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폭염이 쏟아지는 거리
햇빛 가리개를 단 오토바이는 유유자적 -이상옥의 디카시 <정주 풍경 2>지난주 수요일 중국 정주에 와서 오늘 귀국한다. 5일 동안 정주에서 쉬면서 산책도 하고 글도 쓰고 한국 유학생들과도 만났다. 인천공항에서 정주까지는 비행기를 타면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현실 속에 실현되고 있음을 체감한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내 고향 경남 고성군 장산 같은 시골에 태어나면 고성읍내에도 한번 나가기가 힘들었다. 시골집에서 고성읍까지 15km 정도, 자동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시골 완행버스라야 하루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던 시절에는 고성 읍내를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초등학교 때 등잔불 켜고 공부했던 기억
정말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분들 중에는 태어난 곳 주변부만이 지구의 전부인 줄 알고 바깥출입도 없이 그곳에서만 평생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57년생이니 전쟁의 폐허 위에서 막 복구가 시작되던 때, 그야말로 농경사회로 전기도 없고, 전화도 없이,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등잔불 켜고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시절만 해도 정말 고성읍내 한번 나가본다는 것도 큰 계획이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를 거쳐 고도의 정보화 사회로 진입한 지도 꽤 시간이 흘러, 스마트폰 하나 손에 들면 세계 어디든 별 불편 없이 내 집 드나들듯 다닐 수 있는 글로벌 시대가 됐다. 국가 간의 장벽도 경계도 흐릿하다. 그냥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다.
정주경공업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온 학생들과도 만나 저녁도 같이하며 많은 얘기도 나누었는데, 한결같이 외국에 와서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정주에 대한 인상도 하나같이 다들 좋게 가지고 있었다. 정주가 나날이 눈부실 정도로 발전하는 것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다들 친절하고 정겨워서 그냥 눌러 머물고 싶을 정도라고.
스마트폰 하나면 세계 어느 곳이든 불편 없어한 세대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 같은 객지에서 유학을 하면 늘 고향이 그립고, 낯선 환경에 적응이 안 돼서 애를 먹었지 않았는가. 그런데 외국에 와서도 불편을 느끼지 않고 금방 적응이 된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가. 그만큼 우리 시대가 시공을 초월하여 SNS 등으로 대면하듯 언제나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의미다.
나 역시 한 5일 정도 정주에 머물면서, 내가 외국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많을 만큼 편안하고, 익숙했다.
이제는 한국에 태어났다고 해서 한국에만 사는 시대는 지나갔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 지금 이 시대를 두고 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