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표 판매치는 얼마 정도인가요?"사실 이 책이 안 팔리는 게 좋죠."
23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아래 민변) 사무실에서 만난 황희석 변호사가 말했다. 민변 회원들과 함께 <쫄지마 형사절차 - 수사편>를 쓴 그는 '대박'을 원하지 않는다. 책이 잘 안 팔리길 바랄 뿐 아니라 "박물관에 들어가는 게 소망"이기까지 하다.
황 변호사의 이상한 바람은, <쫄지마 형사절차>의 인기는 한국의 인권상황과 반비례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 책은 수사를 받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다룬 일종의 지침서로 2009년 12월 처음 세상에 나왔다. 1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많은 시민들이 끌려가 재판받는 광경을 목격하며 시민들이 형사절차를 제대로 알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도울 책이 필요하다고 느낀 민변 변호사들의 공동작업 결과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민변 변호사들은 걱정이 늘었다. 황 변호사는 "국민들이 무참히 탄압당하고, 갈수록 대립과 갈등이 심해졌고, 결국 국민들이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하는 상황이 됐다"며 "지난해 2월 개정판을 기획했다, 이 책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또 그만큼 형사절차 전반을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고 보고 초판에서 수사와 재판을 분리, '수사편'부터 출간하기로 했다.
시절이 하수상하지만... '쫄지마! 형사절차!'2009년 이후 달라진 상황을 반영할 필요도 있었다. 특히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모바일 메신저 등 디지털 증거 관련 수사도 활발해졌다. 또 다른 저자 송상교 변호사는 "디지털 정보 등을 이용한 새로운 수사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많이 포함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또 "막상 책을 낸 후에도 많은 분들이 '여전히 어렵다'고 해서 더욱 쉽게 써보려고 고민했고, 몇 년이 지나는 동안 판례가 바뀐 것들도 추가했다"고 덧붙였다.
이 변화들을 반영해 개정판을 집필하는 동안 저자들은 형사절차에 여전히 인권침해적 요소가 많다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다. 송상교 변호사는 "수사기관은 여전히 묵비권 행사를 '진실은폐'로 본다"며 "피의자가 '저는 묵비하겠다'고 하면 조사할 필요가 없는데도 2~3시간씩 계속 질문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진실을 은폐하는 것 아니냐'고 몰아간다"고 말했다. 또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단계부터 국선변호인이 입회하는 것처럼 체포당할 때에도 변호인의 조력권을 최대한 보장해줘야 한다"고 했다.
당장은 책 제목처럼 '쫄지마'가 우선이다. 황희석 변호사는 "수사 시작하면서 소환통보를 받으면 사람들이 제일 많이 겁을 낸다"며 "이때 초기대응을 잘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했다. "변호사 등의 조력을 받아 차분하게 대응을 시작하라"는 말이었다. 그는 또 송 변호사가 언급한 묵비권 얘기를 다시 꺼내며 "흔히 '변명해야 풀어주지 않을까'란 생각에 입을 열었다가 덜미를 잡히는데, 묵비권 행사로 무사했던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민변은 후속으로 '재판편'을 준비할 뿐 아니라 시민들이 형사절차에서 적절하게 방어할 수 있도록 교육·홍보하는 데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송 변호사는 "형사절차는 그 나라의 인권수준을 가장 기초적으로 보여주는데, (한국은) 현실과 이상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책 내용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10명만 모여서 민변에 '알아듣기 쉽게 강의해달라'고 요청하면 달려가겠다"는 약속도 남겼다.
덧붙이는 글 | <쫄지마 형사절차 - 수사편>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생각의 길 / 2015년 6월 29일 / 값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