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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못자리 피사리를 두어 차례 하고 나면 매년 면서기들의 동네 방문이 늘면서 농협 창고 앞마당에는 풀 더미가 생겨난다. 모내기를 앞두고 자기 논에 풀 베어 넣기도 바쁜 때에 동네 풀을 베어 모으라 하니 다들 투덜대지만 피해 갈 수 없는 국가 정책이다. 동네 이장은 개인 풀까지 창고 마당에 갖다 놓으라고 닦달을 한다.

웃거름 줄 수 없었던 논, 마을 대항 풀베기 대회

논으로 바로 내지 말고 농협 창고 앞에 쌓았다가 담당 면 서기의 점검이 끝나면 가져가라는 것이다. 갖가지 우습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이때다. 풀베기 마을 경진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양은 그릇 다섯 벌이 나오기도 하고 닷 되들이 양은 주전자가 나올 때도 있다.

잘 깨지는 박 바가지나 무거운 놋그릇을 쓰던 때라 가볍고 윤기 나는 양은 그릇은 누구나 탐내는 신식 부엌 살림살이다. 그러다 보니 풀 더미 속에 가시덤불을 쑤셔 넣기도 하고 누에를 먹이고 난 뽕나무 가지를 쌓아 놓고 그 위로 풀을 덮어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면사무소의 형식적인 풀 더미 점검이 끝나면 동네에 일손이 없는 집에서 시세보다 싸게 풀을 사서 논에 넣는데 풀 더미 속에서 나온 나뭇가지나 가시덤불을 보고 풀 값을 더 깎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면 면에다 발고를 하는 수도 있다. 동네에 한 바탕 소란이 인다.

모내기철 논에는 두 종류의 밑거름이 들어간다. 하나는 겨우내 소마구를 거쳐 나온 볏짚 소똥 거름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막 왕성하게 산과 들을 뒤덮기 시작한 싱싱한 풀들이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웃거름으로 줄 비료나 액비가 없었기 때문에 모 심기 전에 밑거름을 충분히 줘야 했다.

밑거름은 충분히 주되 벼의 생육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영양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거친 거름을 준다. 볏짚 소똥 거름이 안성맞춤이요, 산이나 들의 풀들은 녹비로서 안성맞춤이었다.

마구간 거름은 겨울 동안 마당에 쌓아 놓고 여러 번 뒤집어 주면서 푹 띄우는데 부드럽게 잘 삭은 몽근 거름은 밭으로 내고 거친 덜 삭은 거름은 논으로 낸다. 밭으로 먼저 나가는 몽근 거름이 집 마당 거름자리에서 사라지고 나면 남아 있던 거친 거름으로는 논 거름이 모자라 마구간 바닥이 드러나게 다시 박박 긁어낸다.

웃거름용 비료 때문에 사라진 논거름거리

동네 사람들이 풀 베어 쌓는 모습
▲ 풀 베어 쌓기 동네 사람들이 풀 베어 쌓는 모습
ⓒ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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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 끌어 낸 소마구 거름은 축축하게 젖어 바지게에 짊어지고 가기에는 돌덩이처럼 무겁다. 꾀를 내서 소똥이 뒹구는 거름을 마당 여기저기 널어 말린다. 쇠파리가 들끓는다. 소 똥 냄새가 옷을 뚫고 몸에도 밴다. 천수답부터 모내기가 시작되고 보리 타작 밀 타작이 끝나기도 전에 논두렁으로 거름을 져낸다. 바로 이때 풀베기가 시작된다.

논두렁, 밭두렁 풀들은 연해서 논에 들어가면 녹아 없어져 버린다. 물론 그마저도 소 먹이로 다 베어버리고 논두렁이 중 머리처럼 반들반들하여 풀벌레마저 피신을 떠날 지경이다. 일꾼들은 낫을 두 세 개씩 지게에 꽂고 들과 산으로 간다.

가장 인기 있는 먹잇감이 오리목 나무와 굴밤나무, 그리고 아카시아 나무다. 연두빛 새싹 단계를 지나 나뭇잎은 도톰하게 살이 올랐고 연한 나무 줄기들은 톡톡 잘 잘린다. 오리목 나무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녹비 작물의 구비 조건을 두루 잘 갖췄기 때문이다. 생육이 빠른 데다 줄기와 잎이 풍성하면서도 연하여 토양 중에서 분해가 빠르고 칼륨 성분도 적당량이 있다. 토양 중 유기물 함량을 높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재료가 없다. 논 밑거름으로 가장 좋았다.

오리목 나무는 아카시아 나무와 함께 한계 조건에서도 잘 자라서 사방 사업이나 조림용으로 민둥산이나 석회암 돌산에 광범위하게 심었던 것이라 왜솔이라 불리는 리키다 소나무와 함께 전국의 산에 심어져 있었다. 성장도 유난히 빠른 편이라 산사태 방지와 산림 녹화에 크게 기여했다. 더구나 재목으로 쓰기에는 나무가 무르고 구불구불 자라서 녹비 작물로 더 없이 좋았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웃거름용 비료가 등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쪽에서는 모를 쪄 내고 다른 논배미에서는 보리를 베어 낸지 엊그제지만 갈아엎고 풀을 넣어 쓰레질이다. 쓰레질을 하다 보면 풀 대궁이나 나뭇가지가 논바닥에서 솟구쳐 올라 있기도 하다. 발로 밟아 문대면서 땅 속으로 비벼 넣다 보면 발바닥이 찢기기도 한다. 흙 속의 미생물이 지혈제 역할도 하지만 모꾼들이 모 심으러 논두렁을 건너오기 전에 논 장만하느라 발바닥 찔린 줄도 모를 때가 많다.

북 주다 보니 풀도 매지네

모내기가 끝나면 장마 들기 전에 마지막 밭매기가 시작된다. 밭매기는 논 일 보다 훨씬 힘들다. 땡볕아래 풀을 매야 효과적이라 땡볕을 등에 지고 일 해야 한다. 이게 물에 발 담그고 일하는 논일 보다 힘든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움직임이 적다는 것이다. 논일은 여기저기 크게 움직이면서 일하기 때문에 몸 근육 여러 개를 쓰지만 풀매기는 단조롭고 반복적이다.

오죽하면 "콩밭 매는 칠갑산 아낙네가" 유행가에 등장하랴. 숨은 턱턱 막히고 오금은 저리고 허리가 끊어질 듯 한 풀매기의 단면을 잘 드러내 준다. 풀매기는 한 번 해 주는 것과 두 번 해 주는 것이 엄청 차이가 크다. 풀 한번 잘 매면 거름 열 번 주는 것 못지않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말이 성립하려면 바로 북주기가 곁들여져야 한다.

풀을 맬 때 북주기 하는 작물이 감자와 고구마다. 북 주기란 흙 표면을 살살 긁어서 작물이 있는 쪽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인데 흙을 긁어 올리기 전에 작물 쪽에 아카시아 잎이나 칡잎 줄기들, 또는 오리목 나무 끝 순을 잘라서 깐다. 작물 뿌리가 녹비와 흙으로 두텁게 덮이면서 땅바닥 풀은 뿌리가 뽑힌다.

북주기는 북돋운다는 뜻이다. 북주기를 해야 수확이 는다. 고구마와 감자가 둘 다 땅 속에서 주렁주렁 달린다고 해서 같은 것은 아니다. 고구마는 덩이뿌리, 감자는 덩이줄기이다. 감자 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기까지 땅 속 부분은 땅속줄기라 부른다. 이 땅속줄기 옆구리로 뿌리도 나고 줄기도 나는데 줄기 끝에 맺히는 덩이가 감자가 된다. 북주기를 하면 땅속줄기가 많아지고 덩이가 커진다.

북주기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호미로 풀 매기 겸 북 주기를 하다보면 겉흙에 형성된 모세관을 막아주게 돼 땅 속 물기가 증발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표토에는 자연스레 모세관이 형성되어 평소 거기를 통해서 땅 속 수분이 증발한다.

논에 밑거름 줄 때처럼 밭에도 볏짚 거름을 웃거름으로 줄 때가 있다. 소마구 쳐낸 볏짚 거름은 볏짚의 특성 때문에 토양 물리성도 좋아지고 토양미생물을 크게 늘인다. 땅이 부드러워지며 산소 비율 증가로 작물 뿌리 생육 촉진에 크게 기여한다.

공장 축분, 믿을 수 있나

호미로 북주기 하는 모습
▲ 북주기 호미로 북주기 하는 모습
ⓒ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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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퇴비와 북주기, 풀매기가 다 사라진 들녘은 사람도 사라지게 했다. 감자밭이건 고구마 밭이건 심어만 놓으면 나중에 캐러 가면 된다. 심기 전에 시커먼 비닐로 씌웠기 때문에 풀이 나지 않는다. 비닐을 씌우기 전에 공장 퇴비와 비료를 듬뿍 줬기 때문에 북주기가 필요 없다.

북주기 작물과 비닐멀칭 작물을 이렇게 비교 해 본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아침, 점심, 저녁을 알맞게 챙겨 매번 먹이를 갖다 주는 것하고 3끼 분량을 듬뿍 주고 진종일 쳐다보지도 않는 것하고 어떤 개가 더 건강할까?

논도 마찬가지다. 물 로터리를 치기 위해 논에 들어가는 트랙터는 평탄 작업을 할 수평대를 끼워 간다. 논에서 돌이라도 하나 만나면 바로 건져내는 망채를 트랙터 앞쪽에 장착한다. 농부라기보다 중장비 운전자가 논을 누빈다. 로터리를 치기 전에 비료가 뿌려졌고 웃거름도 쉽게 줄 수 있으니까 농부는 밑거름 장만하느라 산에 오를 필요가 없다. 발에 흙은 물론 물기 한 방울 안 묻히고 모심기가 가능한 시대다.

올해는 예년보다 상당히 빨라져서 모내기가 6월 초순에 거의 끝나고 있다. 예전에는 7월 초까지도 모심기가 진행되었는데 온난화가 가속되는 측면도 있지만 다들 2모작을 않으니까 모를 일찍 심게 되었고 하우스 모판 재배를 하니까 서리나 냉해 걱정 없이 일찍 모를 키워서 그렇게 되고 있다.

보리나 담배, 밀 등으로 논에 2모작을 했었는데 지금은 일부에서 사료 작물이나 녹비 작물을 키운다. 양파나 마늘은 밀, 보리와 달리 논을 메마르게 한다. 그렇잖아도 농지면적이 급감하는 차에 경지이용률은 더 떨어지고 있다. 경지 연면적을 경지 면적으로 나누는 경지이용률은 계속 내리막길을 달린다. 2모작이 사라지니 보리피리도 사라지고 풋 밀을 불에 그으려 밀살이 할 때의 졸깃하고 고소한 맛도 잊힌지 오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살림에서 발행하는 <살림이야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전새날양이 그렸습니다.



태그:#살림이야기, #한살림,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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