 나와 솔직하게 마주서야 했고, 또 앞으로의 삶을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30대 후반이셨던 선생님은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어느 날 큰 병으로 홀연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에겐 갑작스러웠지만 선생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병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병중에도 자신의 몸이 허락하는 마지막까지 우리와 무언가를 나누기 위해 아니, 오롯이 주시기 위해 학교엘 나오셨던 것입니다.

여름 방학 중 모둠을 나누어 무언가를 조사하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는 과제를 내 주셨던 선생님은 끝내 그 과제 검사를 하지 못하셨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며칠 후 우리는 그 분의 영정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운구 행렬이 학교 운동장을 지나며 선생님의 영정 속 모습을 마지막으로 뵐 때 아이들은 그냥 펑펑 울었습니다. 평소에 선생님에 대해 무척 불만이 많던 친구들까지 머리를 숙인 채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다 큰 남자 고등학생들이 그렇게 울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날 이후 수업 중 특별한 활동이나 방학 중 별난 과제는 다시 없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성찰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특별히 내게는 진정한 교사상을 일깨워주시고는 아주 먼 곳으로 가셨습니다. 무덤도 없는 그분의 묘비명은 그날 운동장에서 함께 울었던 우리들 가슴에 오롯이 새겨져 언제까지나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삶을 위한 기념비, 묘비명

이제 내가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묘비명을 써 보게 합니다. 먼저 살다 간 이들의 인생이 담겨 있는 묘비명은 사뭇 엄숙하게 삶과 관련한 인문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들이 남긴 유언이나 묘비명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날들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100년 가까운 생을 살며 제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고, 19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묘비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happen)"라는 엉뚱한 글귀를 새겨 넣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귀는 재치 있는 말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그의 말대로 '우물쭈물하다' 생의 소중한 기회나 순간들을 그냥 놓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고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은 성직자이자 사회운동가로,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종파를 떠나 전 국민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과 공동선의 추구를 바탕으로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분의 삶의 자취는 묘비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추기경의 묘비에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라는 사목 표어가 새겨져 있습니다. 사목 표어란 사제가 신도를 지도해 구원의 길로 이끌고자 어떻게 지도하겠다는 큰 방향을 담아 정한 것입니다. 이 사목 표어처럼 그분은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하면서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바른 길을 제시하려 노력했고, 또한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일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부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분은 유품도 소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40년이 훨씬 지난 낡은 사제복과 쓰던 것을 버리지 않고 모아온 안경 5점이 모두였다고 합니다. 선종(천주교에서 '사람이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것'을 뜻하는 말)하시기 전 남기신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은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삶으로 보여주신 추기경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듯 묘비명은 단지 죽음 앞의 기념비가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의 기념비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인간적 삶의 기념비'를 생각하는 일. 이것이 바로 인문적 사유입니다.


#인문적 사유#성찰#아름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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