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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무언가가 있습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가슴 속에 생겨나는 그런 감정을 때로는 우리는 예술로 승화시킵니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숨바꼭질한 사랑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랑이가 엄마품에 안깁니다. 엄마 안에 있던 두개의 심장은 이제 제가 자른 탯줄로 각각 한 개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곁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는 제 머리 속에서 어떤 일이 생겼습니다. DNA 속에 봉인되어 있던 이전에는 알지 못한 것이 해제된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은 무한한 감동과 사랑 그리고 책임과 헌신이었습니다.

아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미소와 존재 그 자체로 보호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합니다. 인류를 보존하는 가장 중요한 매커니즘 중 하나를 배웠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으로 강하게 연결됐음이 느껴졌습니다.

아내는 열 달 동안 온 힘을 다해 뱃속에서 아이를 키웠고, 또 온 힘을 다해 세상에 낳았습니다. 이제 아빠로서의 제 역할이 중요합니다. 아이는 병원의 세심한 돌봄에 의지하고 출산의 과정 동안 산산조각 난 아내의 몸을 추슬러야 합니다. 제가 할 일은 아내의 몸이 출산 이전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가 태어난 뒤 저희 가족들의 신분에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모두 한 세대씩 위로 올라가게 되었지요. 아들인 저는 아빠가 되었고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출산과정간 곁을 지킨 장모님께서 출산의 소식을 나누자 할머니가 된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야야, 재은이 몸 잘 챙겨줘야 된대이. 거 뼈마디하고 지금 다 물러져가 딱딱한 것도 무마 안되고, 옆에서 수발 잘들어라."
"네, 엄마."

뱃속에 아이와 함께 들어있던 아이의 영양주머니 태반과 양수는 이제 더 이상 아내에게 필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이제 잘 빼내야 할 시간입니다. 우선 아이가 나올 때 1차적으로 많은 부분이 나오지만 자궁에 아직 남아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잔여물이 약 4주간에 걸쳐서 조금씩 나오게 되는데 우선 분만 직후의 자궁마사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간호사 선생님은 제게 시범을 보이고 공처럼 만져지는 자궁을 마사지 해주라고 합니다.

손재주라고는 없는 저는 자꾸만 동그랗게 문질러야 하는 자궁을 퍼뜨립니다. 아내 몸이 상할까봐 노심초사하며 손을 벌벌 떨고 있으니 장모님이 한 말씀 하십니다.

"추 서방, 내가 할 테니 나가서 밥 좀 먹고 오게나."

아 맞다. 밥. 12시간을 아내와 함께 사투를 벌였네요. 산후조리의 과정 동안 그리고 아이의 육아의 과정 동안 남편의 건강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육아는 엄마 혼자만의 몫이 아닌 남편과 아내가 함께 하는 일이니까요.

병원 밖으로 나와 잠시 하늘을 봅니다. 분명 들어올 땐 캄캄하고 막막한 세상이었는데, 사랑이의 탄생이 무언가 제 세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지금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가슴 뛰는 이 기분을 놓치고 싶진 않습니다.

아내는 이제 식단을 조절해야 합니다. 식단 조절하는 사람 옆에서 온갖 것을 마음껏 먹는 것처럼 얄미운 게 있을까요. 전 괜스레 오늘이야말로 당분간 먹을 마지막 순대국이겠거니하고 눈 앞에 보이는 순대국밥집으로 향합니다. 

"형님, 축하드립니다."
출판사의 김디자이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