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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민국에서 백수(白手)의 삶은 응당 따라야 할 '절대 규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공식적으로 '구직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토익학원, 취업스터디, 대외활동으로 이어지는 이 불문율에 충실하다.

그런데 여기,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이 규칙에서 벗어난 청년이 있다. 그녀의 백수 라이프는 뭔가 오묘했다. 스터디를 하긴 하는데 그것이 스터디인지 술터디(음주하는 스터디)인지 도통 알 수 없었고, 책상은 토익 책 대신 각종 소설 책들과 영화 주간지가 어지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혼자 훌쩍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 그러다 이제는 단편 소설책을 낸단다. 100만 청년 백수들의 구미를 한껏 끌어당길만한 제목이다. <백수재활용>. 이 책의 저자 이해인씨를 만나봤다.

'백수재활용'이라는 제목이 나오기까지 한 달

앞뒤 표지 그녀는 독립출판의 형태로 책을 출간했다.
앞뒤 표지그녀는 독립출판의 형태로 책을 출간했다. ⓒ 이해인

- 책의 기획부터 출간까지 3개월이 걸렸다. 결과물이 나온 소감은 어떤지?
"독립출판이기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했다. 솔직히 중간에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기획은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라 수월했는데, 오히려 제목을 짓는데 한 달 남짓 걸렸다. 그래도 뿌듯하다. 특히 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영감이나 생각할 거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1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느낌이다."

- 모두가 백수 탈출을 위해 트랙 위에서 전력질주 중인데, 혼자 옆길로 새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출발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실 20대 백수들도 직장인들만큼 사느라 바쁘다. 구직이라는 활동에 앞서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볼 필요성이 있는데 그럴 여유조차 없는 거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직접 입으로 꺼내긴 민망하고…. 부담스럽지 않게 책 한 권 건네며 '한번 읽어 봐'라고 말하는 게 더 폼 나기도 하고(웃음). 일방적으로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내게 됐다."

 인터뷰는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밤,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인터뷰는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밤,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 이애리

- 책 제목이 <백수재활용>이다. 이 제목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인체재활용>이라는 책이 있다. 시체를 통해 우리의 인체가 어디에서 어떻게 재활용되는지 풀어낸 과학 도서다. 백수들의 시간은 보통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 활용되는데, 이 시간을 좀 다르게 활용해보자는 의미에서 <백수재활용>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 책의 구성이 독특하다. 각 소설 꼭지마다 사진이 들어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다.
"이 책은 여러 개의 단편 소설들로 이뤄져 있으나, 실린 소설 한 편 한 편이 모두 하나의 책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각 꼭지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뒀다. 사진과 함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특히 에필로그는 소설을 읽고 나서 그 여운이 지속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사진 또한 글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면 된다."

"지금 우리가 봐야 할 곳은 '아래'"

 각각의 소설 꼭지마다 사진과 함께 짤막한 글이 들어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다.
각각의 소설 꼭지마다 사진과 함께 짤막한 글이 들어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다. ⓒ 이해인

- 도발적인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청년 백수'를 키워드로 하는 책들은 에세이를 필두로 시중에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독자들은 그 수많은 책들과 이 책의 차이를 잘 모를 것 같은데.
"거기에는 반박을 하고 싶다. (정색) 청년 백수를 담론으로 하는 기존 책들은 '자기 자신'에만 초점을 맞춘다. 멘티-멘토 혹은 강의, 좋은 글귀들을 통해 내 자신을 탐구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고 이를 내 옆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형식을 차용한 이유도 이와 같다.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나의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 소설 속의 인물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혹은 그 인물에 이입하면서,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럼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정리해볼 수 있다. 이것이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자 매력이라 생각한다."

- 정말 도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진정하고. 자, 다시 돌아와서. 이 '독자공간 – 네 멋대로 해라'의 정체는 무엇인가?
"내 책의 매력포인트다. 기존 책들과 가장 차별화된 점이다. 나 혼자 떠드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내 글을 읽고 욕을 써도 좋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소통하고 서로가 서로를 발견하는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가방에서 꺼내서 언제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 내려갈 수 있는 다이어리 혹은 수첩이라 여겼음 좋겠다."
"이 책을 가방에서 꺼내서 언제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 내려갈 수 있는 다이어리 혹은 수첩이라 여겼음 좋겠다." ⓒ 이애리

- 소설들이 주로 소외된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려지고 있다. 사회 문제들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의도인지?
"우리는 이미 매체를 통해서 '위에 있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 있다. 모두가 오로지 위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갖고 바라봐야 하는 방향은 지금 우리가 있는 곳, 혹은 그 아래라고 생각한다.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도 같다. 사회가 없으면 나도 없다. 일부러 글 안에 이러한 생각들을 녹여 내고자 했다."

- 단편 소설들 가운데 에세이 두 편이 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쓴 이유는?
"의외로 본인 가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사람은 드물다. 주변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책을 기획하게 됐는데, 최측근인 가족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백수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빨리 자리잡지 못해) 죄송하다'는 감정 이외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제 책을 막 다뤄주세요"

 적극적으로 자신의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있는 이해인 작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있는 이해인 작가 ⓒ 이애리

- 9월 6일 홍대 쫄깃센터에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추진한다고 들었다.
"큰 마음 먹고 독자 공간을 책에 넣었지만, 역시나 면대면 소통에 비하지 못한다. 그래서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내 얼굴이 궁금하신 분들도 계실 테고. (웃음) 다같이 앉아서 어떻게 사는지, 특히 이 책을 어떻게 구입하셨는지 궁금하다. 백수는 물론 학생, 직장인 언니, 오빠 누구나 다 환영이다. 따분하고 지루한걸 못 참는 성격이므로 재미만큼은 보장할 수 있다. (웃음) 부담 없이 오셨으면 좋겠다."

- 백수의 타이틀을 다신지 1년이 되었는데, 탈출 계획이 궁금하다.
"(잠시 한숨이 있었다.) 드라마 PD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리고 만약 취업하게 되면, '직장인 재활용'이라는 제목으로 새 책을 낼지도 모르겠다. '유부녀 재활용' '부모 재활용'도 생각 중이다(웃음)."

- 마지막으로 직접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다.
"막 다뤄주세요. 아무것도 없는 흰 표지가 더러워질 정도로. 연습장 필요하신 분들, 제 책 사세요. 사진도 있고, 아주 감각적입니다(웃음). 트렌드세터라면 이런 느낌 있는 낙서장은 필수죠. 독자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재밌게 읽고, 여운은 길게!"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이다'라는 단어가 새삼 유행하고 있다. 사이다의 성질 그대로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개 타인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했을 때의 쾌감을 나타내는 용도로 쓰인다.

언어가 시대를 반영한다는 무거운 명제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만큼 우리가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녀와의 인터뷰는 청량감 가득한 '사이다' 같았다. 그녀는 (마땅히 눈치를 보아야 할) '백수'임에도 전혀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었다.

<백수재활용>이라는 '사이다'가 온갖 사회적 시선들로 인해 생긴 백수들의 마음 속 체증을 가라앉힐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또한 제대로 된 속풀이를 위해 독자들과의 은밀한 만남도 기획하고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이 청년의 초대에 응해보자.


백수재활용

이해인 글.그림.사진, Books&Illusts(2015)


#인터뷰#백수재활용#이해인#독립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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