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민주당이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데다 민주당 경선에서도 무명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쫓기면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 대선까지 1년 2개월이 남았지만, 클린턴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이어가며 더 불리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에서 부동의 선두이자 공화당의 모든 대선 주자들까지 압도했던 클린턴의 높은 지지율은 최근 국무장관 재직 시절 관용 이메일 대신 개인 이메일로 기밀 업무를 다뤘다는 '이메일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의 조사가 시작되자 클린턴은 당시 이메일 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기밀 보안 규정을 철저히 지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으며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8년간의 영부인 생활과 대권 도전, 국무장관 역임 등으로 너무 오랜 시간 미디어에 노출된 데다, 1년 넘게 지속된 대세론에 싫증을 느끼는 유권자도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내년이면 일흔이 되는 클린턴이 열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급기야 NBC방송이 지난 6일 발표한 뉴햄프셔 주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은 32%에 그치며 41%를 얻은 샌더스에 크게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뉴햄프셔 주는 내년 2월 가장 먼저 민주당 프라이머리(당원과 일반인이 모두 참여하는 경선)가 열려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곳이다.
NBC방송이 지난 2월부터 주기적으로 실시한 뉴햄프셔 주 여론조사에서 줄곧 앞서가던 클린턴이 샌더스에 역전당한 것은 처음이다. 조 바이든 부통령이 출마하지 않을 경우를 가정하면 샌더스 49%, 클린턴 38%로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에 앞서 첫 코커스(당원만 참여하는 경선)가 열리는 아이오와 주에서는 아직 클린턴이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샌더스가 거세게 추격하며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사라지는 '클린턴 대세론'.. 정면돌파 선언'클린턴 대세론'을 깨뜨린 샌더스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한다. 세제 개혁과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재분배, 인종차별 강력 처벌, 국영 건강보험 도입, 대형 금융기관 해체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갈수록 깊어지는 미국의 빈부 격차와 계층 갈등 탓에 샌더스의 파격적인 공약이 돌풍을 일으키며 힐러리를 위협하고 있다. '공유경제' 개념 창시자인 로런스 레시그 하버드 법대 교수도 최근 민주당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 같은 흐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물론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는 아직까지 클린턴이다. 막대한 자금력과 우수한 참모진, 오랫동안 다져놓은 지지 기반은 무소속의 무명 정치인이었던 샌더스가 하루아침에 넘어서기 힘든 장벽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샌더스는 '큰 손'의 거액 기부를 받는 클린턴과 달리 서민들의 '풀뿌리 기부'로 정치 자금을 마련하며 차별화를 노리고 있다. 전체 금액은 훨씬 더 적지만, 정치적 의미로는 샌더스의 모금 운동이 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클린턴도 샌더스와의 정면 대결을 선언했다. 그녀는 8일 AP 인터뷰에서 "샌더스와 공개 토론하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라며 "내가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샌더스와 어떻게 다른지 보여줄 기회가 많이 남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