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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을 받았다. 저녁 어스름 동네 치킨집 플라스틱 테이블. 거기서 나는 시인에게 시집 한 권을 받았다. 시인은 표지 뒷장 면지를 펼쳐 글을 적었다.

'김동욱 동지께 ; 단순한 삶을 위하여. 2015.8.14. 곽장영 드림.'

곽장영 시인의 친필 사인이 담긴 시집.
 곽장영 시인의 친필 사인이 담긴 시집.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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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곽장영의 삶을 나는 잘 모른다. 한 가지, 짐작컨대, 지금까지 그의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가끔, 아주 가끔 시인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날, 시인은 자전거를 탔다. 산을 오르고, 아마 낚시도 했으리라. 내게 시집을 준 날, 그날도 시인은 자전거를 탔다고 했다.

시인은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수석 부위원장이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고, 낚시를 하면서, 노조활동을 하며, 시를 쓴다. 그러면서 그는 '단순하게 살자'고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삶은 / 단순하다 // 죽음은 / 복잡하다 // 나는 살고 싶다
- '대비(對比)' 전문

곽장영이 시인이게 된 데에는 노동조합이 한몫 했다. 그는 1990년대 초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 시절부터 기관지에 글을 썼고, 그 시들 중 하나가 전태일문학상 우수상을 그에게 덥석 안겼다. 이른바 '노동자 시인'이자 '시 쓰는 노동자' 곽장영의 등단이다. 하긴 그에게 시 쓰는 것도 노동이니, 노동 그 자체가 그에게는 시일지도 모르겠다.

곽장영이 이번에 낸 두 번째 시집 <가끔은 물어본다>는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행복한 사람, 제2부 가끔은 물어본다, 제3부 사랑은, 제4부 내가 세상이다에 87편의 시가 담겨있다. 곽장영은 이 시집에서 자연이나 주변을 자신과 끊임없이 대비시키다가(1부)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면서(2부) 친구나 옛 연인, 혹은 동지를 그리워하며 절망하다가(3부), 그래도 내가 세상이라고 외친다(4부).

시인은 시집에서 자연, 특히 풀이나 나뭇잎, 비나 바람 같은 것을 노래하면서 너저분하고 더러운 자신의 맨몸을 내 보인다.

실핏줄 하나까지 터뜨려 / 온몸 핏빛으로 물들이며 / 세상 향해 외치는 / 일생 최후의 분노 // 짧은 사랑
- '단풍' 중에서

낮게 앉아 / 겨우 바람살 피하고 / 한쪽 세상을 일년 내 바라며 / 세월을 지키고 앉아 / 한철 사랑을 그리는 // 여린 흔들림 / 분홍빛 희망 // 무모한 삶
- '소백산 철쭉' 중에서

시인은 화를 낸다.

매를 맞아도 참고, 월급을 깎아도 참고 / 비정규 개취급도 참고 / 해고를 당해도 참아라 (…중략…) // 노예 세상 계속 되리니 / 이제는 당신들이 / 참고 그만둬야 할 때다 / 그 잘난 주둥이질 그만두고 / 그 잘난 권력질, 욕망질, 사기질, 패악질, 도둑질 / 그만둬야 할 때다 // 노예들이 던지는 뜨거운 불벼락을 / 조용하게 참고 견뎌야 할 때다
-'상처가 삶이다' 중에서

그러다가 시인은 '나는 살아있는지, 왜 살아있는지, 가는 곳이 어딘지, 왜 가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을 우리에게도 요구한다. '물음이 환한 메아리 되어 돌아올 때까지'. 시인은 그러나 우리에게 그 대답을 재촉하진 않는다. '대답은 내일 아니면 수십 년 후에 /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나올지라도' '나는, 우리는, 당신은 물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당부한다('가끔은 물어본다' 중에서).

시집에서 시인은, 이제는 너무 통속적이 돼 버린 아픔을 담담히 노래하기도 한다. 항상 따뜻하고 편안한 엄마의 등이, 거기 업히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돌아앉으면 입 안 가득 젖이 들어오던 엄마의 등이, 어느 날 갑자기 차갑게 식었다. '아빠의 정리해고'가 만들어내는 가족의 해체를 시인은 건조하게 그리고 있다.

시인은 그러나 이 숨 막히는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고 소리친다. '밥을 달라고 하면 / 깡패들의 주먹이 날아오고 / 옷을 달라고 하면 / 물대포가 불을 뿜'지만 비록 '몸은 닳아서 아프고 / 마음은 시들어 헛것만' 보일지라도 우리는 '세상을 달라'고 외쳐야 하고, 그 '세상을 주겠다는 구세주가 필요하다'. 그 구세주는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바로 세상이고 / 내가 바로 구세주다'라고 시인은 말한다('내가 세상이다').

그날, 그 치킨집에서 <가끔은 물어본다>를 건네던 시인은, 아니 곽장영 선배는 나에게 느닷없이 1종 대형면허를 따자고 말했다. "일하다 잘리고 나면, 설사 안 잘리고 잘 버틴다고 해도 아직 몸뚱아리 멀쩡한데 일은 해야지." 그러면서 대형면허 따 놓으면 먹고사는 덴 지장 없을 거란다.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가끔은 물어본다>를 펴 들었다.

바람 먼저 보내 / 나른한 오후를 깨운다 / 힘겨운 나뭇잎 흔들고 / 굳은 땅 작은 구멍을 / 바늘로 들쑤신다 // 구름 따라 보내 / 세상의 빛도 바꾼다 / 산허리 휘감아 덮고 / 엎드린 풀잎들 / 회색으로 물들인다 // 여린 가지 하나 자르지 않고 / 지친 풀잎 하나 흠내지 않고 / 느낄 만큼 견딜 만큼 / 힘차게 쏟아 붓는다 / 노쇠한 흙 한 줌 쓸어내고 / 누운 풀잎 새 잠자리 만든다 // 조용히 와도 줄 것은 주고 / 삼킬 듯이 쏟아도 / 먹어치우지 않으며 / 가진 것 다 내려놓는다 // 그래도 남긴 것은 / 한 줌 작은 구름 / 먼 희망
- '소나기' 전문

이런 감성을 가진 시인이 밥벌이 걱정을 한다. 감성이 아깝다. 그의 말 대로 '서점에서는 한 권도 안 팔릴 책'일지 모르지만 <가끔은 물어본다>는 삼겹살 일인분보다 싸다. <가끔은 물어본다> 곽장영, 레디앙, 값 1만원.

<가끔은 물어본다> 곽장영, 레디앙, 값 1만원.
 <가끔은 물어본다> 곽장영, 레디앙, 값 1만원.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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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집, #가끔은 물어본다, #곽장영, #노동당, #노동당고양파주당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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