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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라며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콕' 찍은 지 13일 만에 유 원내대표가 전격 사퇴했다. 그 '13일'의 시간을 두고 일각에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버텼다고 평한다. 하지만 그가 물러나야 할 명분이 워낙 약했다는 점을 헤아리면 오히려 당내 세력 관계에서 밀려 일찍 원내사령탑에서 내려왔다는 시각도 있다.
보수 경제학자→원조 친박→탈박→원내대표 사퇴
유 전 원내대표는 원래 주류경제학을 전공한 보수성향의 경제학자였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유학을 거쳐 지난 1987년부터 지난 2000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 12년 동안에는 보수성향이지만 '소신있는 경제학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다 지난 2000년 2월 신한국당 싱크탱크였던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발탁되면서 정계에 공식 입문했다. '대쪽 이미지'로 강력한 대권주자에 올라서 있던 이회창 총재에 의해서였다. 3년여 동안의 여의도연구소 소장과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 대구 동구을 당선을 거치면서 젊은 경제학자는 서서히 당내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해갔다.
중간에 '좌절'도 있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했지만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했고, 지난 2011년 새누리당 당명 개정 반대 등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 반기를 들면서 '원조 친박'에서 '탈박'으로 강을 건넜다. 지난 2012년 대선 초·중반까지 '역할'을 부여받지 못하다가 대선을 석달 앞둔 9월에서야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으로 뒤늦게 합류했을 정도로 '박근혜 체제'에서 소외받았다.
정계에 입문한 지난 2000년부터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2015년까지 15년의 정치인 인생 가운데 '가장 빛났던 때'는 지난 2011년 7월 전당대회와 지난 2015년 2월 원내대표 경선이었다. 전자에서는 홍준표 현 경남지사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 당 지도부(최고위원)에 진입했고, 후자에서는 친박진영에서 내세운 유력후보(이주영 의원)를 19표 차이로 누르고 여유있게 원내대표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당내 유력 정치인'에 불과했다. 당내 유력 정치인에서 '대중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계기는 지난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자로 나서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중산층의 편에 서겠다"라고 선언하면서부터였다. '안보는 보수지만 경제는 진보'라는 신보수선언은 야권의 지지까지 얻어냈다. 교섭단체 연설 효과로 그는 김무성 대표를 제치고 '차세대 지도자 1위'로 뽑혔다(<머니투데이> 국회의원 대상 설문조사).
국회법 개정안 협상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박 대통령은 협상을 주도한 그를 "배신의 정치"라고 몰아붙였고, 당내 친박세력들은 그의 사퇴를 압박했다. 당내 비박인 김태호·이인제 최고위원도 연일 그의 사퇴를 주장했고, 심지어 그를 엄호해야 할 김무성 대표조차 사퇴 권고안 결의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끝까지 버틸 것 같았던 그는 지난 8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며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고교생 유승민'과 '정치인 유승민'의 차이경북고 동기인 박찬정 청주대 교수는 그가 사퇴하기 사흘 전인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유승민평'을 남겼다.
"고교시절 이 친구는 모든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래도 성적순으로 끼리끼리 교제하는 경향이 조금씩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친구만은 유독 성적에 관계없이 모든 친구들과 특히 퇴학 당하는 친구들과도 아주 가깝게 지내는 독특함이 있었습니다. (중략) 이러한 그의 특별함이 본인은 귀족이면서도 서민의 삶을 이해할 줄 아는 정치인으로 부각되는 이유라고 봅니다."박 교수의 평처럼 '고교생 유승민'은 "모든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인 유승민'은 '고교생 유승민'처럼 지도력(리더십)이 있거나 사교적(스킨십)이지는 않았다. "정치적으로 유연성이 부족한 원칙주의자"라거나 심지어 "소신은 강하지만 사람들을 잘 만나는 않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도 "원내대표가 된 뒤에 밥 한 번 먹은 적이 없다"거나 "인간적인 매력이 전혀 없다"라는 불만의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대중 정치인으로서 심각한 결핍이다.
A의원은 "처음에는 유승민을 좋아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 차이가 느껴졌다"라며 "한번 이견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가 받아들이지 못해서 '아 이 사람도 자기 것만 옳다고 하는구나'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A의원은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 유승민의 얘기가 일리있지만 원내대표로서 쉽게 생각했다"라며 "청와대에 크로스체크를 안 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승민이 의외로 두루두루 만나 의견 수렴하는 것을 잘 못한다"라며 "원내대표는 자기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관점이 다른 설명을 듣기 위해서라도 여러 의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라고 평가했다.
그가 여당내 지지세력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내 의원들의 마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당내 범비박 의원들이 100명에 육박하는데도 그가 당내 친박과 지도부로부터 사퇴 압박에 시달렸을 때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초·재선 의원 19명과 '원조 친이'의 이재오·정두언 의원 정도만이 그의 사퇴에 공개적으로 반대했을 뿐이다.
친박과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고 파상공세를 펼쳤지만, 그가 물러나야 할 이유가 없었고, 그의 사퇴에 반대하는 국민여론도 훨씬 많았다. 이렇게 버틸 수 있는 명분은 상당히 축적돼 있었다. 그런데도 사퇴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는 '13일이나' 버틴 것이 아니라 '13일밖'에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