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푸(曲阜)에서 랴오청(聊城)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달리는데 마치 경적 울리기 대회라도 참가한 듯 연신 경적을 울려댄다. 함께 차에 탄 중국인들은 거의 1분 간격으로 울려대는 요란한 경적소리가 소음으로 여겨지지 않는지 태연히 잠을 자거나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다.
서북쪽으로 네 시간쯤 달린 버스는 중국의 어머니강 황허(黃河)를 가로지른다. 칭하이(靑海)성에서 발원하여 5,464km 길이의 황허가 결승점인 보하이만(渤海灣)만을 약 400km 앞두고 유유히 흐른다. 넓게 펼친 강폭 사이로 흐름은 빠르지 않지만 토사를 잔뜩 머금은 누런 물빛에 오랜 중국의 역사가 함께 녹아 흐르는 듯하다.
황허를 지나고도 버스는 한 시간여를 더 달려 '강북 물의 도시' 랴오청에 도착한다. <수호지>, <요재지이>의 무대이자 경항운하(京杭運河)의 주요 거점이기도 한 랴오청은 먼 거리만큼이나 신비롭고 조금은 낯선 매력을 지닌 곳이다. 인구 635만의 랴오청은 동서길이가 약 700km인 산둥성의 가장 동쪽 웨이하이(威海)에서 수평 방향으로 가장 먼 서쪽, 허난(河南)성 접경에 위치해 있다.
<수호지>에도 등장하는 호반 도시항저우(杭州) 하면 서호가 떠오르는 것처럼 랴오청에는 동창호(東昌湖)가 있다. 도시 안에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안에는 고성이 자리해 있으며(城中有湖,湖中有城), 그 고성 한 가운데 황학루, 악양루와 함께 중국의 3대 명루로 불리는 광악루(光嶽樓)가 우뚝 솟아 있다.
동창호는 또 작년에 중국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794km 대운하와도 연결되어 있다. <수호지>와 대운하라는 그물에 두 번 걸려든 물고기처럼 랴오청의 품에 안긴다.
산둥성에 오면서 중국 4대 명저 중의 하나인 <수호지>를 다시 읽고, 그 무대를 모두 답사하리라 마음먹었는데 드디어 노준의가 공략에 실패해 결국 송강까지 합세해 힘겹게 공략하는 동창부(東昌府)를 둘러보게 된다.
<수호지>에서 동창부는 원래 몰우전(沒羽箭) 장청(張淸)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는 돌 던지기의 명수로 만만찮은 수호 영웅 열다섯 명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운다. 장청은 군량미를 미끼로 한 오용의 계책에 말려 사로잡혀 송강의 회유에 투항하고 수호지 108 영웅에 이름을 올린다. 동창호 주변으로 제비들이 많은데, 마치 장청이 던진 돌멩이처럼 빠르게 비행하며 호수 주변을 맴돈다.
해가 질 무렵 시원한 바람이 부는 동창호를 찾았다. 포송령이 쓴 <요재지이>의 예쁜 연지(臙脂) 아가씨의 이야기가 또 동창호를 무대로 펼쳐지는데, 마침 연꽃이 피어 동창호는 연지 화장을 한 아가씨처럼 곱고 아름답다. 동창호는 중국 북방 최대 호수답게 그 규모가 상당하다. 항저우 서호와 비슷한 크기이며, 지난(濟南)의 대명호 5배에 달한다.
동창호는 황허의 지류와 경항운하의 물줄기가 모여 이룬 거대한 호수다. 서호가 호수 안에 섬이, 섬 안에 호수가, 다시 그 호수 안에 섬이 있는 아기자기한 자연미를 자랑한다면, 동창호는 정방형의 고성을 방어하기 위한 치밀한 인공미가 엿보인다. 북송 시대인 1070년 건설된 랴오청고성을 보호하는 해자(垓子)였던 동창호는 주변을 지나는 황허지류와 경항운하와 연결되며 자연스럽게 그 규모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랴오청은 원래 봉황성으로 불렸다고 한다. 큰 오동나무 숲에 한 쌍의 봉황이 살며 백성들을 아끼고 보호해주었다. 그런데 어느 해, 동해에서 흑룡이 공격해 와 수컷 봉황을 죽이고 커다란 호수를 만들고 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호수를 동주호(東州湖)라 불렀다. 흑룡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호수 중앙에 성을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흑룡과 싸움에서 날아났던 암컷 봉황이 인간과 결혼해 낳은 왕동(王東)과 왕창(王昌)을 데려와 성 건설을 도왔다.
흑룡이 돌아와 보니 자신이 노닐 호수에 성이 건설된 것에 화가 나 성을 부수고 사람들을 해치려 했다. 암컷 봉황은 남편에 대한 복수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두 아들과 함께 흑룡과 싸웠다. 결국 흑룡은 패해 동해로 다시 돌아갔는데 호수에서 흑룡이 빠져나간 구멍으로 물이 계속 스며들어와 성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다.
이 때 봉황의 두 아들 동과 창이 성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그 구멍을 메웠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두 형제의 이름을 따서 봉황성을 동창성이라 불렀고, 호수 이름도 동창호가 된 것이라고 한다. 황허의 범람으로 끊임없이 고통 받는 이 지역의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로 치수가 얼마나 어렵고, 또 절체절명의 과제였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화려한 야경 자랑하는 동창호
고성 안 성곽과 상점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자 화려한 야경이 동창호 호수가로 번진다. 동창호에는 모두 24개의 교량이 있는데, 저마다 다른 사연을 노래하듯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빛난다. 수성명주(水城明珠)로 불리는 랴오청 대극장도 둥근 타원형 조명을 호수에 비춰 동그라미를 그린다.
동창호를 중심으로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랴오청의 면모가 호숫가에 드러나 비춰진다. 수호지의 108 영웅도 조각상으로 만들어져 동창호를 엄호한다. 수호지의 으뜸 두령은 송강인데, 동창호의 조각상은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무송이 중앙에 가장 크게 만들어져 있다. 밤이 깊어도 동창호는 그렇게 전설과 소설을 품고, 역사와 문화를 등처럼 밝히고 어둠 속에서도 유유히 빛난다. 밤늦게까지 고성을 헤매다 지친 나그네가 되어 하룻밤을 쉬어갈 객사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