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인생그는 유복한 집안의 사람이었다. 집안이 망하고 형편이 어려워지자 고등교육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기회를 얻어 대학교육을 받고 은사를 통해 정부기관에 취업까지 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펴는 듯했다.
정보기관에서 국가 주요정보원 노릇을 하면서 집도 사고 집안의 형제들까지 부양할 수 있게 되었다. 바랄것이 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국내정세는 매우 불안하였고 지도자의 눈과 귀를 막는 가신과 그들 세력 때문에 제대로 된 정보가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는 무모한 시도를 하였다. 국내외 정세를 읽고 정리해 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믿을만한 이를 통해 대통령에게 정보전달을 시도했다. 바로 들통이 났고, 국가 반역자로 몰렸다. 그는 지하 감옥에 갇혀 갖은 고초를 당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혐의를 벗어나 풀려났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못할 짓이었다. 정보원으로 복귀해 활동하던 그는 병이 다시 도졌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국내정세를 더는 묵과할 수 없었다.
고발자가 반역자로 또 한번, 바보 같은 짓이었다.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야당에 같은 정보를 복사하여 전달하였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간만 늦추어졌을 뿐 그는 감옥으로 끌려갔고 죽음을 앞두게 되었다. 정보원 친구가 그를 구출해냈다. 감옥에 뇌물을 써서 꺼내고 위조여권과 변장으로 국외도피를 도왔다. 가족들은 인가가 드문 숲속으로 피신시켰다. 같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배회했다. 그리고 마음씨 좋은 동족을 만났다. 말이 통한다는 점만 해도 하늘에 감사한 일이었다. 동족은 그에게 선진국으로 가서 망명신청을 할 것을 추천했다.
먹는 것도 지낼 곳도 돈 벌 곳도 없는 그는 결국 인근의 선진국으로 입국했다. 그곳의 상황도 중국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나라에 대해 아는 것도 하나 없고 망명상태에서 대사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죽음을 자청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겨우 말이 통하는 이를 만나 일자리를 얻었다. 그동안 그 나라의 혹독한 인심만 경험해왔는데 생활현장은 더 했다. 가구 만드는 교외의 공장 등을 전전하면서 그가 얻은 이름은 "이새끼야"였다. 성도 이름도 없었다. 공장안의 대부분은 그를 새끼야라고 불렀다. 월급을 떼이는 것은 예사였다. 불안한 외국인신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장은 그를 실컷 부려먹고 배째라고 했다. 어디에 하소연 할 데도 없었다.
인연을 만났다. 인권단체나 그 비슷한 일을 하는 착한 이들이었다. 잘 곳을 얻었고 '난민신청'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난민을 인정받으면 그는 직업도 얻고 법적인 보호를 받으며 '선진국'인 그 나라에서 살 수 있었다.
'선진국'의 비인권난민신청은 쉽지 않았다. 출입국관리소에서 그의 난민신청 이유를 의심스러워했다. 그가 처음에 자국친구의 신분위협을 고려해 지어낸 이야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안전한 국외로 도피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어설픈 통역도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그렇게 난민신청을 거부당했다.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이의신청해서 재심사를 받고 그래도 거부당하면 행정소송으로 또 한 번 소명의 기회가 있는 것이었다.
제도는 그러했지만 그 나라의 인권수준은 그에 한참 못 미쳤다. 난민신청자가 자신의 상황모두를 입증해야만 난민인정을 받는다는 점이 그러했다. 인증서류를 요구했고 사진이나 녹취파일 등이 없으면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의 경우엔 자국에서 가져온 문서와 보도자료까지 있었든데도 거부당한 상황이었다.
그는 삼세번까지 몰렸다. 그런 경험이 '그 나라'에서 난민신청 중인 이들과 유색인 등의 인권을 보호하는 운동에 앞장섰다.
무려 6년. 그를 돕는 단체가 없었다면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새끼야'로 불리며 기계에 팔이 끼어 다치기도 하고, 월급도 떼이면서도 '운동'을 놓지 않았던 그의 의지도 한몫했다. 그는 난민이 되어 가족과 만났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한 지방대학이 그를 교수로 채용했다.
그의 이름은 욤비 토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난민이다.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콩고민주공화국의 비밀정보요원이었고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인터넷라디오를 통해 조국의 실상을 전 세계에 전파해왔다.
책은 "한국에 거주하는 260명의 난민(2012년 기준), 그리고 수천 명 난민 신청자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 내 이름은 욤비/욤비토나, 박진숙/이후출판사/1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