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 보니 두 명의 기자가 스타가 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그들이 소속된 단체 또한 이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심지어 총리와 대통령까지 쩔쩔 매게 하는 아주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하룻밤 만에 스타로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한 나라의 검찰총장입니다. 8월 첫째 주 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이 사건은 '독일판 스노든'이라고 불릴 만큼 독일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합니다. 독일 시각으로 지난 7월 24일, 기자인 마르쿠스 벡케달(Markus Beckedahl)은 독일연방재판소장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됩니다. '반역혐의에 따른 검찰수사 고지'라는 다소 무서운 제목과 함께 말입니다.
편지에는 지난 2월, 4월에 걸쳐 블로그 형식의 인터넷 사이트인 '넷츠폴리틱'(Netzpolitik.org)에 그들이 올린 기사들이 반역죄에 해당되었다는 것, 따라서 블로그의 대표인 벡케달을 비롯한 그의 동료 안드레 마이스터(Andre Meister)와 그 외의 이들을 검찰에서 수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앞서 넷츠폴리틱은 독일 국내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이 온라인감시 강화를 위해 예산을 확대할 것이란 내용의 내부기밀문서를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해킹까지 당한 독일 법무부 홈페이지7월 30일, 넷츠폴리틱은 아주 친절하게 자신들의 인터넷 블로그에 독일연방재판소장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공개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편지를 받은 며칠 뒤에 독일 대통령으로부터 '독일의 아이디어-좋은 열린 네트워크 플랫폼'라는 이름으로 상을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7월 31일, 독일의 모든 언론매체는 지금까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블로그 언론매체인 '넷츠폴리틱'에 대한 기사로 도배가 됩니다. 그밖에 트위터를 비롯한 각종 소셜네트워크에는 'Netzpolitik.org'과 '반역'이라는 해시태그들이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8월 1일, 베를린에서 열린 대규모시위에는 '넷츠폴리틱', 수사대상으로 거론된 벡케달과 마이스터를 지지하고 사법부의 언론탄압을 반대하는 25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독일 언론매체(Die Zeit)는 시위자들을 '2500명의 반역자들'이라고 일컬으며 언론을 억압하는 것이 얼마만큼 부당한 것인지를 역설합니다.
8월 2일, TV와 라디오 등 대부분 독일 언론매체를 통해 '반역죄'라는 조항 자체에 항의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언론탄압'을 우려하는 야당의 항의가 최고조에 달하자 총리실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지켜줘야 한다'는 의견을 밝힙니다.
8월 3일, 독일 법무부의 홈페이지가 알 수 없는 이에 의해 해킹까지 당하게 됩니다. 같은 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반역혐의에 따른 검찰수사 고지'가 언론에 공개된 4일 만에 반역혐의는 부당하며 언론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한다고 발표합니다.
8월 4일, 독일 검찰총장 하랄드 랑게(Harald Range)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주장하며 반격에 나섰지만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에 대한 독립성은 인정할 수 없다'는 여론이 거세집니다.
8월 5일, 하랄드 랑게 검찰총장은 메르켈 총리가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발언을 한 지 이틀 만에 해임됩니다.
8월 6일, 독일정부는 검찰총장 해임카드를 서둘러 내밀었지만 여론은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독일기자협회와 야당, 그리고 많은 사회 인사들과 여러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함과 동시에 검찰총장뿐만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과 그 위 사람들에게까지 무거운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꽤 장기화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블로그 언론매체 '넷츠폴리틱'은 어떤 곳인가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한 사무실 한켠엔 오래된 에스프레소 머신이 놓여 있고, '카페인 폭탄'으로 불리는 마테차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칫 '힙스터'로 보일 만큼 개성 있는 옷차림입니다. 이들 중에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유분방한 행색을 하고 있습니다.
책장에는 수많은 디지털 미디어 관련 서적이 꽂혀 있고 벽에는 알 수 없는 그림들과 포스터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다른 한켠엔 수많은 낙서들이 되어 있는 칠판이 걸려 있는 이 곳은 바로 '넷츠폴리틱'의 사무실입니다.
벡케달이 대표로 있는 '넷츠폴리틱'은 날마다 방대해지는 정보사회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감시'에 저항하기 위해 2002년에 만들어진 디지털미디어 전문 언론 플랫폼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소개하는 글에서 '넷츠폴리틱'의 플랫폼에 인터넷 사용자들이 스스로 참여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또 디지털 감시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도 잊지 않습니다. 더불어 네트워크 정책으로부터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자신들이 내는 보도는 '중립적'이지 않음을 정확하게 선언합니다.
이번에 검찰의 수사망에 오른 벡케달은 언론인이자 행동주의자이고 다양한 디지텉 미디어 분야에서 활동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와 함께 수사대상으로 거론된 안드레 마이스터(Andre Meister)는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넷츠폴리틱'에서 취미 삼아 블로거로 활동하다 기자로 직업을 바꾼 인물입니다. 그 외에 '넷츠폴리틱'에선 다양한 활동 경력을 가진 젊은이들이 블로거로서, 혹은 기자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넷츠폴리틱'은 지난 2005년 국경 없는 기자회로부터 '생각의 자유를 위한 최고의 웹블로그'로 선정되었고 그 이후로도 매년 지속적으로 상을 받아왔습니다. 2002년 이후 꾸준히 활동하고 여기저기서 상을 받아왔지만, '넷츠폴리틱'은 그들의 전문분야인 디지털매체 영역 외에 다른 분야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독일 검찰의 '반역혐의에 따른 검찰수사'로 인해 불행인지, 행운인지 독일 내에서 가장 유명한 인터넷 매체가 된 것입니다. '넷츠폴리틱'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사진 중 마르쿠스 벡케달이 들고 있는, 정부를 비꼬는 피켓 문구가 눈에 띕니다.
"감시는 좋다, 반역은 더욱 좋다!"최근 한국에서 국정원 해킹 사건이 큰 파문을 일으킨 만큼, 우리에게도 '넷츠폴리틱'과 같은 대안적 디지털 언론 플랫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