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노동자 권익을 크게 강화한 결정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내 원청 기업들이 하청 업체의 노동법 위반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물론, 하청 업체 소속 노동조합과의 단체 협상에도 나서야 한다
미국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 아래 전국노동위)는 지난달 27일 '하청 업체로부터 인력을 공급받은 기업(원청)은 하청 업체의 노동법 위반이나 이들 노조와의 단체 교섭·협상에도 책임이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을 한국에 적용한다면, 현대자동차 하청 업체의 노동자들이 원청인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직접 단체 교섭을 벌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 정치신문인 <더힐(The Hill)>은 이를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 내려진 가장 큰 결정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전국노동위의 이 결정은 법적 효력이 있는 것으로, 미국 노동자들은 물론 기업 고용주들에게도 매우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 1933년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 설립된 이 위원회는 미국 정부의 독립 기관으로서 불공정 노동행위 등을 감시한다.
미 노동위, 원청도 '공동 고용주'로 봐... "한국에도 유의미한 결정"
전국노동위의 이런 결정은 청소 관리 업체인 브라우닝 페리스(Browning-Ferris) 노동 분쟁에서 시작됐다. 휴스턴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캘리포니아 재활용 시설에 직원을 파견하기 위해 인력 공급 업체인 '리드포인트 비즈니스 서비스(LBS)'와 계약했다.
여기서 노동 분쟁이 생기면서 전국노동위가 조사에 나섰고, '원청도 하청업체와 공동 고용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의 결정을 내리게 된 것. 전국노동위는 브라우닝 페리스를 '공동 고용주(joint employer)'로 봐야 한다며, 이에 따라 노동자와의 단체 교섭(협상)은 물론 노동 위반 사항에도 책임이 있다고 결정했다. 기업 측은 이에 불복해 법원에 제소할 예정이다.
이전까지 전국노동위가 유지해온 견해는 기업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에게만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견해가 "점차 변화하는 경제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
이는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 등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맥도날드와 같은 프랜차이즈 기업을 비롯해 제조건설업, 호텔·청소·인력 서비스업 등 경제 전반에 큰 반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대다수 노동조합은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들은 이번 결정이 취약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는 물론, 노동자들의 항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고용주들을 바꿀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권두섭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장은 "하청 업체 노조가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해도, 원청 기업이 '우린 사용자 책임이 없다'며 외면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번 결정은 매우 큰 의미를 준다"고 말했다. 권 법률원장은 "이는 미국 내 권위 있는 노동위원회가 내린 결정으로, 지난 30년간 유지해온 기준을 바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국내에서 원청 사용자들은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내세워 교섭 의무를 피하는 사례가 많았다. 근무 도중 부상·사망하는 등 산업 재해를 입어도 원청은 같은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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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일한 50만 원전노동자, 산재 인정은 단 13건""죽은 아들 명예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7년을 싸워야 산재 인정, 이게 정상인가요? 한편 미국인들이 최근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노동자에게 매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는 여론 조사도 나왔다.
지난달 17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Gallup)>에 따르면 노동조합을 지지하는 미국인들 수가 1년 사이 증가해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노조에 호감을 나타낸 미국인들 응답자는 2014년 53%에서 올해 58%까지 상승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대침체(the Great Recession) 기간과 비교하면 약 10%나 상승한 것이다.
반면 미국인들은 노조에 대한 강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노조의 지위는 갈수록 약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