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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을 맞이한 시골 마을에서 두 아이는 날마다 물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씻는 방에서 대야에 물을 가득 받고는 장난감하고 인형을 씻기기도 합니다. 마당에서 물총으로 놀거나 마을 빨래터에서 물이끼를 걷으면서 온통 물 범벅이 되기도 합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자전거를 몰아 바다에도 가지만, 시골 바닷가는 여름 휴가철을 맞이해서 도시 손님이 넘칩니다. 여느 때에 호젓하면서 조용히 온 바다를 누리던 아이들은 한여름에는 바닷가를 마음껏 누리지 못합니다.

여름 휴가철에는 깊은 숲 속 골짜기까지 도시 손님이 들어오지만, 도시 손님은 잘 모르고 우리만 아는 숲 속 골짜기로 자전거를 몰아서 소풍을 갑니다.

한여름에는 언제나 물놀이. 빨래터를 치우고 신나게 물놀이.
 한여름에는 언제나 물놀이. 빨래터를 치우고 신나게 물놀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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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두 아이를 태우고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면 숨이 턱에 닿습니다. 그렇지만 이 길을 자전거를 몰아서 찾아가기에 조용히 숲 바람을 쐴 수 있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지만, 멧새가 숲에서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기운을 냅니다. 아이들도 뒤에서 "아버지, 힘내라!" 하고 노래해 줍니다.

바야흐로 깊은 숲에 접어들어 자전거를 세워 놓습니다. 우렁찬 소리를 내며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들어섭니다. 깊은 숲 골짜기에는 나무가 우거져서 햇빛이 스미지 않습니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 하더라도 골짜기에서는 시원한 한낮입니다.

골짜기 파헤쳐서 콘크리트로...

골짜기에 마실을 가서 물놀이.
 골짜기에 마실을 가서 물놀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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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는 거센 물살에 몸을 맡긴다.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는 거센 물살에 몸을 맡긴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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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짜기에서 아이들하고 드센 물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노래합니다. 온갖 노래를 부르면서 물속에서 춤을 춥니다. 그런데 두메 시골 골짜기 가운데에도 삽차(기계 삽으로 땅을 파내는 장비)가 다녀간 곳이 있어요. 사람들이 물놀이하도록 만들겠다고 골짜기 바닥을 파헤친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시멘트를 들이부었어요. 군청에서는 도시 관광객을 끌어들이려고 깊은 숲길을 넓히면서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는 공사를 벌이기도 합니다.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철. 한낮에 아이들하고 날마다 두 시간씩 골짜기 산책을 즐기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밀양 큰할매>라는 그림책을 곰곰이 떠올립니다. 경남 밀양에서는 송전탑을 둘러싸고 마을 사람과 한국전력이 여러 해째 승강이를 벌입니다. 시골 할매는 고향 마을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한국전력 공무원은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도시로 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밀양 시골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나고 자란 고향 마을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맨손으로 일구고 가꾸면서 아름답게 지은 논밭을 하루아침에 빼앗길 수 없는 일입니다. 한국전력 공무원 이야기도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 전기를 많이 써야 하니까 핵발전소도 짓고, 송전탑도 세워야 합니다.

논 한복판에 박힌 송전탑이 대단히 많은 한국이다. 송전탑 옆에서 자라는 벼는 맛있을까?
 논 한복판에 박힌 송전탑이 대단히 많은 한국이다. 송전탑 옆에서 자라는 벼는 맛있을까?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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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가꾸는 아버지로서 송전탑과 핵발전소를 바라봅니다. 남새를 가꿀 만한 밭 자락을 얻기까지 한두 해로는 어림이 없습니다. 나락을 심을 만한 논배미를 일구기까지 한두 해로는 턱도 없습니다. 씨앗을 심어서 일굴 만한 땅이 되기까지는 열 해나 스무 해 손길뿐 아니라 백 해나 이백 해에 걸친 땀방울이 스며야 합니다. 밀양 시골 마을 할매와 할배는 고향을 앞으로도 아름답게 지키고 싶은 마음입니다.

송전탑을 헤아려 봅니다. 한 번 설치한 송전탑은 앞으로 백 해나 이백 해가 흘러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테지요. 한 번 핵발전소가 서면 그곳 둘레는 훼손됩니다. 다시 숲과 바다, 흙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 테지요.

전기를 얻으려고 발전소를 짓는 일은 틀리지 않으나, 왜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만 지으려 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전에 지은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를 모두 닫은 뒤, 깨끗하고 아름다운 전기를 얻을 수 있는 발전소로 달라지도록 과학기술을 모아야지 싶습니다. 도시하고 동떨어진 조용한 시골에 발전소와 송전탑을 세우려는 폭력은 이제 멈추고, 도시에서 스스로 전기를 빚어서 쓸 수 있는 '홀로서기(전기 자립)'를 살펴야지 싶습니다.

시골도 도시도 소중한 공간입니다

골짜기 바닥에서 돌을 주우며 놀기
 골짜기 바닥에서 돌을 주우며 놀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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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짝물에 온몸을 담그고, 나무그늘을 올려다본다.
 골짝물에 온몸을 담그고, 나무그늘을 올려다본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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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시골에서 거둔 곡식과 남새, 열매를 먹고 버팁니다. 도시는 시골에서 뽑아낸 자원을 쓰면서 살을 찌웁니다. 도시는 받아들인 먹거리와 자원을 쓴 뒤 어마어마하게 많은 쓰레기를 내놓는데, 이 쓰레기는 으레 도시 바깥 시골에 매립지를 마련해서 파묻습니다.

도시 사람은 시골 사람이 거둔 것을 먹어야 목숨을 이어갑니다. 그런데도 발전소와 송전탑, 매립지와 공장은 으레 시골에 짓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시골에서 거둘 곡식과 남새와 열매는 얼마나 싱싱하거나 튼튼할까요?

아파트 옆에 핵발전소나 송전탑을 건설하지 않습니다. 논밭과 숲과 바다 옆에도 핵발전소나 송전탑을 쉽게 건설해서는 안 됩니다. 학교와 놀이터 옆에 쓰레기매립지를 설치하지 않듯이, 시골 마을과 들판에 쓰레기매립지를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골짜기에서 놀 수 있는 까닭은 골짜기 물이 맑고 싱그럽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 물이끼를 걷으면서 놀 수 있는 까닭은 맑고 시원한 샘물이 늘 흐르기 때문입니다. 골짜기에서 놀다가 버섯을 따기도 합니다.

골짜기 물에 두 손을 담가서 예쁜 돌을 주워서 놀다가 다시 조약돌을 물 속에 던져 놓습니다. 시골 사람이 마을에서 편안하게 일하고 놀 수 있을 때, 도시 사람도 휴가철을 맞이해서 시골로 기쁘게 나들이를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숲바람을 함께 느끼면서 사랑스러운 삶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우리 도서관 한쪽에 느긋하게 엎드려서 책을 보며 논다.
 우리 도서관 한쪽에 느긋하게 엎드려서 책을 보며 논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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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이 고인 도랑에서 놀기
 빗물이 고인 도랑에서 놀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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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나 송전탑이 '안전'하다면, 도시 한복판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짓겠지요. 굳이 '도시하고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에 핵발전소하고 송전탑을 지은 뒤에 보상금을 주려 하지 않겠지요. 이제라도 '안전하고 깨끗한 전기'를 얻는 길을 똑똑한 과학자와 지식인이 함께 찾아 나서면서 시골과 도시 모두 사랑스레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은 아무 걱정을 하지 않고 도서관 낮은 책상에 엎드려서 만화책을 펼치면서 놉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5년 8월호에도 함께 싣습니다. '시골도서관 풀내음'은 시골마을에서 도서관을 꾸리면서 삶을 바라본 이야기입니다.



태그:#시골도서관, #시골노래, #밀양 송전탑, #시골 이야기,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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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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