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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다 빠져서 죽은 잠자리를 봅니다. 몸에서 넋이 빠진 잠자리는 새털마냥 가벼우면서, 잘못 만지면 가루처럼 바스라질 듯합니다. 뻣뻣하게 굳은 잠자리를 가만히 살펴보는데, 어느새 작은아이가 옆으로 다가와서 "어, 여기 잠자리 있네?" 하더니 "잠자리 안 움직여. 죽었나 봐?" 하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거리낌없이 잠자리를 집습니다. 뻣뻣하게 굳은 잠자리를 제 눈앞에 대고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우지 배를 살살 간질였어요. 하지만 마우지는 깨질 않았어요. (3쪽)

 겉그림.
겉그림. ⓒ 언어세상
잠자리는 몸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갑니다. 나비나 애벌레도 목숨을 잃으면 넋이 몸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갑니다. 새로운 곳이 어디일는지는 몸을 떠나야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갔다가 이 지구별이 그리워서 다시 찾아올 수 있을 테지요.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사람이든 벌레이든 풀이든 새이든, 이 땅에서 즐겁게 살다가 몸을 떠난 뒤 이내 새로운 몸을 찾아서 다시 이 땅에서 삶을 짓는다고 할 테고요.

로비 H. 해리스 님이 글을 쓰고, 잔 오머로드 님이 그림을 그린 <굿바이 마우지>(언어세상,2002)를 읽습니다. 시골집에서 으레 '죽은 이웃'을 보는 아이들은 <굿바이 마우지>에 나오는 '죽어서 몸이 뻣뻣하게 굳은 쥐'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우리 집에서만 해도 헛간에 깃들어 함께 지내는 마을고양이가 으레 쥐를 잡아서 먹습니다. 언젠가 쥐를 잡아서 죽이고는 마당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기도 하고, 머리통만 남기고 먹은 뒤 마당 한쪽에 놓기도 합니다. 논둑에서 개구리를 잡아서 먹기도 하는 개구리는, 돌울타리에 앉아서 참새나 딱새를 잡고 싶어서 한참 동안 전깃줄이나 나뭇가지를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아빠도 슬프단다." 아빠는 나를 꼬옥 안아 주었어요. "아빠, 나 …… 마우지를 다시 만져 볼래요." "그래." (9쪽)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서 나들이를 다니다 보면 '죽은 이웃'을 많이 봅니다. 자동차에 밟혀서 죽은 개구리와 뱀은 참으로 흔합니다. 자동차에 치여서 죽는 참새나 까치나 제비도 있고, 사마귀나 메뚜기나 지렁이도 자동차에 깔려서 죽기 일쑤입니다. 이제 막 깨어나서 날갯짓을 익히면서 아스팔트에서 몸을 쉬는 나비가 그만 밟혀 죽기도 해요.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찻길을 가로지르는 개미조차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다닐 적에도 찻길을 기어가는 온갖 벌레를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싱싱 달리는 자동차에서는 '마주 달리는 자동차'를 살피느라 길바닥에 어떤 '이웃'이 있는지 살필 겨를을 내기 어려우리라 느껴요.

요즈음은 농약을 먹고 죽는 개구리가 있고, 농약 맞은 벌레를 먹다가 죽는 새가 있습니다. 논이나 밭이 농약바람으로 휩싸이면, 며칠 동안 벌이나 나비나 잠자리를 한 마리도 못 보기도 해요. 모두 농약바람을 맞아서 죽어요.

 자동차에 받힌 뒤 깔려서 죽은 제비를 길바닥에서 겨우 떼어낸 뒤 풀밭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제비는 워낙 낮게 날아다니다 보니, 자동차에 받혀서 죽는 일도 있습니다.
자동차에 받힌 뒤 깔려서 죽은 제비를 길바닥에서 겨우 떼어낸 뒤 풀밭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제비는 워낙 낮게 날아다니다 보니, 자동차에 받혀서 죽는 일도 있습니다. ⓒ 최종규

"마우지가 없으면, 이제 나 혼자 어떻게 해요?" "마우지를 마당에 묻어 주자. 그러면 늘 함께 있을 수 있어!" (12쪽)

'죽은 이웃'을 만나는 아이들이 묻습니다. "얘네들 어떻게 돼?"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몰라." "생각해 봐. 이 아이들은 몸만 여기에 내려놓고 새로운 곳으로 갔어. 앞으로 새로운 몸을 입고 아름답게 다시 태어날 테니, 다음에 만나자고 인사해 주면 돼."

밥상맡에서 늘 아이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먹는 밥이 고기이든 풀이든 모두 '목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기밥은 고기가 되어 준 목숨인 셈이고, 풀밥은 풀로 돋은 목숨인 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돼지나 닭이나 소만 '목숨'이지 않아요. 풀이랑 꽃이랑 나무도 목숨이에요. 사람도 다른 짐승도, 모두 '다른 목숨'을 밥으로 받아들여야 제 목숨을 건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누리 수많은 목숨을 받아들여서 내 몸을 새롭게 가꿉니다.

"상자에 다른 것도 넣어도 돼요?" "그럼, 되고말고!" 나는 마우지 상자에 토스트 한 조각이랑 당근 두 뿌리를 넣었어요. 또 포도 넉 알이랑 초코바도 넣었어요. (17쪽)

 자전거를 달리다가 뱀을 곧잘 봅니다. 뱀은 몸이 추울 적에 아스팔트로 나와서 몸을 따뜻하게 해 주려 하는데, 이 아이들은 으레 자동차 바퀴에 밟힐 만한 자리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려 해요. 자전거를 달리다가 코앞에서 알아보고 겨우 멈추었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다가 뱀을 곧잘 봅니다. 뱀은 몸이 추울 적에 아스팔트로 나와서 몸을 따뜻하게 해 주려 하는데, 이 아이들은 으레 자동차 바퀴에 밟힐 만한 자리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려 해요. 자전거를 달리다가 코앞에서 알아보고 겨우 멈추었습니다. ⓒ 최종규

내 목숨이 아름답고, 네 목숨이 아름답습니다. 네 목숨이 사랑스럽고, 내 목숨이 사랑스럽습니다. 서로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이요 삶입니다. 그림책 <굿바이 마우지>는 '귀염둥이 짐승'으로 함께 살던 작은 쥐 한 마리가 목숨을 내려놓은 뒤,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한테 '죽음'을 어떻게 알려주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가 '죽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죽음'하고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찬찬히 헤아리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굿바이 마우지>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는 "늘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도 늘 마음으로 함께 있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더라도 언제나 마음으로 함께 있어요. 마음을 살피면서 삶을 북돋웁니다. 마음을 아끼면서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마음을 사랑하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쁜 하루를 맞이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굿바이 마우지
로비 H. 해리스 글
잔 오머로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언어세상 펴냄, 2002.3.18.
8000원



굿바이 마우지

잔 오머로드 그림, 로비 H. 해리스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사파리(2002)


#굿바이 마우지#그림책#어린이책#죽음#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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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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