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500일. 미수습자 9명이 칠흑 같은 바다 속에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가족들에게 인양과 관련해 설명 한 번 없이, 참관요청도 거부한 채 그들만의 인양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304명의 생명과 그 가족의 삶을 앗아 간 진실을 알지 못한다. 아직도 가족들은 상처 입은 몸뚱이를 부둥켜안고 거리에 나서고 있다.
세월호 참사 500일.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된 지 9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으로 인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진상조사를 시작조차 못 하고 있다. 가족들은 말한다. 지금은 치유도 회복도 보상도 말할 계제가 아니라고. 참된 치유와 보상은 진실이 인양되고, 정의가 온전히 수습돼야 시작된다고. 그래서 오늘도 거리로 나선다고.
그 거리와 시민들이 가족들을 끌어안았다.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416가족협의회)와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세월호문제해결을위한안산시민대책위원회 공동 주최로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문화제'가 28일 오후 8시 안산시 단원구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문화제에 앞서 세월호 가족과 이석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장, 시민 등 100여 명은 오후 6시 세월호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합동분향을 했다. 합동분향은 묵념에 이어 단원고 졸업생 이소연씨와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의 500일 추모사로 진행됐다.
전 위원장은 "열 달을 품고 나와 모두에게 기쁨을 안겨준 우리의 귀중한 가족들을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 모든 국민을 지키는 길임을 깨달았다"며 "우리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철옹성보다 더욱 강력한 가족의 힘으로, 국민의 힘으로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 저들이 뼈저리게 후회할 때까지 싸워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이 헌화하는 동안 분향소 안에서는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으며, 어느 할머니는 손주의 영정을 끌어안고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전 위원장은 아들 '찬호'군의 영정 앞에 선 채 오래도록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유가족은 폭풍처럼 살고 있어요...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산문화광장 주변에서는 민주노총 안산지부 등이 준비한 '500일 추모 사진전'과 '세월호 진실알기 전시회'가 열렸다. 학생들의 시선을 끈 곳은 세월호 메시지를 담은 세월호 핀 버튼 만들기와 부채 만들기였다. 모두 망각과 기만으로 지워져 가는 '세월호의 진실'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다시 한 번 힘을 모으기 위해 마련됐다. 학생들은 500일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무엇보다 세월호가 잊혀지는 게 걱정되고 안타까워요. 적어도 안산시민들만큼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단원고 선배들에게 절대 잊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어요."(김영범 안산 경안고 학생회장)세월호 가족과 시민, 학생 등 2천여 명은 손에 촛불과 노란 풍선을 든 채 묵상을 한 후 추모문화제의 막을 올렸다. 방송인 김제동, 김미화씨, 배우 권해효, 김여진씨 등이 전해 온 '추모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 상영된 후 단원고 2학년 3반 고 남지현양 언니 남서현씨가 '별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남씨와 같은 단원고 희생 학생의 형제자매는 안산에만 168명이다.
"언니는 여기서 지현이가 너무 사랑하던 가족이랑 서로 더 사랑하고 지켜주면서 살다갈게.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게. 빨리 가진 못해도 끈질기게 갈게.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분들, 지현이 친구들, 선생님들, 얼른 가족 품에 올 수 있게 지현이가 도와줘... 지현아, 언니 동생이어서 고마워. 그리고 정말 정말 많이 사랑해. 우리 다시 만나는 날, 그때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단원고 2학년 3반 부모들도 나섰다. 엄마·아빠들은 카드섹션을 통해 한 편의 '세월호 파노라마'를 연출했다. 카드섹션은 미수습 희생자 9명의 모습에 이어 '기억할게', '멈춰버린 대한민국의 시간', '별이 된 아이들이 묻습니다', '진실이 밝혀졌나요', '잊지 말아요',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순으로 연출됐다. 카드섹션에 이어 '감사함'을 주제로 한 발언이 뒤따랐다.
"저희 유가족은 폭풍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지치지만, 우리 아이들이 생각나서, 우리 아이들이 미칠 듯이 보고 싶어서, 못난 부모라, 너무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우리는 이 싸움을 멈출 수 없습니다. 지금도 하늘의 별이 된 우리 아이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잊지 말라고. 우리를 꼭 기억해 달라고. 저희와 함께 울어주시고 행동해 주시고 함께 싸워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도종환 시인은 시 <깊은 슬픔>을 낭독하며 희생자를 추모하고 가족들을 위로했다. 시인의 애절한 흐느낌에 가족과 학생, 시민들은 속울음으로 삼키느라 광장 곳곳에서는 끄억 끄억 소리가 터져 나왔고, 견디지 못한 울음은 한꺼번에 쏟아졌다.
"맹골도 앞 바닷물을 다 마셔서 새끼를 건질 수 있다면 엄마인 나는 저 거친 바다를 다 마시겠다/눈물과 바다를 서로 바꾸어서 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엄마인 나는 삼백예순 날을 통곡하겠다/살릴 수 있다면 살려낼 수 있다면 바다 속에 잠긴 열여덟 푸른 나이와 애비의 남은 날을 맞바꿀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썰물 드는 바다로 뛰어들겠다/ 살릴 수 있다면 살려낼 수 있다면 (중략) 이 비정한 세상 무능한 나라에서 우리가 침묵하면 앞으로 또 우리 자식들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노란 리본을 달고 또 단다는 걸 안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세월호' 다시 행동하기 시작했다
500일 발언도 잇달았다. '엄마의 노란 손수건' 정세경 대표는 '세월호 이전과 달라진 엄마들의 삶'이라는 주제의 발언에서 "월요일 6시가 되면 엄마들은 서명대, 피켓, 리본 등을 챙겨 시민들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며 "일 마치고 오는 엄마들은 알아서 피켓을 챙겨 자기 자리에서 피켓팅을 하고, 밤새 만든 노란 리본 고리를 슬며시 놓는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내 자식만 잘 먹이고 잘 키워서 행복하면 될 줄 알았던 이기적이고 바보였던 엄마들이 아이들의 희생으로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모든 아이들이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행동하는 엄마로 변했다"고 덧붙였다.
416연대 김혜진 운영위원은 "우리는 정부가 세월호 희생자를 구조하지 않은 이유, 책임자 규명 등 반드시 밝혀야 할 진실 82개를 발표했다"며 "진상규명과 함께 실제 책임자인 해운조합, 해운청, 인천항만청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언에 나선 전명선 위원장은 '생명의 도시로 거듭나는 안산을 희망합니다'라는 주제의 발언을 통해 시민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산시는 거듭나야 한다. 시민 여러분도 피해자다. 생명의 안전과 존엄성을 무시한 정부의 행태를 본 분들도 피해자다. 이런 피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개조를 통해서라도 안전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긴 싸움의 여정에 함께해야 한다. 말과 행동을 함께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하늘로 가면서 남겨준 게 있다. 세월호에 탄 이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연결시켜 준 것이다. 이제 가족,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안산을 안전한 도시의 롤 모델로 함께 만들어 나가도록 하자."전 위원장의 발언이 끝나자 학생과 시민들은 "아버님, 힘내세요!", "어머님, 힘내세요!",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화답했다.
이날 추모문화제는 세월호 가족으로 구성된 416합창단과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생전의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담은 사진을 배경으로 밴드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윽고 세월호 가족과 학생, 시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서로를 끌어안은 채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세월호'를 약속하며 다시 안산에서 행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