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어나자마자 목과 배가 아프다던 아이는 학교를 결석했다. 일요일 밤늦게까지 너무 열심히 논 것이 원인인 게지. 이렇게 월요일부터 시작된 결석은 딱 일주일을 채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전 11시가 될 무렵부터는 보통 때와 다름없이 씩씩하고 건강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침만 되면 아프다는 아이를 나가 놀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아이는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일주일 가까이 한 셈이다. 아프다고는 하지만 천성적으로 에너지 넘치는 딸아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이만 그런가? 외동이다 보니 아프다고 누워 있는 잠깐을 제외하고는 엄마가 자연스레 친구가 되어 공기놀이다 각종 보드게임이다 해주고 있으니... 나는 또 웬 중노동인가? 그리고 밀린 집안일은 또 어쩌란 말인가.

신랑은 이런 사정을 알았나 보다.

"이번 주 일요일에 가까운 곳에라도 놀러 갈까?"
"불안한데… 괜찮을까?"
"예나도 거의 다 낳은 것 같던데 뭐. 답답하잖아."

신랑의 제안에 혹한 것은 아마 나 역시 답답하고 아이와 함께 뒹구는 것이 힘들어서였던 것 같다. 일단 가기로 결정하고 나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그늘막'이다. 그것만 있으면 벌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피해 편히 누울 수도 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우리는 밤 9시에 대형마트로 향했다. 이것저것 구경할 새도 없이 달랑 그늘막만 사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의 외출을 기대하며 잠을 청했다. 잠결에 빗소리가 들린다.

'내일 비 오면 안 가면 되지… 그건 가지 말라는 하늘에 계시…'

이런 조각 생각들을 하며 잠이 들고 깨고를 반복했다.

"여기는 그늘막 안 됩니다"...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그늘막 대형마트로 향해 허겁지겁 준비한 그늘막
그늘막대형마트로 향해 허겁지겁 준비한 그늘막 ⓒ 이영란

드디어 찾아온 아침, 비가 왔다는 흔적만 있다. 아침잠 많은 신랑이 점심때쯤 출발하자기에 딸아이와 함께 그동안 유부초밥도 준비하고, 계란도 삶고, 냉장고 속 먹을 것을 이것저것 챙겨 넣었다.

12시가 조금 지나 부스스 일어난 신랑은 캠핑 의자와 자전거 그리고 비장의 그늘막을 차에 실었다. 모두 트렁크에 싣고 보니 캠핑에 준하는 짐들이 차를 가득 메웠다. 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미사리 조정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늘막에 누워있는 여유 있는 한때를 상상하니 벌써부터 즐겁다. 도착해 보니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어디라도 다 좋아 보인다. 신랑은 좀 안쪽에 나무가 앞을 가리는 곳에 그늘막을 치자고 했지만, 두 여자는 앞이 탁 트이고 평평한 자리를 골랐다.

트렁크의 짐을 하나 둘 내리고 그늘막을 펼쳤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 안쪽에 캠핑용 매트까지 깔고 나니 '힐링' 할 일만 남았다. 그런데 멀리서 제복 입은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향해 달려 온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 일단 이런 곳에서 제복 입은 사람이 다가온다는 것이 어쩐지 불안하다.

"죄송합니다. 이곳에 그늘막이나 텐트 치면 안 돼요."
"전에는 이곳에 그늘막 다들 치던데요…"
"그날은 어린이날 기념해서 특별히 치도록 한 거예요. 죄송합니다."
"예나야 어쩌냐? 안 된다고 하시네…"

아저씨는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왔던 길로 다시 자전거를 타고 꼬불꼬불 가신다. 어쩌겠냐 규정이 그렇다는데... 아이도 별다른 저항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늘막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정약용 생가 쪽으로 가자는 제안을 한다.

"이왕 온 거 주차비도 냈는데 여기서 돗자리 펴고 놀면 안 될까? 거기 가도 그늘막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신랑은 잠시 아이와 나의 얼굴을 보더니 "그래. 가보지 뭐! 거기도 안 된다고 하면 접으면 되지~" 한다. 이럴 때면 신랑의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은 성격이 고맙다. 이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오로지 그늘막 한 번 사용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정약용 생가로 향했다.

정약용 생가는 미사리와 달리 인근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처럼 빽빽하다. 주차할 자리도 찾기 힘들다. 트렁크에 하나 가득 실린 짐을 뚜벅이로 옮길 생각을 하니 머리가 띵~ 하다. 이 많은 짐을 들고 갈 신랑 얼굴을 보니 멀리 주차하자는 말도 할 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인 주차장을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가니 주차할 자리가 딱 하나 보인다. 어찌어찌 주차를 하고 캠핑용 의자 3개와 그늘막은 신랑이, 자전거와 아이스박스는 아이가, 캠핑용 매트와 돗자리는 내가 들고 나름 좋은 자리를 잡았다.

사실 짐이 너무 많아 더 이동할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우리는 비장의 무기인 그늘막부터 펼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 그늘막을 접고 그 위에서 자고 있는 아저씨와 아줌마가 눈에 들어온다.

"여보 저기 좀 봐. 저 사람들 그늘막 접었어…여기도 안 되는 것 아닐까?"

나의 불안한 말에 신랑은 이렇게 말했다.

"안 되면 접지 뭐. 그지 예나야~"

그늘막이 뭐라고... 딸아이가 울었다

정약용생가 흐드러진 연꽃이 뜨거운 여름의 더위를 잠깐 잊게 해준다.
정약용생가흐드러진 연꽃이 뜨거운 여름의 더위를 잠깐 잊게 해준다. ⓒ 이영란

설마 하는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그늘막을 쳤다. 그런데 하필이면 좋다고 자리 잡은 곳이 큰 나무 아래 개미집 위다. 우리는 개미집과 이미 자리 잡은 사람들을 피해 몇 차례를 더 옮겨 다녀야 했다.

마침내 그늘막 안에 매트를 펼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관리인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에효, 여기 그늘막 금지예요."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두 볼이 부풀어 오르고 눈이 작아진다. 아주머니가 멀어지자 아이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왜 안 되는지? 왜 꼭 그늘막 다 치고 나서 안 된다고 말하는지 등등 오만 가지 불만을 솟아낸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얼마나 속상하면 저럴까 싶어 "그래 이왕 힘들게 펼쳤으니까 조금만 있다 걷자. 응?"하고 달래보았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관리자와 좀 전에 왔던 아주머니가 다시 왔다. 두 분은 그 지역이 상수원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그늘막이 안 된다는 것과 빨리 접지 않으면 다른 곳보다 비싼 벌금을 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상황이 이쯤인데도 아이는 물러설 기색이 없다. 신랑에 비해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은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짐 싸자!!"

이 한 마디에 아이는 두 손을 휘저으며 "아니에요! 아니에요!" 한다. 그리고는 이내 커다란 눈물을 뚝뚝 떨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예나야! 너 오늘 너무 한 것 아냐!! 아빠가 지금 몇 번이나 그늘막을 펼치고 접었는지 알아!! 아무리 속상하더라도 이건 아니잖아! 이건 엄마 아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거 알잖아!"

엄마의 다다다 하는 잔소리에 아이는 불타던 감정이 사그라드는지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다. 이럴 때는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 더 힘들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아 버렸다. 그래도 상황은 다 보인다. 신랑과 아이가 그늘막을 걷고 대신 돗자리를 작은 나무 그늘 아래로 옮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있다 "엄마 죄송해요. 너무 속상해서 그랬어요"라며 들고 온 유부초밥을 입에 넣어 준다. 하지만 뒤끝 작열인 나는 딱딱하게 "알았어"라는 짧은 대답만 할 뿐이다. 이럴 때는 신랑처럼 포옹 한 번 해주고 등 한 번 두드려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상황이 정리되고 신랑은 피곤한지 돗자리에 누워 잠을 잔다. 그리고 두 모녀는 자전거로 공원을 돌았다.

"엄마 저기 저기 그늘막 쳤어."
"어디? 진짜네!"
"우리도 이쪽으로 자리 옮길까?"
"아빠 기절해~ 다음에는 이쪽에 그늘막 쳐 보자."

우리는 그렇게 공원의 그늘막 개수를 셌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그늘막을 접었다 폈다 하며 그날을 보냈다.

일주일 후, 다시 한 번 정약용 생가에 가서 봐두었던 곳에 그늘막을 쳤다. 배드민턴을 치다 피곤해진 신랑이 그늘막에서 잠을 청하고, 두 모녀는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길에서 관리인 아주머니를 마주치자 "안녕하세요"라며 당당하게 큰 미소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곧바로 모퉁이를 돌아 우리 자리에 도착해보니 이게 웬일인가! 그늘막이 없다! 아이와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온 사이 그렇게 그늘막은 또 접혀 있었다.

자전거 자전거를 딸아이와 함께 타고 오니 사라진 텐트... 자전거를 괜히 탔나 싶다.
자전거자전거를 딸아이와 함께 타고 오니 사라진 텐트... 자전거를 괜히 탔나 싶다. ⓒ pixabay


○ 편집ㅣ박순옥 기자



#여름휴가#그늘막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