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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재벌 그룹 81개 상장 회사의 사내 유보금이 2014년 500조 원을 넘더니, 1년 사이 100조 원이 더 늘어나 2015년에는 600조 원이 넘었다. 2009년 금융 위기 직후 271조 원이던 것이 5년여 사이에 두 배가 넘은 것이다. 30대 재벌 그룹을 기준으로 하면 710조 원이 넘는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고 과세표준 금액도 변경하는 방식으로 세 차례에 걸쳐 감세 정책을 단행했다. 그리고 2011년 국세청의 법인세 공제 감면 현황 기준으로 전체 법인세 47조 2502억 원 가운데 감면 세액은 9조 3315억 원인데, 이 가운데 매출액 상위 1%에 해당하는 재벌 대기업이 7조 3440억 원의 비과세·감면 혜택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감면 혜택의 78.7%를 상위 1%의 재벌 대기업이 가져간 셈이다. 명목 법인 세율 인하와 함께 막대한 비과세·감면 혜택으로 2013년 기준 상위 10대 재벌 대기업 실효 세율은 평균 15.2%로 떨어졌는데, 이는 최저한세율보다 낮은 수준이다.

재벌 사내 유보금이 소득 불평등 해소와 소비 증가로 이어져 내수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근로 빈곤층인 비정규직 노동자, 재벌 대기업의 하청 구조에 있는 중소기업과 그에 고용된 노동자, 고용 관계에 편입되지 못하고 복지 지원이 필요한 취약 계층 등에게로 가야 한다. 재벌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비정규직 등 근로 빈곤층은 대부분 사내 하청 등 간접 고용 형태로 존재하고,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에 비해 47%에 불과하다.

최저 임금 인상 등을 통해 근로 빈곤층의 임금 소득을 증가하려면, 대·중소기업 간 집단 교섭을 통해 부당한 납품 단가 인하를 막고 최저 임금을 납품 단가에 반영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정부가 법인세 인상과 특혜 감면을 축소해 재벌 사내 유보금을 조세로 환수해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 지원 등에 사용해야 한다.

재벌의 천문학적인 사내 유보금

워킹푸어 400만명, 대기업사내유보금 710조. 탐욕은 끝은 보이지 않는다
 워킹푸어 400만명, 대기업사내유보금 710조. 탐욕은 끝은 보이지 않는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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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사내 유보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가던 같은 기간 가계의 소득은 정체됐다. 가계가 빚으로 가계를 꾸리면서 가계 부채의 숫자도 천문학적으로 증가해 2015년에 상반기에 이미 1100조 원에 달했다. 2007년에서 2012년 사이 실질 임금 인상률은 -2.3%를 기록했고, 노동 소득 분배율 국민소득 중에서 임금으로 배분되는 몫의 비율은 1997년 75.8%에서 2011년 68.2%로 7.6%p 하락했다.

재벌 사내 유보금이 정부의 각종 특혜와 지원에 힘 입어 천문학적으로 늘어갈 때 가계를 이루는 노동자와 자영업자들, 고용의 87%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소득은 정체됐다. 이같은 양극화의 심화는 작은정부, 규제 완화, 민영화 등으로 대표되는 역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운용 기조 때문이다. 중산층의 신 빈곤층화가 광범위하게 발생했고, 이는 가계 소득의 상대적 하락과 내수 경제의 위축으로 이어져 일본식 장기 침체, 저성장 고착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 부분에서 기간제, 파견 등 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각종 규제를 무분별하게 완화한 결과 재벌 그룹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 40%가 비정규직이 되었다. 각종 경영 지표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으며, 중소기업 근로자의 상대적 임금은 대기업의 47% 수준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근로빈곤층(Working Poor)으로 전락해 근로빈곤층은 400만 명이 넘고 있다. 민간 소비와 내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상시·지속적 업무에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등 노동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자의 소득을 증대하고, 재벌 대기업의 무분별한 중소 상공인 적합 업종 진출을 규제해 중소 상공인의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가계의 소득을 늘려야 한다.

'중소기업 단체의 집단 교섭력 강화'와 '초과 이익 공유제'

적정한 납품 단가를 책정하고, 초과 이익을 공정하게 배분받으려면 중소기업들이 협동조합이나 단체를 조직해 집단적으로 대기업과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 협동조합 단위로 대기업과 납품 단가 또는 초과 이익의 배분 등에 관해 집단 교섭을 하는 것은 현행 공정거래법 제19조의 '부당 공동행위(담합행위)'에 해당하고, 집단 교섭 과정에서 납품중단 등의 행위를 하게 되는 경우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따라서 공정거래법 제19조를 개정해 중소기업 협동조합이나 단체들이 대기업과의 상생 협약 체결을 위한 집단 교섭에 대해서는 '부당 공동 행위'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독일도 우리 공정거래법 제19조의 부당공동행위(담합행위)를 금지하는 취지의 경쟁제한금지법GWB 제20조에 카르텔 금지규정 있고, 2005년 EU유럽연합의 카르텔 규지지침에 따라 카르텔 금지범위가 확대되었으나, 여전히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향상하는 데 기여하는 경우에는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제3조).

목표 초과 이익 공유제는 대기업과 협력사들이 연초 목표 이익을 설정하고 그 목표치를 달성하면 그 초과이익을 배분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은 임직원에 대하여 초과 이익배분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연초 설정한 목표 이익을 초과하는 이익이 발생한 경우 그 20%를 재원으로 임직원들에게 최대 연봉의 50%까지 배분하고 있다. 경영 성과가 좋았던 2010년 초와 2011년 1조 원 이상을 배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소기업 사이의 초과 이익 공유제는 위 사례처럼 사내 유보금이나 목표 초과 이익을 대주주에 대한 배당이나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이익 공유 적립금(Profit Sharing Reserve Fund)을 적립해 그 중 일부를 2차 협력사의 기술 개발이나 인력 지원금으로 사용하자는 취지다. 위와 같이 대기업과 1차 하청 중소기업 사이의 초과 이익 공유제 협약을 통해 이익공유적립금을 적립해 그중 일부를 2차 납품 업체의 인력 지원금 등으로 사용하면 최저 임금 인상 부담 등을 보조할 수 있다.

법인세 정비·강화하고, 재벌 사내 유보금 복지에 투자해야

법인세를 인상해 과잉 사내 유보금의 일부를 정부가 환수해 사회 보장 지출 확대, 최저임금 인상 및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 시행, 중소기업 육성 등에 직접 투입하는 것이 경제 활성화에 효과적이다. 또 각종 법인세 감면 제도를 정비하고 최저한세율을 상향 조정, 과세 표준 200억 원 초과에 대해서는 새로운 과세 구간을 설정, 최고 세율 구간의 법인세율을 22% 이상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직접적으로 사내 유보금을 과세 대상으로 하는 제도를 부활할 필요도 있다. 1991년에 적정유보 초과소득에 대한 과세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과세 대상인 초과 소득은 각 사업 연도 유보 소득에서 적정 유보 소득을 빼서 산출했다. 세율은 도입 당시에는 25%였으나 1994년 15%로 변경되었고, 비상장법인 중에서 자기 자본 100억 원 초과 법인 또는 재벌(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한 법인에 부과되었다. 적정 유보 소득은 각 사업 연도의 소득 금액에서 법인세액, 소득세할 주민 세액, 법정 적립금을 공제한 금액의 40%에 상당하는 금액이었다.

경제민주화 제1호 법안인 프랜차이즈 거래에 관한 '가맹점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에서 처음으로 가맹점주 단체들이 가맹 본사와 집단 교섭을 통해 상생 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으나, 그 뒤 같은 취지의 내용으로 추진된 '대리점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를 통해 먼저 시행해 본 후 잘 안 될 경우 법제정 논의를 해 보자는 주장에 밀려 입법 논의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독일의 중소기업 카르텔은 구매 공동체와 판매 공동체가 있는데, 중소기업은 납품 등에 있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대기업에 납품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1990년대에는 약 1500개 이상의 업체가 180여 건의 공동 행위에 대해 중소기업 카르텔로 승인받았다.

미국의 크라이슬러, 에어컨 제도업체 캐리어, 자동차부품모듈업체 다나 코퍼레이션 등이 시행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2004년 포스코가 도입한 이래 90여 개 사가 시행하였으나 그중 40여 개만 계속 시행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판매사업(삼성, 현대, SK, GS 등), IT, 제조업 일부에서 이러한 이익공유제를 일부 시행하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도 2010년 기준 영업이익이 5조 원이 넘지만 협력사 보상금액은 77억 원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성과 공유제는 수탁 기업이 원가 절감 등 수탁·위탁 기업 간에 합의한 공동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위탁 기업을 지원하고 그 성과를 수탁·위탁 기업이 공유하는 계약 모델로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법 제8조에 근거 규정을 두고 있는데, 초과 이익 공유제는 법적 근거를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성과 공유제는 납품 단가를 일방적으로 인하하는 것을 막고 원청 대기업과 하청 회사가 기술 개발을 통한 단가 인하 등의 공동 목표를 설정하고 그 성과에 따라 합의된 납품 단가를 조정하게 하는 제도고, 이익 공유제는 원청 대기업과 하청 기업이 협력하여 목표를 초과한 매출이나 순이익을 얻은 경우 그 이익을 나누는 제도이므로 같은 조항에 나란히 근거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1990년과 2001년 사이 전체 기업 사내 유보율은 5.8%에서 4.6%로 낮아졌다가 2001년 적정유보 초과 소득에 대한 법인세 과세제도가 폐지되면서 폭증하기 시작해 2010년에는 24.1%까지 치솟았다. 미국, 일본, 대만은 적정 유보 초과 소득 과세 제도가 있는데, 세율은 미국 15%이고 일본은 10~20%, 대만은 10%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남근 님은 참여연대 집행위원장(변호사)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사내유보금, #노동소득분배, #워킹푸어 ,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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