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웅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5·16 군사정변은 객관적 표현이고, 유신헌법은 헌법가치를 훼손했다"라고 국회에 답변했다.
<오마이뉴스>가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서면답변서에 따르면, 먼저 김 후보자는 "5·16이 혁명인가 쿠데타인가?"라는 질문에 "교과서에는 '5·16 군사정변'이라고 표현되어 있다"라고 답변했다.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을 방패삼아 '혁명'인지 '군사쿠데타'인지를 명확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다만 김 후보자는 "교과서에는 5·16를 군사정변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에 동의하나?"라는 질문에는 "객관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동의 여부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5·16 군사정변은 객관적인 표현"이라는 답변을 통해 에둘러 '5·16=구국의 혁명'이라는 일각의 주장과는 선을 그은 것이다.
"5·16은 쿠데타"라던 이병기 비서실장보다 못한 역사인식?전임자인 황교안 총리는 자신의 저서 <집시시위법 해설서>(2009년)에서 "집시법은 4·19 혁명 이후 각종 집회와 시위가 급증하여 무질서와 사회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 속에서 5·16 혁명 직후 제정됐다"라고 썼다. 4·19은 물론이고 5·16까지 '혁명'으로 기술해 논란이 일었다.
황 총리는 지난 2013년 2월 28일 열린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역사적·정치적으로 다양한 평가가 진행 중이므로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답변을 피했다. 그러다가 야당 청문위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마지못해 청문회 당일 별도의 서면답변을 통해 "대부분의 초중고 교과서에서는 5·16을 군사정변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그런 용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
5·16을 바라보는 역사인식에서 김 후보자가 황 후보자를 넘어섰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인사청문회 전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서 "5·16 군사정변은 객관적 표현"이라고 밝힌 것을 헤아리면 김 후보자가 좀 더 전향적인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물론 자신의 의견으로서 "5·16이 군사쿠데타다"라고 답변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들어 김 후보자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학술적으로 보나 뭐로 보나 쿠데타가 분명하다"(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거나 "교과서에 5·16 군사정변으로 표현돼 있고 저도 같은 입장이다"(한민구 장관 후보자)라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역사적인 문제를 판단할 만큼 깊은 공부가 안 되어 있다"(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라거나 "답변이 어렵다"(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라고 답변한 경우보다는 좀 더 전향적이다.
'눈치성 답변'도 있었다. 김 후보자는 황교안 총리가 5·16을 "혁명"이라고 표현한 것에는 "표현 경위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설명드렸다"라고 답변을 피해갔고, '그런 역사인식이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을 부정한다'는 평가에는 "황 총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한 분이다"라고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위헌 여부' 언급하지 않고 "기본권 침해 등 헌법 가치 훼손"또한 김 후보자는 '유신헌법의 위헌 여부'를 묻는 질문에 "유신헌법은 일부조항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등 헌법 가치를 훼손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위헌 여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일부조항"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라고 적시했다는 점에 더 의미를 두는 시각도 있다.
김 후보자는 유신헌법 아래에서 단행된 긴급조치 1호의 법률성 여부와 헌재의 위헌법률심판 대상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대법원은 국회의 동의나 승인없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법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반면, 헌재는 규범의 효력을 기준으로 법률성을 인정해 위헌결정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만 답변했다.
'대통령이 국가위기 상황이라고 판단될 때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다'는 유신헌법 제53조를 근거로 단행된 조치를 '긴급조치'라고 한다. 지난 1974년 1월 긴급조치 1호를 시작으로 4년간 긴급조치 9호까지 단행됐다.
대법원과 헌재는 지난 2010년 10월과 지난 2013년 3월 긴급조치 1호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각각 판결·결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국회의 입법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이 아니다"라며 긴급조치 1호의 법률성을 인정하지 않은 반면, 헌재는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고 처벌하는 규정을 둔 점에 비춰 최소한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법률성을 인정했다. 이로 인해 긴급조치 위헌심사 관할권 문제를 놓고 대법원과 헌재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김 후보자는 '긴급조치와 법치주의가 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영장주의를 배제함으로써 법치국가의 원리를 부인하였다고 판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우회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한편 김 후보자의 부친은 판사출신인 김수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유신체제 말기인 지난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보성·고흥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지만,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공화당에 입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