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까지 봉사 활동과 여행으로 보냈던 아프리카에서의 3년은 황홀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화와 개인화되어 가는 우리에 대한 성찰이었고, 아직도 더불어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환희였습니다.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들. 그 속으로 돌을 던집니다. 그곳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 기자 말
다음날 아침 일찍 경찰서로 갔다. 그리고 왜 그놈이 유치장에 없는지 따져 묻자, '휙' 종이 한 장을 던져준다(
관련 기사 : 그놈을 유치장에 보냈더니, 금세 집에 돌아갔다고?).
진술서를 작성하는 내게 경찰 파비안이 묻는다.
"오픈 더 케이스 (open the case) 할 거야?""그게 뭔데?""으응, 그게 뭐냐면... 나도 몰라. 영어로 설명 못하겠는걸. 히히.""그럼 좋은 거야? 나쁜 거야?""글쎄... 맞아! 너한테 좋은 거야." 간밤, 한바탕의 소란으로 잠을 설쳤다.
돼지 멱 따는 소리. '쉭, 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안마당에 불이 켜지고 여러 명의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와 함성이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깨갱 깽 깽' 개 잡는 소리가 야밤을 흔들어 놓았다.
탄자니아의 서민들은 개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개들의 생존은 온전히 그들 몫이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쓰레기 더미를 뒤져 남은 음식을 먹고, 집 주위를 돌아다니는 쥐나 도마뱀, 바퀴벌레를 잡아 배를 채우는 굶주리는 생명체인 것이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개 세 마리 중(여기에선 개의 소유가 분명치 않다. 끼니 때마다 밥을 주지 않으니 '키운다'라는 주인 의식이 생길 리 없다. 그저 종일 먹을 걸 찾으러 돌아다니다 태어난 집으로 돌아오는 식이다) 한 마리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그만 뒤꼍 우리에서 잠자던 어린 돼지 코를 물어뜯다 걸린 것이다. 졸지에 코가 베인 돼지는 죽어라 울고, 그 소리에 잠이 깬 안집 식구들은 도둑을 찾으러 돌아다니다 범인인 개를 붙잡아 뒤지게 팼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실컷 두드려 맞았던 범인은 질퍽한 오물 천지 위로, 수천 마리 하루살이가 날아 오르는 돼지 우리 옆에 묶여 벌을 받는 중이었다.
사건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3월의 마지막 목요일이었다.
다행히 오후 수업이어서, 아침 9시경 지부티와 함께 경찰서에 도착했다. 접수증(사건번호)을 주니 법원으로 가라고 한다. 조사라고 하더니 재판을 말하는 모양이다.
전날 파비안이 물어본 오픈 더 케이스란 것이 경찰서에서 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가는 절차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원하지 않았음에도 사건은 이미 내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앞으로 이 일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혹 떼려다 혹만 더 붙이는 꼴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 올라온다. 그러나 또한 캄캄한 미지의 세상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은 모험심이 공존한다.
버스 터미널을 지나 이민국 옆이 법원이었다. 원주 기둥에 슬레이트 지붕만 올린, 코미디하면 제격일 사방이 터진 야외 공연장 같은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무거운 분위기가 자욱한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정문 경비원들의 호루라기 소리에 사람들이 길을 터준다. 그리고 삐그덕거리는 8톤 트럭에서 내린 수십 명의 피의자들이 줄을 지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 그놈이 있다.
내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거의 모든 사람이 휘둥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특히 재판정 옆 쪽방에선 창살이 쳐진 창문 밖으로 저마다 손을 흔들며 아우성이다. 소리 지르고 고함 치고 노래 부르고, 난리가 났다.
"저거 므중구 아냐? 므중구! 얼씨구나 므중구가 왔네!""어이, 므중구(외국인)! 카리부 싸나 (겁나게 환영한다)."
쪽팔려 죽겠다. 조그만 소도시인 모시 시내를 거닐어도 뒤통수가 후끈거리록 쳐다보는데, 하물며 무슨 연유로 법원에 나타났으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생전 경찰서 문턱 한 번 걸치지 않았던 조선놈이 이역만리 타향에서 재판까지 받게 될 줄이야.
온갖 난리 부르스로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재판장에 있던 판사가 경찰을 부른다. 그 경찰은 쪽방 창문으로 다가가 사정없이 곤봉을 휘두른 다음, 나보러 저기 안 보이는 곳으로 가 있으라고 눈짓을 한다.
재판장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로 가 앉았다. 조금씩 주위가 눈에 들어온다.
저어기 창살 안으로 그놈이 보인다. 그 앞에 서성거리는 그놈 동료들도 보인다. 그래도 제법 의리는 있나 보다. 그런데 눈이 마주쳐도 아는 체를 안 하고 외면해 버린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인사를 정말 밥 먹듯이 지겹게 하는데(인사를 안 하면 '아비없는 자식' 소리를 듣는다), 이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좀 의외다. 호미로 막을 일을 왜 가래로 막게 되었는지 알려나 모르겠다.
한 시간이 흐르도록 그놈과 동료들, 그리고 내 시선은 서로에게 고정돼 있다.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낙서를 하고, 애써 지저귀는 새를 바라보는 척했을 뿐이다. 아마도 누군가 일어서서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것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지 않았느냐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으며, 우리 모두 다 여기 올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이다.
먼저 그놈이 신호를 보낸다.
지부티가 갔다 와서 전하길 어젯밤부터 집안엔 먹을 것도 하나 없고, 아기는 배가 고파 운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내로 모든 것을 다 해줄 테니 용서해달라고 한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미풍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내가 용서한다고 해서 바뀔 것 없는 상황 아닌가. 그만하고 돌아가자고 해서 예정된 재판이 취소될 일도 아니다.
일단은 더 가 보고 싶다. 한번 터진 물길이 나를 대체 어디로 싣고 가는지 보고 싶다. 시간이 지나 후회가 되더라도.
재판은 일주일 후로 연기되었다. 역시나 목사님 말씀이 맞다. 결론 없이 계속 출석 통지서만 나온다 하더니만.
법원을 나서니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가벼워진다. 돈이나 가구는 미련없이 포기한다. 그러나 이 끝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