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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마침 오랜만의 휴일이었다. 오래 못 본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나는 들떠 있었던 것 같다. 가족들과 만나, 서울 시내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분위기를 내며 평화롭게 식사를 하던 중 속보가 떴다. 수백 명 승객이 탄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했다. "엄마, 애들 탄 배가 사고 났는데 전원 구조래요." 부모님께 간략히 알리고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설마하니 그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으리라곤 상상 못 했다. 작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의 기억이다.

속보가 나오던 순간부터 죽음을 예견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때 우리에겐 아직 '골든타임'이 남아있었다. 저렇게 큰 배가 여전히 진도 앞바다에 떠 있는데, 정부가 해양 경찰과 장비를 총동원했다는데…. 이름조차 생소한 '에어포켓'에 희망을 걸 만큼, 대다수 국민들은 절박하게 세월호 승객들의 생존과 무사 귀환을 기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나. 그 날부터 오늘까지 무슨 일들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는 묻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

참사 후 1년이 조금 지난 요즘, 메르스 확산에 대처하는 정부를 보며 세월호 때가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다.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을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양상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일 터다.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정말 가능한 최선을 다해 구조했더라면. "탈출 안내 방송을 했다"던 목포 해경 123 정장의 말이 거짓 아닌 사실이었더라면. '국민 불안' 운운하지 말고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감염 확산을 막았더라면.

그랬다면 누군가의 소중한 아버지이자 어머니였을, 또 아들딸이었을 사람들이 애꿎은 목숨을 잃을 일은 없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불확실한 정보 탓에 서로 감염을 의심하며, 야외 활동조차 두려워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테다. "나라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세월호 때 산산이 조각났고, 그렇게 시작된 불신은 지금 바이러스보다 더 빠르게 국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정부 발표를 신뢰하며 기다리기보다는 모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분위기다. 

"사람이 우선" 인권선언이 필요한 이유

그래서 두렵다. 재난은 메르스 같은 전염병뿐 아니라 태풍과 홍수 등 자연현상, 또 대형 사고로 인한 국가기반체계 마비까지를 포함한다. 그야말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인 셈이다. 멀리갈 것도 없이, 노동자들이 매일 일하는 현장에서도 사고 위험은 늘 존재한다. 세월호 때는, 또 이번에는 운이 좋아 피해갈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다음 주인공이 내가, 혹은 당신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피해 당사자들은 모두 입을 맞춘 듯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인권선언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대형 병원이 아니라 국민이 우선시되는 사회, 기업의 이윤보다 생명이 더 대접받는 사회가 이제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 운영에 가장 기본이 되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의 주인된 권리는 국민에게 있다'는 말이 나온다.

주인의 권리를 우리는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 국가를 위해 봉사할 공무원들이 주인을 제대로 대접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모든 국민이 보건에 관해 국가의 보호를 받고(헌법 제36조), 어떤 이유로도 차별 받지 않으며(제10조), 행복할 권리가 국가로부터 보장되는(제11조) 헌법이 정말로 실현되길 바라는 것은 그저 꿈에 불과할까.    

적어도 국민 한 명 한 명이 '안전할 권리' 만큼은 갖게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그 권리는 누가 거저 주는 것은 아닐 테다. 지난해 말부터 각계 다양한 200여 명 추진위원들이 모여 '4.16 인권선언'을 준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인권선언은 세월호 참사로 우리가 잃은 것과 앞으로 다시는 잃지 말아야 할 것, 가장 최소한 지켜져야 하는 '인간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참사가 그저 가슴 아팠던 큰 사고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래서 되풀이되는 것을 방지하고 나아가 우리 아이들을 이런 위험으로부터 막으려면 반드시 갈무리가 필요하다. 세월호로부터 시작됐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 지금, 그 해법을 고민하는 자리에 용기를 내 동참하는 것은 어떨까.

4.16인권선언 제안 웹자보
 4.16인권선언 제안 웹자보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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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성애 <오마이뉴스> 기자는 416인권선언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한 시민의 입장에서 썼습니다.



태그:#세월호, #인권, #인권선언,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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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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