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남짓한 나이, 반편생에 걸쳐 책을 읽어 왔어요. 정확히는 '책'을 읽어 왔지요. 굳이 책이라는 단서를 다는 이유는, 갈수록 읽을 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읽는다는 범위 안에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상위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굳이 비중을 들자면 저 아래에 있겠죠. 그런 와중에도 책을 읽어 왔다고 말할 수 있는 제 자신이 조금은 자랑스럽습니다. 역으로 참 암울한 책의 현실이죠.
저는 세상을 바꾸고자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그로 인해 의식이 바뀌어 결국엔 세상이 바뀌는, 그런 흐름을 꿈꾸지요. 거창할 뿐더러 요원하기까지 하다는 걸 잘 알지만, 그 때문이 아니라면 제가 힘들게 책을 읽을 이유가 없어요. 한때 책에는 나아가 콘텐츠에는 '재미'와 '감동'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어떤 이유가 필요해졌습니다. 때론 피곤하더군요.
세계 문학계의 거장이자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는 소설로는 제가 한 번도 접하지 않았습니다. 안 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습니다. 게으름이 50이라면 압도 당한 게 50일 겁니다. 그가 뿜어내는 기에 압도 당해 읽지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그의 단편적인 글을 스치듯 읽으며 '아, 과연 대단한 사람이야' 정도로만 인식했지요. 안타깝지요. 그러나 늦지 않았답니다.
역시 금세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이번에 그의 책 <읽는 인간>(위즈덤하우스)이 번역되어 나왔어요. 책읽기와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은근히 읽는 행위와 사는 행위를 연관시킨 책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요. 이 책은 특별하더군요. 저자가 오에 겐자부로이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이 소책자로도 역시 저를 압도하는 그 무엇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이 책은 저를 압도했어요.
시작은 비교적 가볍게 합니다. 다양한 고전들을 결부시켜 성장한 지난 날을 이야기해요. 읽을 만합니다. 쉽진 않지만 오에의 글이기 때문에 그정도는 감안했죠. 하지만 금세 압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홉 살 때 읽게 된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나오는 한 구절을 평생의 원칙으로 삼았다는 부분이 특히요.
그 부분은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라는 문장인데, 주인공인 헉이 노예인 짐의 주인 노부인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는 곧 찢어 버리더니 다짐하는 장면에서 하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남의 재산을 훔치면 지옥에 간다고 배웠기에 남의 재산인 짐을 노부인에게 돌려보려기 위해 편지를 썼는데 찢어 버린 것이죠.
무시무시한 생각인 동시에 무시무시한 말이었는데, 그 마음을 바꾸려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답니다. 오에는 어린 나이에 그 구절을 보고 자신도 평생 그 말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해요. 저도 그 구절이 마음에 들어요. 책은 이렇듯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 같습니다.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히카리라는 아들이 있는데, 장애를 앓았다고 해요. 말로 하기 힘든 참으로 벅찬 나날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그를 지탱하게 해준 게 다름 아닌 책이었어요. 그는 책을 읽고 살아가고 소설을 썼답니다. 책에서 얻은 무엇과 살면서 얻은 무엇을 온전히 결합시켜 만들어낸 소설들이죠. 오에는 <읽는 인간>을 통해 그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그건 독자를 위함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독서 인생을 돌아보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아들의 장애가 그의 삶을 힘들게 하는 요소의 전부라고 한다면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그에게는 친한 친구의 자살이라는, 웬만한 사람의 인생에서 쉽게 접하지 못할 경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건 굉장히 무서운 경험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죽음이 곧 나에게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쉽지 않겠죠. 오에는 그 또한 책으로 헤쳐나갔다고 합니다. 책을 통해 자신을 다잡고 책과 함께 자신의 지독한 경험을 공유하면 버틴 것이죠. 그리고 여지 없이 그 경험을 소설로 승화시킵니다.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죠. '읽는 다는 건 곧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의 삶이야말로 읽는 것이고 그가 읽는 것이야말로 사는 것이네요.
책 읽기로 살아가는 그가 부럽습니다이 책 덕분에 다시 읽게 된 책이 있어요. 에드워드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인데요. 10여 년 전에 사서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고는, 2년 전에 다시 도전했다가 역시 완독하지 못한 책이에요. 그러다가 이 책에서 오에가 에드워드 사이드를 기리며 그의 최고의 책 중에 하나가 <평행과 역설>이라고 하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책장을 뒤져 그 책을 찾고는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있답니다.
오에는 이 책을 통해 여러 책들을 소개하는데요. 아니, 책을 쓴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대표적으로 단테 알리기에리, T.S 엘리엇, 에드워드 사이드, 윌리엄 블레이크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 자신 등입니다.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큰 줄기이자 뿌리이니만큼 꼭 한번씩 접해보심이 좋을 것 같아요.
이제야 오에를 처음 접한 소회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조금은 슬펐고, 조금은 압도 당하고, 조금은 부럽네요. 자신의 삶을 읽는 것으로 삼고, 그것으로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다시 그 삶은 읽는 것으로 치환되고... 그 순환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고난할 것 같은 삶이지만 지금의 제가 원하고 있는 삶이니까요. 소회는 특별하지 않지만 얻은 건 크네요.
오에 겐자부로가 올해로 만 80세가 되셨네요.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읽는 것으로 살아왔다고 하는 그.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은 것 같습니다. 책에 그만의 독서법이 나오는데, 굉장히 따라하기 어려운 그 독서법을 반드시 따라해볼 생각입니다. 실용적인 면을 잊지 않고 말씀해주신 오에 겐자부로 작가님이네요. 다른 걸 떠나서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충분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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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오엔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14000원, 256쪽, 2015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