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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 다시 도착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도시야 오죽하겠는가. 또한 그저 관광지 몇 곳을 찾아 구경하던 여행지를 두 달 정도를 보낼 생활 공간으로 보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겉으로 본 산티아고의 첫인상은 서울과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이었다. 산티아고에서 집을 구할 동안 잠시 머문 스페인 친구 알리시아의 집이 우리나라 서울로 말하면 강남권에 위치해 있었다. 환전과 약간의 생필품을 사기 위해 길을 나서면 현대식 고층건물에 넓은 대로를 지나게 된다. 문득 내가 지금 서울 강남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엄청난 물가 또한 상상 이상이었다. 어떻게 이 물가를 감당하고 사는지 의아했는데 대부분 돌아오는 대답은 '빚'이었다. 신용카드 사용, 장기할부가 시스템화된 구조 속에서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경제의 지배를 받는 도시가 된 건가. 약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만드는 공간을 만나면 또 다른 이야기가 생겼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꿈꾸는 텃밭

산티아고에 2년째 살고 있는 알리시아가 자원봉사하고 있는 곳은 13명의 장애인이 머물고 있는 시설이다.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외곽에 위치해 있는데 주변에 여성감호소와 청소년 감호소가 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호흡하기에는 조금 불편해 보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 마당에서 바로 건너편 청소년 감호소의 높은 벽과 철조망이 보였으니 말이다. 본래는 다른 지역에 있었는데 얼마 전 예산 문제 등으로 이전을 해야 했단다.

알리시아는 2년전 이곳에 합류했는데, 이미 칠레 예술가 다니엘라(32,여)와 초등학교 선생님인 호아킨(35,남)은 5년째 이 시설에서 아이들을 위한 텃밭을 만들고 가꾸어 왔단다.

다니엘라는 5년간의 시간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왜 장애아동시설에 텃밭을 만들려고 하는지 시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그 설득 작업이 정말 어려웠다. 오랜 기간 시설을 방문하며 아이들과 함께하고, 설득하고, 기금마련을 위해 뛰어다녔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텃밭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아이들이 텃밭을 좋아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날은 새로 옮긴 시설에 다시 텃밭을 옮겨와 오픈하는 날이었다. 그동안 텃밭을 가꾼 아이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영상을 공유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텃밭송도 들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가사의 텃밭송
▲ 텃밭 오픈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가사의 텃밭송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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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시아가 시설 담장 한 켠에 있는 올리브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전에 있는 곳에서 옮겨다 심은 건데 이 텃밭 시작부터 함께 성장하고 잇는 나무야. 올리브 나무는 오랜 시간을 거쳐야 열매를 맺잖아. 그처럼 천천히, 하지만 강하게 텃밭이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어, 텃밭의 상징이야."

이날 아이들은 자신의 텃밭에 콩을 심었다. 무엇이 그 안에서 자라날지 아직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곧 작은 싹을 볼 것이고, 서툴겠지만 그 싹을 돌보고, 그 성장을 함께 할 것이다. 왜 다니엘라와 그 친구들이 텃밭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자원봉사자와 씨앗을 심는 아이
 자원봉사자와 씨앗을 심는 아이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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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공유하는 자리를 고민하는 대학생들

칠레대학교예술학부를 처음 들어섰을 때 이게 대학 건물인가 의심됐다. 간이 건물 같은 허름한 건물에 지극히 야생성이 풍기는 야외 캠퍼스. 점심시간이어서 학생들은 도시락을 가지고 야외 잔디밭에 두런두런 모여 앉아 자유롭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이 어디 공원에 피크닉 온 모습처럼 마냥 자유로워 보였다.

야생성이 넘치는 칠레 대학 예술학부 캠퍼스
 야생성이 넘치는 칠레 대학 예술학부 캠퍼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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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찾은 이유는 예술대학 도예과 학생 3명이 마련한 작은 도자기 이벤트가 있어서 였다. 타이틀이 '땅과 만나는 도자기'였는데 직접 캠퍼스 야외에 있는 흙과 다른 흙을 섞어 참가자들과 함께 도자기를 빚고 이를 옛날 방식의 구덩이에 굽는 이벤트였다. 한달간 3번에 걸쳐 이루어진 이벤트였는데 내가 간 날을 도자기를 굽는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 이벤트는 단지 도자기 굽는 것 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학생들이 텃밭에서 직접 딴 야채로 점심을 만들어 함께 먹는 것으로 시작됐다.

텃밭의 채소로 만드는 건강한 점심식사
 텃밭의 채소로 만드는 건강한 점심식사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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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나누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함께 의견이 맞는 두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어 여러 실험들을 하고 있다. 이번 이벤트는 우리가 도자기를 하는 학생들이라서 '흙'이라는 매개로 어떻게 사람들과 함께 할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마련했다."

모임의 일원인 대학교 3학년인 페르난도는 말했다.

이날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학부 학생들 뿐아니라 동네 주민인 아저씨, 콜롬비아에서 온 요리사,  각종 악기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음악가 등 다양했다. 구덩이에 불을 붙이고 기다리는 동안 여러 주제를 공유했다. '함께 하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던 이들의 바람이 그렇게 햇살좋은 어느 캠퍼스에서 이루어지는 듯 했다. 건강한 칠레 20대 대학생들의 에너지를 만난 시간이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야외 구덩이 가마와 참가자들의 작품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야외 구덩이 가마와 참가자들의 작품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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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만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산티아고 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지. 바로 저거야."

텃밭모임에서 돌아오는 길. 예술가 다니엘라가 가리킨 곳에는 비현실적 자태를 뽐내며 도시의 어디서나 배경이되는 안데스의 산맥이었다. 사실 이 말은 다니엘라에게서만 들은 것은 아니었다. 3주간 만난 대부분의 산티아고 사람들이 남긴 코멘트이기도 했다. 나역시 길을 걷다 매일매일 볼 때마다 새롭게 놀라는 풍경이기도 하다.

산티아고의 랜드마크는 남미에서 가장 높다고 자랑하는 62층 고층건물이 아닌 바로 언제나 그곳에 있어 온 거대한 안데스 산맥인 것이다.

화려한 도시의 한 켠에 당나귀 우유를 직접 짜서 파는 상인의 모습이 기이한 풍경으로보여진다. 고급 자동차들과 함께 무표정한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오래된 낡은 버스(미크로)가 대로를 함께 달린다.

표면적으로 보면 왠지 조화롭지 않고,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으로 도시는 변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안 어디선가 산티아고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안데스 산맥과 함께 그들의 건강한 이야기와 역사를 다시금 이어간다. 그래서 하나의 도시를 만나는 일은 또 하나의 다른 이야기를 만나는 일처럼 언제나 새롭다.

산티아고 사람들이 사랑하는 안데스. 도시의 병풍이다.
 산티아고 사람들이 사랑하는 안데스. 도시의 병풍이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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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산티아고, #그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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