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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가 심각한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지난 6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성 혐오에 맞서는 '메갈리안의 딸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2개월 앞서, 무분별한 여성혐오 발언에 용감하게 맞선 고등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는 정지영씨가 자신의 고3 아들이 겪은 사례에 대해 쓴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밖에서 얘기할 땐 조심해요. 별거 아닌 거 따진다고 사람들이 싫어해요."

내겐 엄마가 혹시 '종북' 못지않은 기피대상인 '페미니스트'가 될까 제법 진지한 충고를 건네는 고3 아들이 있다.

"엄마가 여성혐오 사례에 대한 리포트를 써야 하는데 생각나는 경험 있어?"

중학교 때 '여자 성기를 닮아서 죠리퐁이 판매 중단됐다는 '괴소문'을 전해주기도 하고, 인터넷게임 셧다운 제도의 취약성(부모님 주민번호로 인증하면 됨)을 지적하며 여성가족부의 탁상행정에 대해 투덜거리곤 했던 아들이라 넌지시 물어보았다.

오! 이번엔 제법 수준 있는 사례를 들려주었다. 몇 달 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라 했다. 아들은 전교생이 120명 규모인 작은 기숙형 대안학교에 다닌다.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교육,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다. 입시위주의 교육과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학교다.

남학생들의 '마 부장' 말투 따라하기

 <미생>의 마 부장
<미생>의 마 부장 ⓒ tvn

"<미생>의 마 부장 알아?"
"알지, 안영이한테 말 세게 하던 캐릭터."

"응, 개학하고 얼마 안 됐을 땐데 그 마 부장 말투를 따라하는 남자애들이 좀 생겼어. 애들이 재밌다고 따라하다가 음담패설이랑 여자애들 비하하는 말들도 하게 되고 그러다 점점 더 정도가 심해졌어."
"어떤 말이었는데?"

"처음엔 '계집년들이 어디서,' 이러다가 '몸무게 45kg 이상이면 여자도 아니다,' '우리 학교 여자애들은 봐도 발기가 안 된다' 이런 말들까지 갔어. 여자애들한테 직접 대놓고 한 건 아니었지만 간혹 심하게 한 애들도 있었어. 여자애들이 엄청 열 받아 했지."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남자는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남성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남자는 남자들의 집단에 동일화하는 것을 통해 '남성이 된다'. 남자를 '남성'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남자들이며 남자가 '남성'이 되기 위한 수단, 혹은 '남성됨'의 증명으로 부여되거나 쫓아오는 보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여자를 '여성'으로 만드는 것은 남자이며 '여성됨'을 증명하는 것도 남자들이다. 호모소셜(동성사회성)한 집단이란 이처럼 '성적 주체'임을 서로 승인한 남자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여성'이란 이 집단으로부터 배제된 자들, 오로지 남자들에게 욕망되고 귀속되고 종속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자들에게 부여된 명칭이다. 따라서 호모소셜한 집단의 멤버가 여성을 열등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이성애 질서의 핵심에 여성혐오가 있다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여성이 아니다'라는 아이덴티티만이 남성다움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을 성적 객체로 삼아 내가 성적 주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을 때 비로소 동성집단으로부터 남성으로 인정받는다."

<미생>의 하고많은 캐릭터 중에서 굳이 마 부장의 말투를 남학생들이 따라했던 이유는 뭘까? 그냥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재미있어서' 라고만 하기엔 부족하다. 남성집단의 멤버로서 자신을 귀속시키고자 했던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런 말들이 남자애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농도가 진해질 즈음, 여학생들의 '도발'이 있었다.

33명이 한 줄로 서서... 여학생들의 '도발'

4월 어느 점심시간, 식당에서 남학생들이 한참 밥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식당 한편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나타났다. 여학생들은 그동안 남학생들에게 들었던 말들을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그대로 들려주었다. 남자애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음, 왜 그러지, 뭐지, 궁금해 하는 애들도 있었고 밥 먹는 데서 그런다고 짜증내기도 하고, 대부분은 당황했지."

5, 6교시에 몇몇 반은 수업을 빼고 학급회의를 했고, 7교시에는 전교생이 모여서 전체회의를 했다.

"회의할 때 남자애들이 불만스러운 거 얘기하려고 했는데, 여자애들이 그 부분을 먼저 알아채고 사과했어. 그러면서 여자애들 심정이 그만큼 힘들었다고 말했어. 남자애들은 여자애들 퍼포먼스 하는 거 보고 당황하고 불편했지만, 얘기를 듣고 나서 불만은 풀렸고 오히려 미안해졌어."
"그랬어, 지금은 어때?

"지금은 여자애들 비하하는 말 비슷한 거 하면 서로 하지 말라고 말해줘. '야! 여자애들이 싫어하잖아. 하지 말라니깐 하지 말자'. 이렇게."

학생회장인 3학년 여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아들의 얘기와 비슷했다. 다만,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왔다는 것이 달랐다. 농담인 듯 아닌 듯 서로 주고받던 말들이 불편하고 불쾌해지던 3월 말. 여학생들은 여기숙사 전체회의를 열고 그동안 서로가 들었던 모욕적인 말을 공유했다.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실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여학생들은 그동안 들었던 말을 날것 그대로 모아봤다. 묻어둘 수 없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어떤 방법으로 마음을 전달할지, 각자 무엇을 할 건지, 언제할지 등을 논의했다.

남학생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 거울을 보듯 스스로 비춰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미러링 스피치(Mirroring Speech)', 앵무새처럼 똑같이 말하기였다. '남자애들이 뜻을 알고 쓰는 게 아닐 수도 있잖아. 걔네가 우리한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고 우리 기분을 느끼게 해주자'라는 의도였다. 일주일을 준비하고 행동의 날을 4월 6일로 잡았다.

여학생들은 당일 날, 선생님들께 4교시를 같은 시간에 끝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무언가 있겠다 싶었지만 교사들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남자애들이 거의 모였을 때 진짜 못하겠다는 5명을 빼고 33명이 한 줄로 손을 꼭 잡고 섰어요. '***, 우리가 이런 말을 들었어.' '***,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살아.' '*** 너희가 이랬어' 큰 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실어 들었던 말들을 그대로 했어요."

***는 아래와 같은 말이었다.

"옆구리 찌르면서 '살 쪘네' '여자는 삼일에 한 번은 패야 돼' '너 김치녀지?' '가슴도 없는데 브라 왜 차?' '계집년이 어디' '생결(생리결석)도 있는데 몽결은 없어?' '아, 나도 생리하고 싶다, 생리하면 무슨 느낌이야?' '얘 쉬우니까 사귀어서 자보자' '너 조건 만남 하냐??' '야한 영화 같이 보러 가자' '너 노출증이야?' '나 걔랑 자봤다' '걸레' '너 후다야, 아다야?' '야, 벌려' '야, 저 쌤 생리한다' '여자끼리는 섹스 어떻게 하냐?"

퍼포먼스를 끝낸 후, 감정이 복받쳐 올라 우는 애들이 많았다.

'진짜 이런 말을 듣고 살았구나, 왜 그동안 듣고만 있었지' 하는 생각에 모욕감, 분노, 억울함, 슬픔의 감정이 밀려 왔다. 시원하진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후련함, 시원함 같은 기분은 안 들었고, 그런 말을 듣고도 그냥 넘겼던 게 바보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말했다. 여성에게 여성혐오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된다. 자기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것이다.

"들어보니 어떻던가요?"

5교시부터 시작한 토론의 내용은 당연하겠지만 여학생 입장에서의 서술이 더 상세했다. 남학생 측은 '남녀 편을 가르는 거다. 일부가 한 말인데 전체를 가해자 취급한다. 왜 밥 먹는 시간에 하냐. 공격적 퍼포먼스라 받아들이기 힘들다' 등의 주장을 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여학생들은 전날 미리 준비한 호소문을 읽었다.

여러분!

점심시간에 잠깐이지만 표현했던 우리의 감정이 잘 전달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퍼포먼스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알고 있다면, 혹시나 몰랐다고 해도 어떠한 주제로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는 파악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숙사에서 여학생들 모두가 모여 여태 우리가 들은 말들에 대해 이야기 해봤습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우리가 하고 사는 말인데, 어쩜 이리 모질까요. 모두가 어렵사리 말했습니다. 자신들이 들었던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를 한 인격 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고는 있는 건지 의심하게 만들 정도의 거친 언어들이었습니다. 모두를 충격 그 자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쉬이 내뱉을 말도 아니고, 살면서 쉽게 들을 말도 아닌데 학교 안에서 이런 말들이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에 겁을 먹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에 수치스러운 말들을 우리 입으로 직접 내뱉기로 결심했습니다.

들어보니 어떻던가요? 가볍던가요? 쉬워 보이던가요? 친하니까, 장난이니까, 라는 말들로 넘어갈 수 있는 말들이 아닙니다. 일부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걸 방관하고 있지만은 않았나요?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친구로 선배로 후배로 받아들여지고는 있었던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에, 장난스레 웃는 표정 뒤에 했던 그 말들이 우리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는 걸 알기는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 의미 없었다고, 이제 와서 왜 그러냐고 하지 마세요.

우리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익숙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너희들도 익숙해지면 안 된다는 걸 지금이라도 제발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우리의 호소를 듣고 진심으로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진 토론에서 남학생들은 '우리가 이런 말을 한 줄 몰랐다. 진지하게 돌아보자. (여학생들이) 이렇게까지 상처받는 줄 몰랐다'며 충격과 깨달음이 있었노라 실토했다. 일부가 했어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공동의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모든 토론이 끝나고 여학생들끼리 따로 평가회의를 했다. "남자애들이 미안하다고 해서 고마웠다. 이렇게 하길 잘한 것 같다. 우리를 제대로 보여줬다. 남자애들이 느꼈을 억울함도 알아주고 잘하자. 앞으로 그런 말을 던질 때 그건 아니다, 라고 서로 꼭 얘기해주자" 등의 의견이 나왔다.

그렇다면 여기서 교사나 학교는 어떤 관여를 했는지 궁금했다. 여학생들은 교사에게 내용을 알리지 않고 그저 4교시를 같은 시간에 끝내달라는 부탁만 했다. 교사들은 점심시간의 퍼포먼스와 이후 토론에 함께 했지만 지켜보기만 했고 따로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과정 전체를 학생들이 진행한 것이다. "일반 학교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학생회장에게 해보았다.

"이렇게 할 분위기가 안 되지 않았을까요? 남자애들도 받아들일 수 있고 저희도 표현할 수 있었던 게 서로에게 얘기할 수 있는 신뢰가 먼저 있었고요. 그런 게 학교 전체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긴 토론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일반 학교면 끝나고 바로 학원가는 애들이 많아서 얘기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남성과 여성, 우리는 서로 적이 아니다

 여성혐오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서 이원론적 대결구도가 해답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여성혐오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서 이원론적 대결구도가 해답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 freeimages

'남자애들, 너네는 왜 이따위니, 너네가 나빠'라고 적대시 했다면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의 이야기에 동의할 수 있었을까? 남자들의 여성혐오의 핵심에는 '호모소셜' 즉 '동성사회성'이라는 문화가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다. 개인이라면 저항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집단적으로 모여서 '너희들이 이랬어. 너희의 모습을 봐'라고 '계집년들의 퍼포먼스'를 하는 순간, 다른 방식의 저항의 형태가 탄생했던 것이다.

미러링 스피치라는 방식으로 상황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던 여학생들의 현명함과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직시했던 남학생들의 용기가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공개적인 토론을 보이지 않게 지지했던 학교의 뒷받침도 중요했다.

성별이원제 젠더 질서 속에서 성장하는 이들 가운데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 사회를 공포와 불안으로 떠밀고 있는 메르스처럼, 실존하되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라는 '혐오'의 바이러스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우리 삶 가까이에  스며들어 있다.

무심결에 주고받는 웃자고 한 말, 가장 손쉬운 정보수집과 소통의 공간인 SNS, 드라마, 예능방송 등 시스템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너무나 자명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차고 넘친다. 여성혐오뿐만 아니라 차이가 차별로 치환되는 사회에서는 소수의 주류가 아니라면 누구든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성혐오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서 이원론적 대결구도가 해답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남성이란 여성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고, 그래서 '남자는 적'이라고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입장을 멈추고,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며 사회 전반의 정치역학과 같다는 점, 그리고 포괄적인 혁명적 정치학, 이 두 가지 모두를 고찰해야만 폭넓은 시각이 생긴다.

"우리는 서로 적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사회화를 거부해야 한다. 남성들이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은 여성이나 '성역할'이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자와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남성은 자신들의 실제 착취자들을 용감하게 거명하며 싸워야 할 시기다."

인종과 계급, 성차별에 맞서 실천했던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의 말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유용하다.

학생회장에게 끝으로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이런 퍼포먼스를 할 수 있었던 힘은 뭐였으며, 그 이후 학교 분위기는 어떤지를 물어보았다.

"이번 퍼포먼스의 힘은 폭력적인 말들로부터 '우리가 우리를 지키자. 그런 언어 사용으로부터 방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그냥 넘기지 않고 공론화 한 것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봐요. 개인이 아니라 여학생 모두 단결해서 집단으로 보여주었기에 훨씬 큰 힘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여자로서 가졌던 수치심과 모욕감에 대해서 '스스로를 지키자. 학교문화의 변화시키자'는 관점으로 토론을 진행했었어요.

이런 걸 요구하고 실천하게 된 계기도, 개인으로서는 실현시킬 수 없었던 것을 집단 퍼포먼스로 만들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단체 행동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전달력이 굉장히 컸어요. 퍼포먼스 이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만감성이 남녀학생 모두에게 훨씬 높아졌어요.

요즈음은 남학생들과 여학생들 간의 소통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해요. 친해지기 위한 행사도 하고 남여 기숙사 간의 좋은 점은 서로 배우려 노력해요. 전체가 화합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긴 문자로 학생회장이 답을 해왔다.

지난 여성학 수업시간에 들었던 '공공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공공성은 주장과 합의, 실천에 있어서 과정이 합리적이며 공개성을 갖는 과정, 개방성, 사회성을 바탕으로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작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곧 여름방학이다. 아들이랑 학생회장이랑 만나서 시원한 눈꽃빙수나 먹으며 못다 한 뒷얘기를 들어야겠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여성혐오#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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