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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버스 용역 계약시 자동차등록증 원본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해 차량연식을 변조해 수학여행단 수송에 이용해 온 버스업체 대표 등 46명이 22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이 정상적인 자동차등록증 원본에서 신차의 차량 출고일자를 오래된 차량에 오려 붙이는 방법을 재연하고 있다.
 수학여행 버스 용역 계약시 자동차등록증 원본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해 차량연식을 변조해 수학여행단 수송에 이용해 온 버스업체 대표 등 46명이 22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이 정상적인 자동차등록증 원본에서 신차의 차량 출고일자를 오래된 차량에 오려 붙이는 방법을 재연하고 있다.
ⓒ 부산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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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1998년생 버스야. 호랑이띠지. 요즘 사람들은 10대들 보고 무섭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못 비할 거 같아. 사실 나는 벌써 폐차가 됐어야 할 차거든. 나 같은 전세버스는 최대 11년까지 운행 후 폐차가 돼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어. 왜냐면 서류상으로 내 나이는 아직 출고 5년이 안 된 혈기왕성한 '신차'였거든.

그렇게 나는 나이를 속인 채 또래의 학생들을 한가득 태우고 제주도를 누볐어. 내 자동차 등록증을 바꾼 건 내 주인님이야. 버스회사를 운영하는 주인님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내 호적을 바꿔치기했지. 정상적인 어린 버스(5년 미만)의 자동차 등록증에서 연식을 가위로 오려 내 자동차 등록증에 풀로 붙이면 끝. 컴퓨터로 치면 Ctrl+C(복사하기) 후 Ctrl+V(붙여넣기) 같은 거였지.

종이접기를 잘하는 김영만 아저씨의 말대로라면 '코딱지들도 잘할 수 있는' 정도의 아주 초보적인 방법이었어. 그런데 여기 속아 넘어간 게 어딘지 알아? 대한민국 조달청의 전자입찰 시스템인 나라장터였어. 왜냐면 조달청 나라장터는 자동차등록증 원본은 확인하지 않거든. 그렇게 무서운 10대 학생을 태운 더 무서운 '10대 버스'는 전국을 누볐지. 

그렇다고 우리 주인님만 욕을 먹을 필요는 없을 거 같아. 많은 버스의 주인님들이 이 방법을 애용해왔거든. 22일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자동차관리법 위반과 공문서 위·변조 혐의로 딱 걸린 버스회사 주인님과 직원분들만 46명이 넘는다고 하더군. 업체로 치면 25개 업체야.

5년 이하 차량 조건 맞추려 안전 내팽개쳐

그럼 이쯤에서 궁금해질 거야. 왜 버스업체 주인님들이 버스들의 나이를 속였을지 말이지. 수학여행을 가려는 학교는 아까 말한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와 있는 업체들을 선정해 계약을 맺어.

근데 나라장터에 입찰을 공고하려면 차량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5년이었던 거지. 물론 5년을 초과할 경우 6개월 이내 점검한 종합검사 점검표를 제출하면 됐지만 '복사하기' '붙여넣기'는 훨씬 더 쉬운 방법이었거든.  

이런 식으로 변조한 공문서를 통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오래된 버스를 300번이나 이용했어. 사람들 중에선 '사고만 안 나면 됐지 뭐가 그리 큰일이냐'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거 같아. 그런 사람들은 2008년과 2012년 제주도와 강원도에서 나처럼 오래된 버스를 타고 가던 학생들이 사고를 당해 각각 4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해. 

그때마다 교육 당국은 예방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번 사례를 봐도 그런 대책이 형식적이었다는 건 또다시 드러나게 됐지. 아마 이제 곧 또 여러 대책이 쏟아져 나올 거야. 우선 경찰은 "강력한 단속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법 위반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수사 할 것"이라고 밝혔지.

정말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하긴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었는데….


태그:#수학여행,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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