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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는 두 젊은이가 있다. 14개 주를 지나가는 5천여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페달을 돌려야 하는 약 80일간의 길고 힘든 여정이다. 이들의 이 여행에는 'Triple A Project : Bike for Comfort Women'이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동갑내기 두 청년은 인천대에 재학 중인 심용석(22)씨와 경희대에 재학 중인 백덕열(22)씨다. 두 사람은 독도경비대에서 선후임으로 만나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하기로 의기투합했다.

27일(미국 서부시간)  출발하는 이 긴 여정의 시작점인 미국 LA에서 23일 두 청년을 만나 어떤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떻게 준비를 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위안부 할머니들 위해 미국 횡단하는 두 청년

* 약 80일 간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하는 심용석씨 (22. 인천대 중어중국학과/왼쪽)와 백덕열 (22. 경희대 체육학과/오른쪽)
 * 약 80일 간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하는 심용석씨 (22. 인천대 중어중국학과/왼쪽)와 백덕열 (22. 경희대 체육학과/오른쪽)
ⓒ 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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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Triple A'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백덕열(아래 백) : "인정 (Admit), 사죄 (Apology), 그리고 동행 (Accompany) 세 영어 단어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께 대한 우리의 마음을 보여드리고, 이 이슈를 미국에 알리고자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였다. 일본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촉구하며, 많은 한국인, 미국인들이 우리와 함께해줄 것을 요청하는 의도에서 3-A 프로젝트라 이름짓게 되었다."

심용석(아래 심) : "우리가 야구를 좋아해서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미국 메이저리그 밑에는 마이너리그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AAA 리그가 있다.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위안부 문제는 미국에선 당연히 주요 이슈(메이저)가 아니다. 하지만, 이를 주요 이슈로 부각시키는데 우리 프로젝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 두 사람은 독도경비대에서 같이 근무를 하며 만났다고 들었다.
심 : "아다시피 독도경비대는 의무경찰의 신분이다. 우리가 군대를 갔던 2013년은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 갈등이 심했던 시기이다. 그래서인지 독도경비대에 지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20대 1의 경쟁을 뚫고 독도에 근무하게 되었다."

백 :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남자축구팀이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박종우 선수가 관중이 건네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경기장에 들고 들어온 일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박종우 선수가 징계를 받고 메달 수여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사건이 있었다.

후에 메달은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어쨌든 당시 그 사건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스포츠를 통해 세상에 말한다, 이런 생각. 그래서 독도경비대에 지원했다. 심용석씨보다 두 달 후에 입대를 해서 내가 후임이다."

- 군대에서의 만남이 제대 후 사회에서 계속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제대 후에 이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되었나?
심 : "평소에 사이클을 좋아했고,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하는 게 꿈이었다. 복무 중에 같이 휴가를 나온 적이 있었다. 백덕열씨한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같이 가보자는 제안을 했고, 백덕열씨도 흔쾌히 찬성했다."

백 : "당시엔 선임이 하는 얘기라 거절할 수 없었다(웃음)."

심 : "독도에 근무하면서 늘 우리는 외교와 국방의 최전선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왕 미국 횡단 여행을 한다면, 그저 개인적인 희망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사회적인 이슈를 알리면서 하면 더 의미있는 일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 했다. 그 즈음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우리가 독도경비대에 지원하던 당시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여행으로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 : "심용석씨는 작년 말에 제대를 했고, 나는 올 2월에 제대를 했다. 제대 후 만나서 이 프로젝트를 현실화하는 보다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우게 되었다."

- 준비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평소 사이클을 전문적으로 했었나?
심 :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고 생활 속에서 매일 사이클을 즐겨왔다. 하지만 취미로 하는 사이클링으로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데는 부족함이 많을 것으로 생각해서 지난 3~4개월 동안 꾸준히 준비를 했다."

백 : "내 전공이 체육학과이고 평소 마라톤을 했던 터라, 내가 사이클을 타는 데 있어서도 당연히 심용석씨보다는 체력적으로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첫 라이딩에서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처음엔 자전거에 몇 시간씩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고 심용석씨를 따라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난 3~4개월 동안 연습을 많이 해서 지금은 자신이 있다."

심 : "미국에 오기 전 점검 차 자전거로 서울-부산을 왕복하는 여행을 다녀왔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장갑을 빠뜨려서 손만 시커멓게 타기도 했고, 튜브패치를 준비하지 않아 타이어 펑크가 났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실수도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들르는 도시마다 작은 집회 열어 위안부 문제 알릴 것"

- 이번 미국 횡단거리는 서울-부산을 5번 이상 왕복하는 거리이고, 수 개월이 걸릴 것 같다.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장비구입, 여행 경비 등 자금은 어떻게 구했나?
심 : "후원해 준 회사도 있고, 크라우드펀딩도 받았으며, 개인적으로 일을 해서도 돈을 모았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을 세운 후 기획안을 만들어 자전거 관련 회사들에 보내고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이 프로젝트가 한일 간의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어서 일본시장의 축소를 우려한 회사들이 많았다. 다행히 한 회사(Trek)가 흔쾌히 자전거 관련 장비를 지원해줬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에서는 크라우드펀딩을 가능하게 해줬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지원을 해줬고, 총 6천여 달러 정도 모았다. 비행기 값은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았다. 지인들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오랫동안 연락없던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들었다며 지갑에 있던 돈을 다 꺼내 준 적도 있다."

백 : "부산까지 자전거로 가서 부산역 앞에서 이 프로젝트를 홍보했다. 당시에 우리는 '독도지킴이'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똑같은 티셔츠를 입은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 계획을 듣고 흔쾌히 지원을 해주셨다."

- 미국에서 위안부 이슈를 알리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준비가 필요했을 것 같다.
백 : "자료를 찾아서 공부했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말씀도 직접 들었다. 용인 요양원에 계신 한 할머니를 찾아 뵈었고, 나눔의 집을 방문해서 여러분을 뵙고 말씀을 들었다. 수요집회에도 몇 차례 참석했다."

심 : "자료를 찾고 할머니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미국에 전해야 할지 어느 정도 계획은 세워졌지만 영문으로 자료를 만들고 홍보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 때 독도경비대 시절 같이 근무했던 동료가 김예훈씨를 소개해줘서 알게 되었다. 듀크대를 졸업하고 귀국한 김예훈씨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정말 큰 힘이 되었다."

- 구체적인 일정은 어떻게 되나?
심 : "이번 토요일(27일, 미국 서부시간)에 LA를 출발하여 덴버, 시카고, 워싱턴 DC를 거쳐 9월 초에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다. 80일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백 : "개학 전에 귀국을 해야 하니까 부지런히 달릴 예정이다. 들르는 도시마다 작은 집회를 만들어 위안부 문제를 미국인들에게 알려나갈 생각이다."

심 : "이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해 15초 분량의 춤을 만들었다. 나비를 형상화 한 춤이다. 집회 때마다 보여줄 생각이다. 각 지역마다 자전거 동호회와 연락을 취해서 짧은 거리라도 같이 달리는 기회도 계속 만들려고 한다. LA 출발 때는 한인 동호회 분들이 같이 달려줄 예정이다."

- 아무쪼록 다치지 않고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기 바란다.
심 : "나는 성격이 진취적이고 일을 벌이는 반면, 백덕열씨는 세심하고 꼼꼼하게 일을 챙기는 성격이다. 둘의 성격이 백덕열씨 같았으면 아마 이곳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고, 나 같았다면 오자마자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하고 망했을 것이다. 서로 도와 가면서, 그리고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꼭 잘 해내겠다."

백 : "한국에서는 물론 이곳에 와서도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가주한미포럼과 여러 날 숙식을 제공해주신 성공회 김요한 신부님께 감사드린다."

두 사람은 24일 수요일, LA 일본 영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열었다. 한국 시간으로 24일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김연희 할머니를 애도하고 일본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어 준비한 성명을 발표했다.

심용석씨와 백덕열씨가 24일 (미국 LA 시간), LA 일본영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열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심용석씨와 백덕열씨가 24일 (미국 LA 시간), LA 일본영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열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 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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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25일에는 LA인근 글렌데일 시립 중앙도서관 앞 시립 공원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김연희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추모식을 올리고 긴 여정의 출정식을 치렀다.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가주한미포럼 회원들과 함께 추모식과 출정식을 거행하고 있다.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가주한미포럼 회원들과 함께 추모식과 출정식을 거행하고 있다.
ⓒ 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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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의 세 번째 A는 '함께하기'(Accompany)이다. 두 젊은이들의 뜻에 같이 하는 사람들은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bikeforcomfortwomen)를 방문하여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길 바란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3A 프로젝트, #위안부, #심용석, #백덕열, #가주한미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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