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바이러스가 사람의 허파에 들어갔다고 치자. 녀석은 허파꽈리(폐포)에 달라붙어서 세포막에 구멍을 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핵산 RNA를 세포 안에 쏙 집어넣는다. RNA는 폐포 속의 핵산 물질과 단백질을 이용해 원래와 똑같은 바이러스를 연거푸 만든 다음에 허파꽈리를 깨뜨리고 나온다. 이때 폐포들이 마구 죽어 나가니 몸에 열이 나고 폐렴 증상을 보인다. 한데 이 다친 세포를 보호하고 또 바이러스를 씻어내 버리기 위해서 점막에서 많은 점액을 분비하니 그것이 콧물이요, 가래다. 사실 우리 몸에서 분비하는 눈물이나 침, 콧물, 가래에는 라이소자임이라는 다른 생물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물질이 섞여 있다. 하여 감기에 걸려 콧물을 흘리고 가래를 뱉는 것은 우리 몸을 보호하는 중요한 생리적 현상이니 절대로 귀찮고 성가시다 여길 일이 아니다.-<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에서.<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 중 '생물이었다가 무생물이었다가 요리조리 변신의 귀재, 감기바이러스' 한 부분이다.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들에겐 그가 쓴 작품이라면 애써 찾아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저자가 있을 것이다. 권오길 교수가 내게는 그런 저자 중 한사람이다. 15년 전, 저자의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란 책을 읽으며 열혈 독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 책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 하나. 기분 좋은 상태에서의 침과, 화가 난 상태에서의 침에 각각 초파리를 넣는 실험을 했다. '스트레스'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라는데, 정말 좋지 않은가?'에 관한 실험이었다.
화가 났을 때의 침에 넣은 초파리들이 기분 좋을 때의 침에 넣은 초파리들보다 훨씬 빨리 죽었다. 화를 낼 때, 즉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 몸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독성이 초파리들을 죽인 것이다.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음으로써 이런 독성들을 만들어내고, 우리 몸에 쌓인다. 그러니 몸이 허덕이다가 병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책 덕분에 나를 죽이는 동시에 누군가를 죽이는 화를 덜 내고자, 스트레스로 이어지지 않게 하고자 노력하게 됐다. 사실 살다 보면 화낼 일도 많고, 스트레스받을 일도 많다.
그러나 끝이 없다. 분명한 것은 화를 덜 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그동안 이해 충분한 것마저 화를 내거나, 지나치게 민감해지곤 하던 나 자신을 봤다는 것이다.
이후 이 이야기를 참 많은 사람에게 들려줬다. 내게 약이 된 것처럼 그들에게도 약이 되기를 오직 바라면서 말이다.
감기는 만병의 뿌리이니 조심해야 하지만, 그래도 한평생 보통 330번은 걸린다고 하니 어쩌리. 에누리 않고 말하지만, 고뿔의 주범인 바이러스를 죽일 수 없으니 마구 약을 써선 안 된다. 필자는 이날 이때껏 감기약을 먹어본 적이 없다. 밑져봐야 본전이니 따라 해 볼 것이다. 오롯이 약에 의존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대개는 푹 좀 쉬다 보면 특별한 치료 없이도 시나브로 가뿐해지니, 일주일이면 항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먹는 감기약엔 해열제, 소염진통제, 항생제가 들어있어 병을 좀 경하게 넘기고 2차 세균 감염을 막자는 것이지 결코 감기 바이러스를 잡지는 못한다. 약 치고 독 아닌 것이 없으니, 말해서 약 주고 병 주기다.고열은 사람만 부대끼게 하고 곤죽 먹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깝신거리고 나부대던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본디 열에 약하기 짝이 없는지라(…)그러나 유아나 어린이의 뇌세포는 특히 열에 아주 약해 다치기 쉬우므로 서둘러, 반드시 열을 잡아줘야 한다.-<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 이야기>에서.저자는 그간 생물 관련 참 많은 책을 썼다. 신문에 관련 분야 연재도 왕성하게 해오고 있다. 저자의 책들이나 글, 가장 큰 장점은 대부분의 사람이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생물계 이야기들을 매우 쉽고 흥미롭게 들려준다는 것이다. 책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걸리나 실은 그리 아는 것이 많지 않은 감기(바이러스) 역시 이해하기 쉽게 알려준다.
메르스나 감기 등 바이러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옛말까지 있을 정도로 옛사람들은 여름 감기를 시원찮은 사람이나 걸리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속담은 이젠 옛말에 불과하다. 에어컨과 같은 냉방기들의 지나친 사용으로 여름 감기가 보편화 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환경오염 등으로 겨울은 물론 사계절 내내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 또한 많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계절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걸리기 때문인지,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 대부분 한마디라도 보태는 것이 예사. "약 먹지 않고 버텨봤자 고생만 할 뿐", "요즘 감기는 약으로도 안 낫는다. 주사 한방이면 끝인데", "어차피 내는 보험료 혜택 받지 않으면 바보" 등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보게 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저자의 말대로라면 아무리 조심해도 한 사람 평생 330번은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일주일이면 몸 스스로 항체를 만들어 낸다고도 한다. 걸렸다하면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으면 몸의 타고난 면역성마저 약해져 정작 다른 병도 어쩔 수 없이 허용하는 일도 있을 것. 혹시 이제까지 그래왔다면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감기에 대해 알려주는 '생물이었다가 무생물이었다가 요리조리 변신의 귀재, 감기바이러스' 편에선 지난 6월, 우리를 긴장에 빠뜨린 메르스와도 관련된 '바이러스'에 대해 쉽고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참고로 감기는 보통 서로 다른 200여 가지 이상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데, 이중 30~50%가 리노 바이러스, 10~15%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고. 지면상 어쩔 수 없이 생략하니, 감기나 메르스의 공통인 바이러스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으면 책을 꼭 읽어보시길.
▲쌀의 해충을 박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하 18도 이하에서 약 3일간 냉동시키거나 60도에서 15분간 두는 것이다. ▲문어발에 붙은 빨판은 달라붙는데 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맛을 보기도 한다. 이 빨판을 흉내 내어 만든 주방기구가 바로 흡착행거다. ▲1818년 마크 브루넬은 배좀벌레조개가 나무에 굴을 파고들면서 톱밥가루를 뒤로 밀어내는 행태를 지켜보았다. 그때만 해도 아직 땅굴 파는 기계가 없었을 때, 이 배좀벌레조개의 굴 뚫기를 흉내 내어 땅굴 기계가 탄생된다. ▲(오소리는) 종종 과수원에 떨어진 발효 중인 과일을 주워 먹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수도 있다니 그럴 때 잡으면 되겠다.-<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 이야기>에서. 15년 전 저자의 그 책을 읽기 전까지 생물은 막연히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였다. 이처럼 우리 몸과, 생활과 직접 관련된 분야인데도 말이다. 책 덕분에 일부 사람들에게나 해당된다고 생각되었던 생물을, 학교에서 시험 보기 며칠 전에야 마지못해 외웠던 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덕분에 그간 생물 관련 참 많은 책들을 읽어왔다. '아마도 청소년기에 저자의 책을 읽었더라면 생물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와 같은 일종의 아쉬움까지 느끼면서 말이다.
<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 이 책 역시 알고 있으면 생활과 주변이 훨씬 즐겁고 흥미로울 이야기들이 많은 책이다. 무엇보다 15년 전 내게 약이 된 스트레스 관련 내용과 같은 약이 되는 글들을 찾아 읽어 삶의 약을 삼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권오길/ 을유문화사/ 2015.07.25./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