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읽는 책 가운데 어떤 것은 '이건 작가 자신의 이야기구나' 싶을 때가 있다. 공감지수가 한 100(최대치)정도 될 때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데, 하세가와 요시후미가 쓰고 그린 <엄마가 만들었어>가 그랬다. 책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초등학교 3학년 하세가와 요시후미가 저자의 이름과 같은 것도 나름의 추측에 확신이 들게 하는 근거다.
요시후미 엄마는 남편 없이 아이 둘을 키우며 재봉틀로 옷 만드는 일을 한다. 어느 날 요시후미가 청바지를 사달라고 조른다. 엄마는 그런 거라면 사지 않아도 된다며 검도복 바지를 만드는 천으로 청바지를 만들어 준다. 친구들은 "청바지 같은데 청바지가 아니네?" 하고 요시후미를 놀린다.
땀이 많이 나는 요시후미. 그런 아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엄마는 체육복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불길한 예감이 드는 요시후미. 역시나... 엄마는 와이셔츠 만들 때 쓰는 반들반들한 천으로 체육복을 만들어 준다. 친구들은 "체육복 같은데 체육복이 아니네" 하고 요시후미를 놀린다.
그런 어느 날, 아빠 참관 수업 안내문을 받아온 요시후미. 엄마는 "엄마가 갈게" 말했지만 요시 후미는 "안 와도 된다"고 거절한다. "엄마가 아빠 대신"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는 엄마에게 요시후미는 저도 모르게 불쑥 이런 말을 뱉는다.
"엄마가 뭐든 만들 수 있다고 했으니까, 아빠를 만들어 줘." 순간, 내 가슴이 멎는 것 같았다. 내가 만약 요시후미의 엄마라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요시후미 엄마는 말한다. 조금 슬픈 얼굴로. "미안하다, 엄마 재봉틀로 아빠를 만들 수 없어." '밥에서 모래 맛이 났다'는 요시후미. 나는 눈에 모래가 들어간 것마냥 서걱거렸다.
재봉틀로 아빠를 만들어달라는 아이, 엄마의 쿨한 대처법
드디어 아빠 참관수업 날. 요시후미는 체육시간이 아닌데도 땀이 났다. 엄마가 아빠 양복을 입고 다른 아빠들과 함께 교실 뒤에 서 있던 것. 엄마가 양복을 가리키며 요시후미에게 속삭인다.
"엄마가 만들었어."이야기의 맺음이 어찌 될지 내내 긴장하며 읽었는데 "엄마가 만들었다"니. 그림책 너머로 "잘 만들었지?"라고 으스대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웃음이 터졌다가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엄마, 왜 그래?" "슬픈데 웃겨서."이런 내가 큰아이는 이상하다는 반응이다.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니, 책 머리에서 요시후미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랑 누나랑 엄마 세 식구만 남았지만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라고 한 게 괜한 소리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시후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병으로 돌아가신 아빠. 그때부터 친척들은 "이름이 안 좋아서 그렇다"며 요시후미란 이름을 요시오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다. 아빠의 죽음으로 이름까지 바뀐 요시후미. 그런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요시후미가 짠하게 느껴졌는데 이토록 '쿨하고' 귀여운 엄마가 곁에 있다니... 묘한 안도감이 든다.
<엄마가 만들었어>는 2년 전 남편을 잃은 우리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책이기도 하다. 쓰러진 지 하루 만에 하늘로 간 남편의 죽음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 오빠 결혼식 날 혼주 자리에 혼자 있기 싫다며 엄마의 사촌 오빠를 아빠 대신 옆자리에 있게 한 것도, 이사하는 날 인부들 들으란 듯 있지도 않은 아빠를 들먹이며 "나중에 니네 아빠한테 고쳐달라고 하면 돼"라고 말한 것도 다 그런 이유였을 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부라고 해서 상대방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니라는 걸 아빠의 장례식 이후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엄마 말대로 아이러니한 일. 이 책을 읽고 엄마가 좀 쿨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건 무리일까.
ps. 요시후미의 반전은 책 뒷표지에. 책 속에서는 엄마가 만들어주는 게 뭐든 탐탁치 않아 보이지만 '이것'만은 예외인가 보다.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우쭐해진 요시후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던 그림. 작가의 센스에 엄지 척.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