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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8일, 아들이 다니던 안산 단원고에서부터 십자가를 지고 도보순례를 시작해, 27일 팽목항에 들른 김학일(김웅기군 아버지)씨와 이호진(이승현군 아버지)씨가 다시 발길을 돌려 8월 4일 광주에 들렀다. 이호진씨가 이날 광주 남구 인성고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두 아버지는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모 승천대축일 미사'에 참석하며 도보순례 일정을 마무리했다.
▲ 십자가 잠시 내려놓고... 2014년 7월 8일, 아들이 다니던 안산 단원고에서부터 십자가를 지고 도보순례를 시작해, 27일 팽목항에 들른 김학일(김웅기군 아버지)씨와 이호진(이승현군 아버지)씨가 다시 발길을 돌려 8월 4일 광주에 들렀다. 이호진씨가 이날 광주 남구 인성고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두 아버지는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모 승천대축일 미사'에 참석하며 도보순례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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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생전에 가장 참혹하고 악질적인 형벌은 바로 부모 손으로 자식의 장례를 치르는 일일 것이다. 나는 그 형벌을 달게 받기로 했다." - <내가 사랑한 그 분, 인연>(아래 <인연>, 이파르), 53쪽.

'승현 아버지' 이호진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8월 4일, 이씨가 맨 앞에 선 세월호 도보순례단이 광주를 지날 때였다. 약 900km 도보순례 일정(안산 단원고~진도 팽목항~대전 월드컵경기장)을 이어가던 이씨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아직 형벌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듯, 이씨의 어깨엔 노란 리본으로 덮인 십자가가 매달려 있었다.

하루하루 형벌 속에서 살던 이씨는 "아들 승현군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나"와 같은 기자의 못난 질문에도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여과없이 들려줬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도보순례에 가장 힘이 되는 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씨는 아주 구체적인 답을 내놨다.

"(목포) 옥암동 성당에서 오전 도보순례를 끝내고 쉬고 있는데 손석희 교수님(<JTBC> 보도담당 사장, 교수님은 이씨가 손 사장을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이 팥빙수를 들고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 최고의 날이었다. 또 경기도에 살면서 몇 시간씩 기차와 버스를 타고 찾아오는 국어 선생님이 있는데 그 분에게도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참사 후 만난 인연, <인연> 통해 소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호진(고 이승현군 아버지)씨가 쓴 <내가 사랑한 그 분, 인연>(이파르).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호진(고 이승현군 아버지)씨가 쓴 <내가 사랑한 그 분, 인연>(이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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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1일, 회사에 기자 이름 앞으로 책 한 권이 배달됐다. 문화부 혹은 도서 담당이 아닌 기자에겐 매우 생소한 일이다. 투명 비닐을 뜯어 책을 꺼내자 '인연'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아래엔 '이호진 지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보순례 이후, '진도 팽목항~서울 광화문 삼보일배' 중에도 몇 차례 만났던 이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문자를 보냈다. "네~에 여름건강 조심하고요^^"라는 내용의 답장이 왔다. 곧장 책을 펼쳤다.

4일 출간된 <인연>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 승현군을 잃은 이씨가 참사 이후, 특히 900km 도보순례를 하며 만난 '인연'들과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이씨는 그 인연들을 떠올리며 손수 적은 글을 모아 이 책을 완성했다.

책에는 지난해 도보순례 당시 인터뷰에서 거론한 손석희 사장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국어 선생님은 물론, 여러 신부·수녀 등 천주교 관계자, 공지영 작가, 고된 길을 함께한 수많은 시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씨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책을 통해 진솔하게 털어놨다.

이렇듯 내 새끼 승현이는 쉬지 않고 많은 천사님들을 내게 보내주었다. 지금은 별이 되었지만 나에게,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펼쳐지는 모든 일들은 하나같이 승현이의 선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 <인연> 75쪽.

달리 생각하면 그분들은 하지 않아도 될 고생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새끼를 살리지 못한 엄청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죗값을 받아도 백 번, 천 번 받아 마땅하지만 함께하신 분들은 입장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 <인연> 225쪽.

"오늘, 천사가 준 옥수수를 먹었어"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이 지난해 7~8월 세월호 도보순례를 한 이호진(단원고 고 이승현군 아버지)씨를 만나기 위해 목포 옥암동 성당을 찾았다.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이 지난해 7~8월 세월호 도보순례를 한 이호진(단원고 고 이승현군 아버지)씨를 만나기 위해 목포 옥암동 성당을 찾았다.
ⓒ 이호진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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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지난해 도보순례 당시의 인터뷰처럼, 책에도 인연과 함께 한 기억을 아주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뿐만 아니라 이씨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글귀 하나, 하나에 절절히 담았다. 그 마음은 책의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손석희 사장부터 자신보다 어린 20대 청년에까지 똑같이 적용됐다.

차의 앞문이 열리면서 (중략) 교수님(손석희 사장)이 내리시는 것이 아닌가! (중략) 교수님이 순례길 최악의 상태에서 포기하려고 손대철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일어났을 때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중략) 교수님이 들고 오신 팥빙수. 그런 맛의 팥빙수는 나는 아마 다시는 맛보지 못하리라. (중략)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오후 순례길에 나섰는데 엄청난 스피드를 낼 수 있었고 발바닥 부상으로 걷지 못한 거리를 만회하고도 목표 거리보다 3km를 더 걸을 수 있었다." - <인연>, 140~146쪽.

(20대) 김형용님은 내가 삼촌이라 부른다. (중략) 걷기 위해서는 우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어야 하지만 7월의 뜨거운 열기는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주유소 한쪽에 힘없이 앉아서 신세타령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삼촌이 다가와 "아부지 어느 것을 드실래요?" 하면서 두 개의 옥수수를 내게 내밀었다. (중략) "아빠, 그렇게 맛있었어? 옥수수가?" "아름아(이씨의 딸이자 이승현군 누나-글쓴이), 너는 천사님이 준 옥수수를 못 먹어봤지? 아빠는 오늘 먹어봤지." - <인연>, 224~226쪽.

이씨는 도보순례 마지막 일정인 '성모 승천대축일 미사'와 이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직접 세례받은 일화도 상세하게 묘사했다. 이씨의 다급한 외침에 발걸음을 돌린 교황이 "직접 세례를 해주실 수 있는지요"라는 부탁을 받아들이는 장면, 오전 7시 시작되는 세례성사에 늦지 않기 위해 오전 2시에 집을 나서는 이씨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아들, 혹시 네가 올까 가끔 아침 식탁을 차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호진(고 이승현군 아버지)씨가 쓴 <내가 사랑한 그 분, 인연>(이파르) 중. 책에는 이승현군이 생전에 누나 이아름씨와 찍은 사진 등이 담겨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호진(고 이승현군 아버지)씨가 쓴 <내가 사랑한 그 분, 인연>(이파르) 중. 책에는 이승현군이 생전에 누나 이아름씨와 찍은 사진 등이 담겨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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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이씨와 끈끈한 인연을 맺은 아들 승현군의 이야기도 책 곳곳에 등장한다. 이씨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에서 느낀 분노와 아픔을 격정적인 어조로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러면서도 이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만난 고마운 인연들을 여러 차례 "승현이의 선물"이라고 표현하며 "승현이가 주님의 품 안에서 마음 편히 쉴 것을 믿는다"라고 말한다.

특히 책 중간중간에 삽입된 '인연의 뿌리1~9'에는 이씨가 아들과 맺은 17년 인연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산부인과에서의 첫 만남, 성장, 고등학교 입학, 그리고 이별까지…. 그러면서 이씨는 "17년 동안 키우면서 이때(2014년 봄)처럼 미칠 정도로 승현이가 예뻤던 적은 없었다"며 "닥쳐올 불행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나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승현이의 말에) 여느 때처럼 ("승현이는 좋겠네"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승현이에게 마지막으로, 이날 아침 건네준 용돈은 5만 원이었다. 4월 30일 새벽 4시 40분에 승현이는 쓰고 남은 돈 4만5000원을 가지고 정확히 보름 만에 돌아왔다. 수학여행지 제주에서 쓰려고 아껴뒀던 모양이다. 4만5000원을 쓰고 5000원을 남겼다면 내 마음이 조금 나았을까. - <인연>, 149쪽.

이씨는 마지막 장 '추억'에서 다섯 가지 물건을 소재로 아들을 떠올리며 책을 마무리한다. 동전, 초롱이(개), 야전 점퍼, 축구화, 식탁을 통해 아들을 추억하며, 이씨는 "미치도록 보고싶고 생각나는 내 새끼 승현이, 아직도 줄 것이 산처럼 쌓였는데"라고 말한다. 이어 "흐르는 눈물은 소리가 되어서 더욱 굵은 눈물로 변했다"고 고백한다. 아직 이씨는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승현이가 일어나서 씻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승현이 아침밥을 식탁에 올려놓는다. (중략) 승현이는 비교적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곤 했다. (중략) 승현이가 없는 지금, 오전 7시 40분이 되면 공연히 승현이가 아침을 먹던 식탁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데 아직까지는 승현이의 잔상이 남아 있는 식탁에서 승현이를 보는 것 같아 사무치는 그리움이 한없이 밀려오기도 한다. (중략) 천사가 된 승현이가 혹시 자기가 앉았던 자리가 생각나서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주인 없는 단촐한 아침 식탁을 차려보기도 했다. - <인연>, 281쪽.

팽목항을 출발한지 109일째가 되는 지난 6월 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에 전당을 출발한 단원고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시민들이 용산구청을 향해 삼보일배 행진을 하고 있다. 삼보일배단은 13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도착해 111일 만에 일정을 마무리됐다.
 팽목항을 출발한지 109일째가 되는 지난 6월 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에 전당을 출발한 단원고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시민들이 용산구청을 향해 삼보일배 행진을 하고 있다. 삼보일배단은 13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도착해 111일 만에 일정을 마무리됐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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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유가족, #이호진, #이승현,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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